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며 배운 나의 한계

by 감정의 기록

친구들과 함께하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배워간다.

관계는 늘 타인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결국 나를 가장 많이 드러내는 건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였다.


나는 상대에 감정을 잘 읽는 편이다.

그래서 친구의 이야기에 쉽게 깊어지고,

만남이 끝난 뒤에도 그 감정을 그대로 안고 돌아온다.

이건 나의 장점이지만, 동시에 나를 쉽게 지치게 하는 성향이기도 하다.


어느 날,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샤워도 미룬 채 잠시 누웠다.

처음엔 이야기를 듣는데 에너지를 많이 써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날의 만남은 나를 편안하게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그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날이면

엄마는 늘 같은 말을 하셨다.

"무슨 일 있었어?"


어떤 친구를 만난 날엔

괜히 마음이 가볍고 말이 남는다.

반대로 어떤 만남 뒤에는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말수가 줄어든다.


상황은 비슷했지만,

만남 이후의 나는 전혀 달랐다.


그제야 알았다.

아, 이건 누가 잘했고 못했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 관계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걸.


어릴 적부터 함께 해왔다는 이유로,

힘든 시절을 같이 버텼다는 이유로,

나는 '친구'라는 이름 안에

이미 무거워진 관계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변한다.

나도 변했고, 그들도 변했다.

그럼에도 나는 변한 관계를 돌아보지 못한 채

스스로를 그 안에 묶어두고 있었다.


그제야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후로 나는 관계를 정리했다기보다,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의 수를 줄였다.

정말 중요한 사람들만 남기고

남은 시간은 나를 돌보는 데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한 번씩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나의 화가 줄었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나던 날들도 함께 줄었다.

한동안은 일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예민해진 줄 알았다.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이후로 나는 내 성향을 더 잘 보게 되었다.

어떤 관계에서 내가 편안해지는지,

어떤 만남 뒤에 나를 잃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보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는 관계가 좋다.

물질적인 챙김보다

진심 어린 대화를 더 믿는다.


요즘의 나는

모두와 잘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긴 인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만나야 하는 건 아니라고.


편안하고 잘 맞는 사람,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가장 건강한 관계다.


가끔은 멈춰서
내가 어떤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지,
어떤 관계 안에서 나를 잃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