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싫어.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대략 1년 반 가량이었다.
치료를 받는 동안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던 환경을 제거했고(퇴사), 좋아하지만 그 시절엔 그렇게도 하기가 어렵던 운동도 어떤 식으로든 계속 했으며, 가족에게도 나는 치료를 받고 있다고 알렸고, 의사의 의지로는 이 치료를 "완료"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약을 조금씩 줄이거나 끊어보면서 내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마지막 진료.
그간 마지막 남은 약을 드문드문 먹고 있었고, 새로운 곳에 입사를 하고 2주차부터는 아예 먹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의사에게 확인을 받고싶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로 시작되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던 진료는
"아, 이제 치료 종결 하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잘 지내시고요. 혹시 뭔가 궁금한거나 어려운 거 있으시면 연락주시고요. 안녕히 가십시오.(일어서서 꾸뻑)." 로 끝이 났다.
치료 종결.
말만 들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은가말이다.
회사에서 뜻 모를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매일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머리를 쳐밖으며 괴로워하고, 세상만사 다 의미없다며 술을 마시며 버티던 수년이 그렇게 지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우울증 약이 진짜 도움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 약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것, 내 인생은 어쨌든 행복해져야하는데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각,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야 한다던 의사의 조언, 퇴사, 쉼. 나의 의지. 이 모든 것의 콜라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진짜 감기 같은 것일까? 한번 걸려본 자는 또 한번은 쉽게 접근이 되는 것일까?
최근에 나는 다시 좀 위태롭다. 여차저차 흘러가는 시간엔 눈에 초점을 흐리고 멍을 때리기 일쑤이고, 약간의 두통은 왔다갔다 한다. 분노가 치밀었다가 들어갔다가 자책했다가를 반복하고, 가끔 이유없이 눈물이 터지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정신적인 문제인지 이제는 호르몬의 변화가 시작되는 나이이기도하니 그 때문인지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뭔가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고 느껴진다.
마음이 좀 어렵다고 토로하였더니 가까운 지인이 책을 하나 추천해주었다. 따지지 않고 바로 구입하여 열어본 첫 챕터의 첫 들머리는 "삶은 고해(苦海)다."였다.
한 챕터를 다 읽기도 전에 덮었다.
언젠가 이 글귀들이 마음에 들어오는 날도 있겠지. 지금은 아니다. 고통인거 누가 모르나, 다 지나간다는거 누가 모르나, 기대 없이 현재를 감사하라는 것 누가 모르나. 안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나. 그건 그냥 체념이지.
어차피 살아야하는 거 좀 편안하게 살아지면 좋으련만.
인생의 의미 따위나 행복이나 자유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는 사실이 그냥 자연스러운 것일진데
그렇다면 의미나 행복이 없는 그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없는 삶을 굳이 살아내야 할 그 의미를 찾지 못하여 괴로워하는 나 또한 참 어지간히도 어려운 작자이지.
아무튼 아직은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스스로의 판단 아래,
기계적이지만 성의를 다해 회사를 다니고, 주말엔 열심으로 운동에 매진한다. 혼술을 가급적 줄여보고자 애쓰고 있고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뭐 노력해볼 밖에, 평생 이 우울감이라는 놈과 싸웠다가 화해했다가를 반복할 수 밖에 없겠거니 하고 대충 살자. 병원 갈 정도로 나빠지진 말자. 그 또한 내 맘 처럼 되진 않겠지만.
어쨌든 다시는 싫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