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느 중린이의 오해
지금 일하는 병원은 위치 덕분인지 외국인 환자를 볼 일이 제법 많다.
같은 외국인 환자라고 해도, 나라에 따라 병원에서의 태도에는 묘한 차이가 있다.
나는 한때 일본어를 조금 배웠다. 잘한다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일본인 환자가 오면 아주 간단한 표현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일본인 환자들을 보면, 본인이 한국어를 꽤 잘하는 경우에도 한국인 보호자를 꼭 데리고 오는 일이 많다. 어느 정도는 스스로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데도, 혼자 오는 경우는 드물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인지, 혹은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게다가 정말 많이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잘 오지 않는 편이라, 내가 일본어를 쓸 기회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반면 중국인 환자들은 조금 다르다.
영어가 가능한 것도 아닌데, 번역 앱 하나를 들고 혼자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 파파고 화면을 내밀며 여기 아프다고 말하고, 어떤 검사를 해야 하냐고 묻고, 가격은 얼마인지도 꼼꼼하게 확인한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다. 그런데 몇 번 겪다 보니, 그것도 그들 나름의 방식이구나 싶었다.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 필요한 말을 직접 하고 필요한 것을 챙기는 태도. 무례하게 느껴질 때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악의라기보다 생존 방식에 가까워 보였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요즘 나는 중국어를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아직은 정말 초급이다. 여행 가서 먹고 싶다고 말하고, 길을 묻고, 계산할 수 있는 정도. 그래도 중국인 환자가 워낙 많다 보니, 몇 마디라도 할 수 있으면 소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얼마 전에는 중국인 아주머니 한 분이 딸과 함께 외래에 왔다.
딸은 대학생쯤 되어 보였고, 한국말도 꽤 유창했다. 다만 아직 완전히 자연스럽지는 않은, 배우는 사람의 한국어였다. 어머니는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그런데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그 어머니의 눈빛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많이 아파 보였는데도, 눈빛은 흐리지 않았다. 불안에 짓눌린 표정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체념한 얼굴도 아니었다.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외국의 병원에 와 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이상할 만큼 의연하고 단단해 보였다.
딸의 말을 통해 들은 사정은 이랬다.
그분은 중국에서부터 빈혈 치료를 받아 왔지만 정확한 원인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대장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은 뒤부터 만성적인 빈혈이 계속되었고, 최근에는 호흡곤란과 전신 쇠약이 더 심해져 한국에서 진료를 보러 온 상태였다.
검사 결과를 보고는 나도 놀랐다.
빈혈 수치가 너무 낮았다. 정상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이 상태로 걸어 다니고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당연히 수혈을 권했지만, 처음에는 거부했다. 그래서 일단 철분제를 포함한 보존적 치료를 하며 경과를 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도 수치는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떨어졌다.
결국 환자는 중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문제는 비행기였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으니 장거리 비행이 안전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딸은 내게 비행기를 타도 괜찮겠느냐고 물었고, 필요하면 소견서도 받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자료를 찾아봐도, 비행 안전성과 관련해 어느 정도의 기준은 언급되지만 누구에게나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적어도, 이 상태로 그냥 보내는 것은 불안했다.
결국 딸을 설득해 입원 후 수혈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도 딸은 매우 분주했다. 한국말로 이것저것 물었고, 치료 방향을 이해하려 애썼다. 반면 어머니는 끝까지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다. 상황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도, 마치 이 정도 일은 크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는 듯했다. 우리가 더 긴장하고, 딸이 더 불안해하고, 정작 본인은 가장 조용했다.
수혈 뒤에는 다행히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다.
중간에 발열도 있었고, 수치가 워낙 낮아 의료진 입장에서는 계속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결국 퇴원해서 중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안다.
내가 그 환자의 말을 처음 직접 들은 것은 회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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