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라...

빨리 하고 싶....

by NOMAD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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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시고 뭐하실 거예요? 좀 쉬시려구요?"

"백수할거예요. 일종의 은퇴라고 할까요?"


부장님은 아주 후련하다는 듯 웃으시며 이제 "은퇴"를 하시겠노라 선언에 가까운 말을 하셨다.

정년이 십년도 넘게 남은 젊은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직 입에 올릴 단어는 아니실 듯 한데.


은퇴라.

나는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까 전전긍긍하며 책임회피가 가장 중요한 과업인 사람들 사이에서,

영혼 없이 회사에 기계적으로 출퇴근을 하며 눈 앞에 일들을 처리하기 바쁜 이 생활을 끝낼 방법은 정말이지 "은퇴"말곤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준비되지 않은 노후, 사무 근로 제공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형편에 벌써 "은퇴"를 하겠다고 달려들 순 없는 노릇.


오래도록 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마 나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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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경영진 중 하나는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본인이 주장해서 진행했던 몇 가지 프로젝트를 다 실패했다. 야심차게 런칭한 제품은 제대로 판로를 개척하지 못했고, 재고처리가 되지 않아 고생을 했다. 그래서 이제는 관련 사업이 다 중단이 된 듯 하고, 기존부터 해오던 사업에 좀 더 내실을 다져 꼭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뭐든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다급함도 이해한다.

한동안 그는 회사 전체를 통틀어 제일 바쁜 듯 했다. 무슨 미팅은 그렇게도 많이 하는지 보고를 하려면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그가 이동하는 틈새시간을 노려야했다.

그의 다급하게 오가는 발걸음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나는 그가 이번에도 실패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그가 계속해서 만나고 있는 많은 "전문가"라 칭하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60대 이상이다. 그가 교류하는 사회는 이제 젊지 않다는 반증이다. 아니 젊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것이 사업적 측면에서 문제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그 어떤 사업군보다 레드오션 중에서도 레드오션인 이 업계에서 60~70대 이상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중년이 되어버린 나도 벌써부터 느끼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변화가 귀찮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는 것도 키오스크를 쓰는 것도 힘들어지는 것은 변화에 노출이 적기 때문도 있고, 또한 노출이 되었더라도 시도하고 학습하기보다는 기존의 가장 안전하고 익숙한 방법을 유지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모두 직접 움직였다. 대표자로 큰 결정을 하고, 실무는 젊은이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직접 뛰는 사람들이었다. 이 말인즉슨 일을 진행해가는 방식 역시 전통을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 해당 사업을 진행에 나가는데 필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은퇴를 선언하고 떠난 부장님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 채용이 시작되었다. 채용은 지지부진했다. 채용의 기준도 계속해서 변경되어서 공고가 몇번은 내려갔다 올라갔다 했다. 고위급을 뽑겠다고 했다가 실무자를 뽑겠다고 했다가 도대체 뭘 원하는지 가늠이 어려웠다. 어쩌면 무슨 일을 어떻게 추진해야할지를 책임자가 모르고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심지어 채용과정은 까다롭기가 짝이 없었다. 몇 번의 면접, 몇 번의 프리젠테이션, 레퍼런스 체크까지 가능하면 하자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원해주었지만, 때마다 모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와중에 면접관이라고 오는 그가 말하는 그 "전문가"들은 역시 모두 연로했다.


세 번째, 사람을 쓰는 방식이 때때로 불공정하다.

그러던 중, 그는 추천을 받았다며 몇몇 사람들을 채용하겠다고 했다. 매우 고위급의 사람들이었고 그간의 채용 노력이 무색하게 하루 이틀 만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갑자기 상근인력이라며 누군가가 왔다.

뒤늦게 듣게 된 뉴페이스의 이력은 대체로 중구난방이었다. 그가 회사와 투쟁하여 얻어낸 이 뉴페이스의 직급과 연봉에 비해 관련 경력은 "적다"라고 표현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매우 적었"으며 심지어 그 적은 경험치도 같은 사업군 혹은 같은 제품군의 것이 아니었다. 최근에 알게된 "전문가"들의 추천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는 그 전문가들의 말 한마디를 회사의 일반적인 채용과정보다 신뢰한다.

지켜볼 일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결론.

내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는 아집과 독단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내가 관찰하고 있는 그와 비슷한 판단을 하게될 수도 있다. 세상이 모두 객관과 공정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할테고 역시 내가 직접 겪어본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그들의 말을 신뢰하며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시간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나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게 조금씩 늙어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종류의 일에서는 반드시 "은퇴"하는게 일종의 꿈이 되었다.

다가올 나이에 맞는 괜찮은 일이 뭔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

은퇴라는 것을 이렇게 여러모로 자주 생각하게 되다니.

격세지감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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