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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ug 04. 2022

메기

뻐끔뻐끔

내가 사람을 죽였다.

별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

내가 발가벗겨 놓은 시체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돈다.

사람들이 수군댄다. 몸매가 좋네 나쁘네, 얼굴이 매력적이네 별로네.

인터넷 상을 돌면서 마치 온라인 마켓의 상품평을 하듯 별점을 메기고, 그 시체가 가진 성적 매력에 대해 자세한 리뷰를 남긴다. 버려진 옷 또한 시체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사람들이 다시 수군댄다. 옷을 저렇게 입고 다니니깐 그런 험한 꼴을 당하지... 저렇게 입고 다니면 해달라는 거지...  등등

어떤 한 네티즌이 내가 죽인 사람의 신상정보를 알아냈다.

그 사람이 학창 시절 때 별명이 걸레였다는 둥, 이 사람 저 사람 다 꼬시고 다녔다는 둥.

사람 목숨이 하나가 아닌가 보다.

내가 그 사람을 한 번 죽였는데, 아직도 더 죽일 목숨이 남았나 보다.

나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죽인 사람은 없고, 더 죽을 사람만 있다.






저거 또 거짓말이다.

일주일 전 새로 산 프라이팬.

오늘 보니 긁힌 자국들이 선명하게 나있다.

저번에 새로 산 이유도 이 녀석이 요리한다고 쇠숟가락으로 죄다 긁어놔서 그런 건데,

새로 산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나갔다 온 사이 또 이래 놨다.

내가 따지고 들자 자기가 안 그랬단다.

나 일하는 동안 봉칠이(고양이)가 프라이팬 위에 앉은 파리를 잡으려다 발톱으로 긁어놨단다.

되지도 않는 변명에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그 순간 내가 그 녀석을 향해 들고 있던 팬 위에 파리가 앉았고,

봉칠이가 날아올라 팬에 슬래쉬를 갈겼다.

선명한 발톱 자국.

이런, 정말인가?

하긴, 내가 이번에 팬을 새로 살 때 다시는 요리할 때 쇠숟가락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고,

요 일주일 동안 정말로 잘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봉칠이 이 녀석. 너 때문에 괜히 큰 싸움날 뻔했잖아.

아직 살짝 의심스럽긴 한데 한 번만 더 믿어보기로 하자.

띠링.

'봉칠이님, 안녕하십니까? 해피동물병원입니다. 8월 11일 오후 2시 진료 예약되었습니다.'

내원 후 일주일 뒤로 예약을 잡아준다고 했으니깐 11일 맞네.

그러면 오늘이 8월 4일.

잠깐, 오늘 내가 봉칠이 데리고 병원 갔다 왔잖아!!!






싱크홀에 빠졌다.

다행히도 깊이가 얕아 살려달라고 소리쳐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 근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나는 소심해서 사람들한테 부탁 같은 거 잘하지 못한다.

남들한테 간섭받기도 싫고 간섭하기도 싫다.

이런, 그럼 어떻게 하지?

혼자 올라가 보려 노력해봐야겠다.

내 키보다 아주 조금 더 높으니 멀리서부터 도움닫기를 한 후 점프를 하면 턱에 손이 닿을 듯하다.

그럼 뒤로 멀찍이 떨어져서, 신발끈을 꽉 묶고, 심호흡 크게 한 번 한 후. 전속력으로... 출발!

와 다다다 다 점프! 퍽.

손이 턱에 한 참 못 미친 채로 얼굴을 벽에 박고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생각보다 한 참 높다.

다시 자세히 보니 내 키보다 최소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코에서 무언가 따뜻한 것이 주르륵 흐른다.

피다.

아픈 것보다는 너무 창피하다.

혹시나 누가 본 것은 아닌지 주위를 살펴본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아 모르겠다.

그냥 오늘은 포기하고 내일 다시 시도해보자.

다음날 아침,

어라? 싱크홀이 이렇게 깊었던가?

이제 내 키에 세 배 이상 되는 것 같다.

내가 잠든 사이 조금 더 가라앉았나 보다.

지금이라도 사람들한테 도움을 구해보는 게 낮지 않을까?

아니다. 지금 어제 흘린 코피 때문에 얼굴이며 옷이며 전부 엉망이다.

이 모습을 남들한테 보여줄 수 없지.

혼자 조금 더 생각해보자. 방법을.

난 분명히 나갈 수 있을 거야.

혼자 힘으로.

잠깐. 오히려 잘된 일이야.

요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혼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하늘이 내 마음을 읽은 건가?

아니, 땅이?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어라? 주위가 갑자기 왜 이렇게 어둡지?

아직 낮인데?

이제 하늘이 천장에 난 창문처럼 작게 보인다.

창문은 점점 더 작아지고, 내 주위도 점점 더 어두워진다.

얼굴에서 따뜻한 것이 흐른다.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나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가라앉는다.

마치 내가 구덩이를 더 파듯이.





-이옥섭 감독 영화 "메기" 왓챠피디아 평이 아닌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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