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버스

남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이유

by 조르바




여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혹은 사람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는 경우가 있다. 어느 도시의 유명한 미술관의 그림보다 행인과 강가에서 술을 마시면서 나눴던 대화, 좋은 좌석을 일부러 내주는 기차 내에 친절한 사람의 인자한 미소, 일면식이 없는데 오랫동안 알고 지낸 듯이 남동생이라고 나를 불러주는 어느 한적한 도시에서의 식당 웨이터. 허름한 골목길 끝에 위치하여 보기 힘든 구석에 오래된 옛날 영화 포스터. 높은 담장으로 이어진 주택가에 덩그러니 새빨간 장미 한 송이가 고개를 내놓고 보행자들을 맞이할 때. 뭐 그런 것들이다.



프랑스 툴루즈에 있을 때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기 위해서 일종의 스탑오버 형식이 강한 여행지였기에, 아무런 계획 없이 일박을 이곳에서 딱히 하는 것 없이 관광했다. 카피톨 광장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인상적인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어서 섭섭했지만, 론강에서의 일몰은 아름다웠다. 그렇게 일박이일의 짧은 여정을 보내고 스페인으로 가는 야간버스를 타러 가는 길. 시월 말의 툴루즈의 밤은 꽤 쌀쌀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문이 닫힌 시내의 상점들. 길가에 널브러진 쓰레기들. 바람에 날리는 봉지들. 아직 가로등은 꺼지지 않았고,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보도블록에 닿는 나의 케이스 바퀴 소리만이 이 무거운 정적을 깨고 있었다.


그렇게 길을 재촉해가고 있는데, 닫힌 쇼핑몰 정문에 상자를 쌓아 바람을 막고 신문지로 몸을 덮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어대는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해 보이는 그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막아내는 얇은 상자에는 방어에 실패한 어느 오래된 고성의 성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슬픈 무기력이 가득했고 몸에 덮고 있는 몇곂의 신문지는 계속 이리 저리 날라 다니고 있었다. 걷는 속도를 줄이고 그 부랑자 무리가 있는 쪽으로 몸을 살며시 돌려 가던 길을 걸었다. 단순히 그들의 행색을 눈으로 보고싶다는 순진한 호기심이 있었을 뿐이다.



네댓 명의 부랑자 무리의 모습을 예상하면서 옆을 지나가려는 찰나 한 부모의 품에서 자는 아주 작은 두 어여쁜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생명의 모습에 놀라고만다. 세상의 모든 평화를 가져 놓은 듯 쌔근쌔근 얕은 숨을 쉬어내고 있는 그들의 얼굴. 하지만 그 소녀들의 깊은 잠의 얼굴을 보고 있는 두 부모의 얼굴에는 상념이 가득했다. 눈가에 깊은 주름에 내리 앉은 어둠과 추위에 몸을 떨고 있는 그 젊은 부부. 앞으로의 몇 시간의 긴 밤을 뜬눈으로 보낼 그들의 무거운 마음. 바람이 차가웠다. 닫힌 상점들의 외관 문이 바람에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이 두 아이가 청하는 오늘 밤의 잠만은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평안하길 그렇게 바랐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버스 맨 앞에 앉은 나는 잠을 잘 청할 수가 없었다. 불편한 좌석 때문에, 혹은 불편한 마음 때문에 그랬었을지도 모른다. 새벽의 숫자를 알리는 빨간 빛의 시계 판에 매분 바뀌는 숫자를 보면서 슬픈 얼굴의 젊은 부부와 세상 평화롭게 잠들던 어린 두 아이의 통통한 볼살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다. 그 아이를 보는 슬픈 부모의 얼굴도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피곤함에 눈이 감기려는 찰나, 버스는 바르셀로나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멀리서 해가 뜨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깨지 않고 잘 자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