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아도 되지만 괜히 한번 써 보는)
퇴근 길 지하철에서 운이 좋게도 앉을 자리를 찾았다. 나이가 들수록 감성도 뭣도 없어지는지 이제는 이동할 때 뭘 거의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 귀로 눈으로 들어오는 자극도 종종 피로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보면 머릿 속은 또 이런 저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과 공상들로 가득찬다. 어차피 나중에 기억도 못할 그런 생각들. 그러다보면 꾸벅꾸벅. 신나는 퇴근길에서도 나는 그냥 조는 사람. 누가 보면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줄 알겠다.
집에 돌아와 서둘러 운동복을 갈아입고 아주 약간의 요기를 한다. 뭘 먹고 바로 움직이긴 뭐하니까 30분정도만 소화를 시켜야지 하고 생각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또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어디보자 내가 지난 두어주동안 운동을 얼마나 했었더라? 오늘 하루정도는 쉬어도 되려나? 하고 캘린더를 본다. 음....지난 15일 중에 9일을 나름 고강도 운동을 했구나. 심지어 그제는 10km달리기, 어제는 거의 쉬지 않고 테니스 3시간. 나이를 고려하지 않은 운동량이긴 했군, 스스로에게 좀 못할 짓이긴 해.
오늘은 쉬는 게 맞겠다며 다시 잠옷으로 갈아 입고 소파에 털썩 눕고 보니 상당히 공허하다. 어디 보여주고 내세울 데도 없으면서 늘 성공하지 못하는 다이어트는 왜 평생 하고 앉았는지 건강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운동은 왜 이렇게 강박적으로 해대는지에 대해서 답 없는 고찰을 해보다가 새우깡을 집어 들어 와작와작 씹는다. 이 과자는 도대체 왜 몇십년동안 먹어도 항상 맛있는건지. 이러니 다이어트가 될 리가 있나 쳇.
수년 전, 진짜 제대로 다이어트를 해보겠다며 시작했던 운동은 어쩌다보니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그냥 습관 내지는 강박 같은 것이 되었다. 게다가 운동을 하고 있을 순간에는 세상만사 모든 것이 다 잊혀지고 그 순간의 고통만이 존재하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이라 언젠가부터는 정신 건강을 지키는 하나의 수단으로 기능했다. 삶의 무의미함과 무력감을 육체의 고통으로 잠깐 잊는 정도이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좀 보람 있고 뿌듯하니까, 뭐라도 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드니까.
오는 주말에는 미루고 미뤄뒀던 이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약속이 2건이나 있는데, 못 참고 사이사이 잡아 놓은 운동스케쥴을 다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 뭐 그 어떤 것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또 두루뭉술하게 그렇게 잘 지나가겠지만 주중보다 피로가 쌓이는 주말이 되고 다가오는 주중엔 더 피로하겠지.
..
결론.
요즘 전에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아마도 잡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이 몸을 놀리는 것이 꽤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 싶다. 스스로 어떤 인간인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조금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 상당히 고무적이지 뭔가.
이제사는 더 이뤄내려고 용을 쓰고 살지 않아도 괜찮을 것도 같다. 사실 그간도 딱히 이룬 건 없었는걸. 부모님이 "내 새끼가 ㅇㅇ야~"라고 말할만한 자랑거리가 되어드리지도 못했고, 부자가 되기는 커녕 그냥 나 하나의 지금 현재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뿐인걸.
근데 그거면 되지 않나? 그렇지?
나는 시방 매우 긍정적인 인간.
오래갔음 좋겠다. 이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