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찾게 된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그 질문은 조언을 구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책임을 조금 나누고 싶은 마음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의견을 묻는다는 것.
때론 판단을 미루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 않을까.
가끔은 누군가의 생각이
내가 나아가는데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 사람의 말이 내 생각보다 더 분명해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무엇이 더 나은지, 어떤 선택이 괜찮아 보이는지.
하지만 선택의 끝에서 남는 감정은 늘 같았다.
처음 떠올렸던 내 생각을 따르지 않았을 때,
후회는 조용히 따라왔다.
물건을 고를 때도,
옷을 살 때도,
어딘가로 향할 때도 그랬다.
누군가의 의견을 들은 선택은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감정으로 돌아왔다.
사소한 일은 웃으며 넘길 수 있었지만
중요한 순간일수록 그 무게는 더 선명해졌다.
나는 관계 안에서 비교적 유연한 편이다.
함께 먹을 것, 갈 곳, 할 일을 정할 때
내 생각은 말하지만 고집하지 않는다.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아
가끔은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지쳤다는 이유로 실수를 했다.
직장에서 의견을 조율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때였다.
분명 내 판단이 옳았고 밀고 나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설명에 지친 나는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상대의 의견을 따랐다.
리허설 당일, 예상했던 장면이 그대로 펼쳐졌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날카롭게 돌아왔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마음은 쓰렸고, 자존심은 상했다.
그 감정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생각이 남았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 판단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
끌려간 선택은
관계보다도 나를 먼저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의견이 필요하다.
하지만 의견은 방향일 뿐, 결정이 될 수는 없다.
타인의 생각을 통해 시야를 넓혀주지만
판단을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결정이 어떤 방식으로 내려졌든
그 결과에 따른 감정과 책임은 결국 내 몫이다.
좋은 결과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때로는 좋지 않은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때 결과를 누군가의 의견 탓으로 돌린다면
상처는 더 깊어질 뿐이다.
의존은 약함이 아니라 확신의 부족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 일부러 멈춘다.
이 일이 누구의 일인지,
이 생각이 누구의 것인지.
관계를 지키기 위해 판단을 맡기기보다,
나를 지키기 위해 판단을 되찾는 연습을 한다.
의견은 나를 넓혀주지만, 판단은 나를 지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