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내 일이 아니라는 사실, 그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그 부랑자를 본 것은 아테네에 이제 막 도착해서 숙소에서 체크인하고 쉬엄쉬엄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나의 여행을 늘 그렇듯 첫날에는 많은 것을 계획에 두지 않는다. 이 새롭고 낯선 장소를 천천히 걸으면서 오래된 건물을 보고, 기념품 상점에서 판매하는 새롭고 다채로운 것들을 눈에 담는다. 골목 군데군데 있는 갤러리에 가서 현지 예술가들이 고독한 시간 끝에 맺은 열매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말하자면 운동 전에 하는 스트레칭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을 계획하지 않고 쉬엄쉬엄 둘러보는 그런 날에 가장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느끼는 법이다. 서두르지 않고 걷는 나의 발걸음은 언제나 잘 놓치기 쉬운 것들, 빠르게 걸었다면 반드시 놓쳤을 만한 것들에 나의 시선을 가져다 놓아준다. 잘 정비된 거리 뒤쪽 허름한 골목길에 현지인들이 자기의 재능을 밤새 뿌려놓고 간 누구의 집 담장. 한동안 누군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아 거친 줄기와 투박한 열매와 꽃이 떨어져 지저분한 입구의 어느 이름 모를 누군가의 화실. 그런 것들 한 장면 한 사람을 천천히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머리로 이해하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밑 플라카 지구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월의 푸르고 높고 하늘을 배경으로 골목에 가득 찬 관광객들의 홍수 속에서, 한 남자가 거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그의 다리였다. 이제 막 해변에서 오랫동안 일광욕을 하고 돌아온 사람보다 더욱 멋진 색채를 가진 그의 굵은 다리를 보고 있자니 건강미가 넘치는 한 마리의 거대한 황색의 승마용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용모는 그가 평생 미용실이라는 곳에 가보았을지 의구심이 들게 하였다. 그는 좁은 구시가지 골목 한 편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발을 엉덩이 쪽으로 밀어 넣어 두 팔을 그 굵은 다리와 무릎을 감싸고 있었다. 반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재킷으로 꽁꽁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보행자들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았으며, 구걸하기 위한 어떤 동전 바구니 또한 없었다. 단지 상자를 뜯어내어 적은 노숙이라는 단어가 그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보행자 도로에 고정되어있었다.
다음 날 잠자리가 불편했던 탓인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일 층 침대에 누워서 이층 침대의 매트리스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잠이 들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천천히 일어났다. 잠을 깊이 자는 룸메이트들의 숨소리는 고요한 밤의 적막함과 함께 좁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숙면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아주 천천히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옷을 바꿔입었다. 사물함에서 물건을 꺼낼 때 나는 끼익 소리가 난다. 마치 온 건물이 내는 비명마냥 내가 놀라고 만다. 신음을 내며 뒤척이는 룸메이트들. 창문 밖에 하늘색이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아침에 물을 머금은 차가운 공기. 플라카 지구에 잘 정비된 보행자용 도로는 지난밤 동안 열기로부터 한숨 돌린 도시의 흔적이 곳곳에 맺혀있었다. 언덕 위에 파르테논 신전의 오른쪽 기둥 윗부분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이 땅에 닿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구시가지의 공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엇인가, 이른 새벽의 공기에는 없어야 할 이질적인 무엇이 포함되어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전날에는 시끄러운 식당 호객꾼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곳에 오늘 또 다른 하루의 사람들을 기다리는 식당 테이블과 의자가 밧줄에 묶여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담배 재떨이 안에 있는 몇 개의 담배는 지난밤의 호젓한 사내들의 외로움이 담겨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그 조용한 부랑자를 보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있는 중년의 남자는 어제와 같이 아주 깊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어떠한 소음도 없다. 최소한의 소음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의 침묵이 모든 소음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어제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가 책을 보고 있었다. 그가 하는 머리 모양은 흡사 그리스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그 책이 종교책일 것 이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론리플래닛을 읽고 있었다. 어디로 여행을 지금 여행을 하는 걸까,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 걸까. 그는 여행을 해보았을까. 자꾸만 떠오르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앞길을 계속 갔다.
오전에 입장하며 이른 오후까지 있었던 아크로폴리스를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왔다. 여행하면서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발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워 보고 계속 보고 지겨울 때까지 계속 보았다.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장엄한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하여 니케 신전, 프로필 사자 등 수천 년의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앞에 서 있는 기둥들을 바라 보았던 소중한 시간. 수천 년간 바람이 할퀴고 간 상처들, 비가 깎아내러 가 생겨난 흉터. 무한하게만 느껴지는 그 긴 시간 속에서 한 곳에 서 있었던 이 피조물들 한 조각 한 조각을 눈이 감아도 잔상이 남을 정도로 계속 바라보고 내려왔다.
점심을 먹고 플라카 지구에서 신타그마 광장으로 지나가는 중이었다. 레스토랑으로 즐비한 좁은 골목은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메뉴판을 들고 자리를 안내하는 웨이터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그러다가 어느 기념품 가게 앞에서 양손에 작은 두 사내아이를 품고 앉아서 울고있는 남자를 보았다. 어린 아이처럼 울고 있는 남성. 품에 안긴 두 사내아이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다. 중동 어디에서 온 난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성인이 자신의 아이들을 품고 길에서 어깨를 들썩일정도로 흐느끼는 것,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흔히 보여지는,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거리에 토해내고 있는 이 남성에 누가 관심이라도 주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하는 수많은 관광객 그 누구 하나 관심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식사를 하는 수저소리와 와인잔을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입을 벌리고 음식을 넣어대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울고있는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한 군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복잡한 생각이 솟구쳤다. 불편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가던 길로 발걸음을 옮겨 산티그마 광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남자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마음이 착잡했다. 동전 지갑을 들어보았다. 그곳에는 충분히 나눌 수 있었던 금속의 무게가 있었다. 그것도 충분한 무게.
그 뒤 몇 시간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두 사내아이를 안고 있던 그의 팔과 어깨의 흔들림이 그의 흐느적거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무거운 죄책감과 후회감을 느끼며 길거리 음식으로 저녁 끼니를 해결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있었던 곳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그는 없었다. 그 천진난만한 얼굴을 했던 두 명의 꼬마 아이도 없었다. 단지 그곳에는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아주 짙은 그림자가 남아있었다. 그 지점으로 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전 지갑에서 동전을 이미 꺼내놓은 터였다. 그 꺼낸 동전을 다시 넣지 않고 손에 넣고 다시 걸었다. 숙소로 걸어갔다. 해결하지 못한 무거운 마음의 무게가 온몸을 짓눌렀다.
가로등이 들지 않은 좁은 길목에 오늘 아침에 보았던 그 머리가 긴 부랑자를 보았다. 밤이 오는 것에 대비하는 것인지 긴 바지를 입고 있고, 두꺼운 재킷으로 상의를 덮고 있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다.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여전히 보행자 도로 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노숙이라는 상자 위에 글자는 어둠이 가려 보기가 힘들었다. 론리플래닛 책은 아마도 가방에 넣은 듯했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는지, 수많은 발걸음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묻고 싶어졌다. 연민보다 호기심을 더 불러일으키는 부랑자. 동전을 쥐고 있던 오른손에서 땀이 났다. 동전 구걸함이 없는 그에게 손에 동전 몇 개를 쥐여주었다. 그 부랑자가 말했다. ‘에프하리스토(감사합니다)’ 아주 긴 시간을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갈라진 목소리가 힘들게 목구멍을 통해 나왔다. ‘빠라깔로(천만에요)’내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