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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넷 Feb 20. 2023

“스트럭쳐”

최근 들어 글을 쓰지 못했다. 앞으로도 많이는 못쓸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현재 “스트럭쳐”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개꿀을 빨던 백수 시절에는 하루에 잠을 10시간씩 자며 드라마 보고, 유튜브 보고 그냥 내 마음대로 살았다. 글쓰기는 에너지가 많이드는 일이다. 여유가 있을 때나 할 수 있다. 가끔씩 과거의 백수 생활이 그리워지며 로스쿨 자퇴하고 백수로 컴백할까 하는 충동이 들기도 한다. 대학 친구가 내게 한 “코인 투자 대박쳐서 벌어놓은 돈도 있는데 그딴거 왜 해?” 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지금 꿋꿋이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밀어버리고 있는 이유는 그래도 백수보다는 스트럭쳐 상태가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여기서 스트럭쳐란 일종의 내가 지어낸 개념으로 달리 표현하자면 “환경 때문에 밀려서 하게 되는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평상시 운동을 드럽게 안하던 사람들도 수백만원의 돈을 PT 트레이너에게 갖다바치면 돈이 아까워 헬스장에 가 운동을 한다. 가만히 놔두면 집에서 TV 보며 꿀 빠는 사람들도 회사라는 공간에 갖다놓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밀려 어느새 일을 하고 있다.


노르웨이에는 레밍이란 쥐가 있다. 이 레밍이 혼자 있을 때는 우왕좌왕 한다. 집단으로 있을 땐 아무 생각 없이 앞의 쥐가 가는 방향으로 모두 우르르 따라간다. 그러다 가끔 낭떠러지에 떨어져 집단 자살하는 멍청함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과연 이게 단점만 될까?


우리를 생각해보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자적으로 내가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의무교육이란 시스템이 그것을 강제했고 레밍처럼 옆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하고 있어 어버버하면서 따라갔을 뿐이다. 다만, 그것이 낭떠러지가 아니었을 뿐.


사람이 어떤 성취를 이루고 자존감과 사회성을 키우는 것은 자유의지를 통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자유의지를 믿고 있다가 인생은 존망한다. 혼자서 뭐 한다고 깝치다가 걍 백수되어서 골방에서 시간 낭비나 하는 것이다. 내가 2년 동안 그랬다. 명분은 간지나는 타이틀을 갖다붙인 크립토커런시 트레이너였지만 실상은 방구석 백수 히키코모리였다.


 

누구든 놀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싶고, 편하게 드라마보면서 쉬고 싶다. 난 진짜로 이걸 2년 동안 실컷 실천하고 살았다.



물론 처음에 사회 경력을 단절 할 때만 해도 이렇게 생활습관이 개판 날 줄은 몰랐다. 나는 노오력으로 이 본능을 극복할거야. 이런 결심과 의지가 있었다. 마이크 타이슨의 말마따나 누구든 쳐 맞기 전까지는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깐.


나 스스로를 과신했고 내 의지에 대해 착각을 했다. 자유의지라는 미명에 제대로 낚였다. 오히려 나는 자유의지 따위는 없는 멍청한 쥐다 라고 생각하며 어버버하며 옆의 레밍이 가는 길에 밀려 따라갔으면 방구석 히키코모리 생활을 2년이나 하지는 않았을텐데 그 시간에 대한 대가가 너무 아깝다.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은 굳은 의지와 사고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보다는 레밍처럼 어버버하다 스트럭쳐에 밀려 눈 떠보니 어느 순간 그것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으면 그건내 옆에 있던 레밍들이 멍청이들이라 나도 같이 낭떠러지에 떨어져버린 것을 탓해야지 내 의지를 탓해서는 안된다. 원래 사람은 의지가 약하다. 반대로 훌륭한 레밍 집단에 속해 어느 새 눈 떠보니 내가 성공을 해있다면 그 때 또한 내 의지를 칭찬하는게 아니라 내가 속한 환경과 구조에 감사해야 한다.


출처 : 조선비즈


서울대 신입생 중 8명 중 한명이 강남 8학군 출신에 3분의 2가 수준 높은 사교육 시장이 밀집해있는 수도권 출신이라고 한다. 이 학생들이 과연 유전자가 뛰어나서, 의지가 뛰어나서 명문대에 입학 할 수 있던 것일까? 아니다. 그냥 스트럭쳐가 뛰어나서다. 훌륭한 사교육 시장, 잘 사는 부모, 명문대라는 방향을 향해 뛰어가는 옆 레밍들이 있기에 내가 유전자가 떨어지던 말던, 의지와 노력이 있던 말던, 눈 떠보니 어느새 어버버 하며 서울대에 붙어있는 것이다.


솔직히 변호사가 되기 위한 전문직 공부 힘들고 X같다. 그냥 X같은게 아니라 매우 X같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참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건 내가 의지가 강해서가 아닌 로스쿨이라는 환경과 구조에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스트럭쳐에 의해 밀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의지가 쓰레기 그 자체인 것을 알기에 더 강한 스트럭쳐 상태로 스스로를 내몰고 있다. 로스쿨 환경이라는게 계속해서 밀려드는 수업과 시험이 있어 이것만 따라가도 어느 정도 스트럭쳐 상태에 진입 할 수 있다. 그러나 변호사시험에 붙기 위해서는 이것조차 부족하다. 그렇다고 나 혼자 뭐를 하기에는 깝치다가 본능에 잠식당해 망할 것이 뻔히 보인다.


때문에 나는 로스쿨 내 성균관대학교 학부 동문들과 함께 “열품타”라는 앱을 사용해서 매주 40시간의 공부 시간을 반드시 채우는 강제 스터디를 하고 있다. 못 채우면 시간 당 1만원씩 벌금을 낸다. 아침 8시마다 “타임스탬프”라는 앱을 이용해 시간을 찍어 기상 인증을 하는 스터디도 하고 있다.



이런 스트럭쳐가 없다면 나는 아침에 개꿀 빨면서 더 잘 것이고, 주말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놀고 있었을 것이다. 스트럭쳐가 없다면 절대 못 참는다.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 비인간적이고 매우 힘들기는 하나 어쩔 수 없다. 나는 변호사가 되어야 하거든. 노는 것은 변호사가 되고 실컷하면 되는 것이다. 로스쿨 뿐만이 아닌 결국 유튜버든, 책 출판이든 모든 성취는 스트럭쳐에 의해 밀려야만 달성 할 수 있다. 몸짱이 되고 싶다면 노오력을 하는게 아니라 수백만원을 헬스 PT 트레이너에게 갖다 바치자.


원문 링크 : https://m.blog.naver.com/no5100/223021257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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