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그곳에서

지탱해야할 그 삶의 무게를 깨달았을 때

by 조르바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기상 시간 새벽 네 시. 전등을 켜지 않고 그대로 일어난 채로 눈을 뜨고 조금 더 누워본다. 이대로 두세 시간 더 잠을 자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치솟는다. 새벽 공기가 지닌 무거움. 그 서늘한 온도. 창밖으로 보이는 주택 이웃들의 깊은 잠을 한 얼굴을 생각해본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세안을 한다. 양치질한다. 세안 후에도 잠을 쫓아내기가 역부족이다. 침대에서 십 분만 더 자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지 않는다. 샐러드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신다. 그러는 동안 오늘의 날씨 예보를 본다. 온도를 확인한다. 바람의 세기를 확인한다. 그런 후에 도심으로 향할 자전거 위에서 입을 나의 복장을 꺼내놓는다.


자전거 안장에 맺힌 이슬을 닦아 낸다. 간밤에 이슬에 온몸을 내맡긴 자전거를 만지는 손에는 견고한 한기가 느껴진다. 한낮에 햇살에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의 단단한 차가움. 전, 후방 라이트를 켠다. 헬멧을 쓴다. 장갑을 끼고 나선다. 인적이 없는 도로. 불 켜진 가로등. 텅 빈 버스 정류장. 도로 왼쪽 옆에 있는 아파트 공사 현장은 아침이 되면 이내 시끄러워질 것이고, 트럭이 오고 가며 많은 교통 체증을 일으킬 것이고 주위는 많은 인부로 넘칠 것이다. 하늘이 어떤 색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직도 한밤중이다.


복스홀 다리를 건넌다. 간밤에 비가 내린 것이었을까. 빠른 유속과 함께 들리는 강줄기의 소리. 아직 사람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 보이는 야간버스마저 보이지 않는 오늘의 통근길. 복스홀 다리를 건너 테이튼 현대 미술관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평일에도 아주 조용한 곳. 이곳이 붐비거나 시끄러운 것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큰 가로수들의 잎은 겨울바람에 떨어져 나갔지만, 괜찮다. 어둠이 나뭇잎을 대신하고 있다.



그렇게 서늘한 공기를 마시고 느리게 자전거 패들을 밟는 사이에 국회의사당 광장이 나온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빅벤. 런던 아이. 몇 시간 뒤면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지독한 교통체증에 오도 가도 못 하는 차들로 가득 찰 이 도로. 오늘따라 자동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밝은 가로등. 널브러진 술병. 누군가의 토사물. 바람에 휘날리는 쓰레기 봉지들. 간판 불만 켜진 선술집 창문에서 보이는 실내에는 수십 가지의 맥주의 로고가 새겨진 파이프가 잘 닦여져 빛을 내고 있다.


새벽 다섯 시가 되었다고 시계가 알람을 준다. 세인트 제임스 공원으로 들어서는데 오늘따라 가로등에 불빛이 없다. 내가 너무 이르게 온 것일까. 이 시간에 종종 오고는 했던 길이다. 고르지 못한 포장도로. 움푹 팬 곳이 오늘따라 많은 것 같다. 자전거 바퀴가 닿는 소리가 꽤 시끄럽다.



어떠한 빛도 보이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시 멈춘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귀를 기울여본다. 듣지 못했던 소리가 어디서 난다. 시끄럽던 자전거 바퀴 소리 대신에 가슴에서 고동치는 거친 박동 소리가 들려온다. 한동안 들어본 적이 없는 그 거대한 요동, 강렬한 맥박.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주위를 둘러본다. 거대한 도시가 숨을 죽이고 유지하고 있는 이 절대적인 고요함과 칠흑 같은 어둠. 한동안 그렇게 들을 수 없었던 나의 가슴소리에 가슴을 부여잡는다. 그동안 얼마나 기계같이 살아온 요즘이었던가. 시간을 쪼개 생활하는 매일의 삶. 아침을 깨우는 알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기를 요구당하는 오늘. 하지만 나는 내가 살아있는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가슴소리에 한동안 서서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서 있는 사이에 세인트 제임스 공원에 있는 가로등이 켜졌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오늘의 가로등 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