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행복은 찰나라더니 결국은 돌아온 무상(無常)주의.

by NOMAD J

1.

공시 시즌이 되었고 회사 분위기는 하루 아침에 축 쳐지다 못해 아주 그냥 초상집이다. 이대로 망하는가 라는 선뜻 꺼내놓기 두려운 그 어떤 우려도 있겠지만, 아마도 일부 윗 직급 양반들은 이 모든 일은 결코 "내 탓"이 아니라는 자기방어를 위해 일단은 숨 죽이고 목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는 것이리라.


"우리회사 지금 ㅇㅇㅇ문제가 있어~ㅋㅋㅋㅋ 거봐, 내가 언젠간 이렇게 된다고 했지?"라고 낄낄대며 혈육에게 톡을 보냈더니, 전쟁으로 인한 금융위기급 경제 상황에 비추어볼 때 지금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일 거라며 어떻게든 끝까지 버텨보라는 조언을 너무나 진지하게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엄청 외로워졌다. 옆에 누가 없어서 외롭다는 느낌이 아니라 뭐랄까... 가슴에 콱 돌덩이가 들어앉는 느낌.

일어나지 않은 일에 걱정을 듣는 것도 이제 지친다. 지친다 지친다 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얘기할 데도 거기밖에 없어서 자꾸 말을 얹는 나도 지겹고.


내심 진짜 회사의 어떠한 상황으로 인해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의 삶에 일말의 변화가 있다면 그 역시도 재미있지 않겠는가하고 조금 들떠 있었는데, 아주 찬물을 확 그냥 들이부어주니 일견 고맙기도 하다.

결국은 나를 이해하는 자 세상에 하나 없다는 진리를 완전히 일깨워줬으니까.



2.

아주 오랜 친구가 있다. 친구라기보단 약간 친척형제 같은 느낌이 있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이웃사촌으로 같이 커왔고 명절마다 만났으며, 가끔은 진짜 "야 나 이런이런 일이 있는데 술 땡기는데 한잔할까?"하고 서로 쉽게 제안하고 거절하는 뭐 그런 사이였달까.

은연중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추측은 했지만, 사실 정확히는 몰랐다.

친구 관계이지만 그의 마음 속의 나는 결국 이성이었다는 것을. 또한 욕망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어쨌든 결론적으로 현재 찐친을 하나 잃은 셈이 되었다. 알게된 이상 이전과 똑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얽힌 유대관계 속에서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연결고리만 남겨둘 작정이다.


거봐. 내 마음과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어. 세상에 그런 건 없어.



3.

그러고보면 나는 참 까다로운 작자이다.

누군가의 온전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데 그 지지와 사랑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아니, 세상 어떤 이가 내가 원하는 방식과 깊이의 그것을 알겠는가.

게다가 역지사지를 좀 해보자면, 정작 나는 뭇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지지와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자인가 말이야. 택도 없지.


회사 꼬라지는 재미있게 흘러가서 마치 설 얼어있는 강위에 서 있는 듯 위태롭고,

나를 둘러싼 이들과의 관계에서는 그들은 모르게 나혼자 몰래 "거리 재책정"하여 멀찍이 떨어져나왔다.


최근 내가 좀 신나게 살았는데 말이야. 사실 순탄한 시기는 원래가 그렇게 길지가 않아. 그러니 종종 소소한 현타라도 있어야 그게 또 정상적인 삶인거 아니겠어. 까다로운 작자이거나 쉬운 작자이거나 사는 건 그냥 다 그렇게 먹고 자고 일하고 놀고, 이런저런 관계들에 괴로워하고 현실에 주저앉고 그런거지 뭐 특별한 게 있나?

그들이 잘못된게 아니고 또 내가 잘못된게 아니고. 그냥 그런걸껄?!

시간은 갈테고 많은 것들은 망각되겠지. 그러다보면 때때로 '오~요즘 좀 삶이 괜찮은데~'하고 피식 웃는 날이 있을테지.


대충 살자. 대충.

자기혐오는 금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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