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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위한
3대 포기 처방전과 용기 충전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용기?

더 빨리더 높이더 멀리 뛰려는 용기를 더 포기해야 되는 이유는?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지도 모른다. 학교에 들어가면 성적의 사다리가 나를 등수 경쟁에 내몰고, 직장에 취업하면 승진의 사다리가 기다린다. 등반가는 더 높은 산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높이뛰기 선수는 더 높이뛰기 위해 연습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층 아파트나 건물은 세계 최고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오늘 도 경쟁을 늦추지 않고 하늘 높이 건물을 짓는 기술개발에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와 같은 근대 올림필 슬로건처럼 우리 삶은 ‘더(the more)’ 하기 인생 패러다임이 지배해왔다. 이런 삶에서 용기 역시 더 빨리 달리기 위한 노력과 더 높이 올라가려는 도전과 더 멀리 가려는 인내와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용기는 언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더 내딛는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였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어제와 다른 나로 부단히 변신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한계에 도전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했으며, 더 멀리 가기 위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티는 용기가 필요했다. 남보다 더 빨리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사회는 지금보다 더 빨리 달리기를 요구하고, 더 높은 목적지에 도달했지만 더 높은 목적지에 올라야 한다는 강요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나아가 더 멀리 가기 위해 체력을 기르고 힘들어도 참는 삶을 살아왔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한다.  


   

더 빨리더 높이더 멀리”, 이제 더 이상’ 추구하지 말자     


더 빨리 달려왔지만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경쟁에 뒤쳐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하려고 사력을 다해 목표를 달성했지만 또 다른 목표가 나를 몰아세우면서 사람들은 목표가 불행한 인생을 불러오는 장본인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더 멀리 가기 위해 지금 하고 싶은 일도 참고 견디면서 살아왔지만 고생 끝에 달콤한 미래(고진감래, 苦盡甘來)는 오지 않고 신경통이나 관절염 또는 디스크와 같은 통증(고진통래, 苦盡痛來)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빨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참고 견디면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고 견디는 생활을 해왔지만 그런 노력의 끝에 찾아온 결과는 여전히 힘들과 어려우며 앞이 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이었다. 언제 이 터널을 빠져나갈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에서 이제 나에게 강요하는 도전과 용기는 패전으로 절망이며 만용을 부르는 헛된 야망의 다른 이름이다. 빨리 달리는 속도전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대열에서 이탈하는 용기가 더 필요해졌고, 높이 올라가려는 안간힘에서 힘을 빼고 아래를 굽어보는 여유로운 용기가 더욱 소중해졌다. 더 멀리 가기 위해 멀미도 참아가면서 한 순간만이라도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용기는 오히려 내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드는 원흉임을 깨닫고 이제 잠시라도 뒤돌아보며 성찰하는 용기가 우리 삶을 다시 행복의 터전으로 일궈내는 진정한 용기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달려가는 용기보다 더 느리게, 더 낮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 전반의 흐름과 경기변화 추세도 철저하게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과거처럼 폭풍성장을 거듭하거나 호황을 장기적으로 누리는 경기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좀 오래된 자료이기는 하지만 이런 변화 추세는 오래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취재팀이 지난 2010년 7월 각 부문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꾸려 한국 노동패널조사 10년치(1998~2007년)와 통계청 도시가계조사 20년치(1989~2009년)를 정밀 분석한 결과, 지난 20년 사이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멈춰 서거나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로 변화했음이 수치로 확인했다. 한계에 도전하는 나 혼자의 노력으로 거대한 세상의 흐름과 시장 변화를 뒤집을 수는 없다.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삶의 역사에서도 내려가는 시기에는 힘을 빼고 자세를 낮춘 다음 최대한 내려갈 수 있는 밑바닥까지 자기 힘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추락사가 발생할 수 있다. 본인이 내려가려고 결단을 내리고 내려가는 사람과 올라가려고 아등바등하다가 어쩔 수 없이 타의로 내려가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천지차이가 존재한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이제 더 이상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용기가 아니다. 오히려 가끔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용기가 어느 순간 삶의 활력소로 작용하고 패기로 다시 부활되기도 한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말아야 될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의 패러다임이 우리를 덮치고 있다.    

  


용기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기(時期), 시기(猜忌)하지 말고 사기(士氣)를 북돋우자     


더 빨리 앞만 보고 달리려는 욕망과 위로 치솟아 오르려는 충동을 절제하고 무조건 먼 미래의 장기 비전이나 원대한 목적을 위해 현재의 삶을 유보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선 가장 먼저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매 순간 느끼는 삶의 밀도를 추구하며 느리게 사색하는 여유로운 용기가 필요하다. 둘째로 더 높이 올라가 무조건 보다 많은 목표를 달성하려는 결과 중심 삶에서 벗어나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여정에서 깨닫는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하는 과정 중심의 발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먼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지금 이 순간을 재미없게 보내지 말고 더 가까이 일상으로 돌아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기(時期), 시기(猜忌) 하지 말고 사기(士氣)를 북돋우자. 저마다의 결단에 따른 용기를 발휘하는 순간, 시기하지 말고 사기를 북돋아 두자.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주는 용기에 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행복은 목적지에 있지 않고 목적지에 이르는 수많은 간이역에 있다. 더 느리게 걸어가야 더 많이 볼 수 있고, 이전과 다르게 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빨리 달려가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구절양장의 길을 느리게 걸어가며 느끼는 삶의 밀도는 더 소중하다. 삶의 많은 깨달음은 속도에서 오지 않고 밀도에서 온다. 속도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빼앗아 간다. 반면에 밀도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느끼는 삶의 충만감이다. 삶의 충만감은 들뢰즈가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 말하는 ‘비자발적 기억’과 많은 부분에서 일맥상통한다.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의해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반강제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기억이 '비자발적 기억'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맛보았던 마들렌 과자에서 그 옛날 어린 시절 맛본 마들렌의 맛과 그 주변의 기억이 동시에 연상되면서 추억의 향기가 나를 과거의 그 어느 날로 끌고 간다. 그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을 초월해서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면서 잠시 상념에 젖어든다. 이런 비자발적 지각을 통해 충만한 행복감을 누리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내야 한다. 삶의 밀도는 매 순간 느끼는 삶의 충만감이다. 우리가 보내는 매 순간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경이로운 기적의 순간이다. 속도를 포기하고 밀도를 선택하는 용기야말로 가장 과감한 결단이자 삶의 방향을 행복하게 전환시키는 진정한 용기다.     



두 번째 필요한 용기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용기보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고 깨달으며 발견하는 용기다. 힘든 삶이어도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이유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깨닫는 발견의 기쁨 때문이다. 천재들은 자신의 전문성으로 세상에 없는 걸 발명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발명은 못하지만 남다른 관심과 관찰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어제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발견하기 위해서는 앞만 보고 더 높이 올라가려는 성취욕 구보다 하는 일을 어제와 다르게 시도하면서 기쁨을 맛보려는 꾸준함이 중요하다.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 정성을 다해 어제와 다른 결과를 내려는 성실한 사람 앞에 발견이 기쁨을 주는 선물로 다가온다. 목표 달성에 매진하는 결과 중심의 사람은 결과가 주는 순간의 성취감에 즐거워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이전보다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다 촌음을 다퉈 달려가야 한다. 마라톤 기록 단축에 올인하는 선수에게 달리는 여정은 고통 그 자체다. 달리기 여정에서 빨리 탈출하고 이전보다 빠른 기록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안간힘이 달리는 과정을 힘든 노동으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달리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원하는 기록이 안 나왔다고 할지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달리는 과정에서 내 몸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힘든 순간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 새로운 것을 많으 발견할 수도 있다. 힘든 순간일수록 마음이 몸을 지배하지 않고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용기는 먼 미래의 꿈과 비전을 위해 현실적 어려움을 물리치고 묵묵히 참고 견디면서 살고 싶지 않은 지금 여기서의 삶을 견디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용기는 지금 여기서 내 몸이 감각적으로 느끼는 신체적 욕망과 체험적 각성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깨달음의 순간을 즐기는 데 있다. 먼 훗날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미래 지향적 마인드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지금 여기서 몸으로 느끼는 신체적 감성의 수준과 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 이야기는 행복은 관념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삶에 대한 충만감에서 비롯된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서 관념적 사유를 통한 행복한 생각보다 신체적 느낌으로 온몸이 감동하는 경이로운 기적의 행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물과 접촉하면서 생긴 애틋한 사연과 사랑이 그 사람의 사물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드러낸다. 삶이 각별해지는 순간은 스쳐 지나가는 매 순간을 내가 각별하다고 생각하며 의미를 부여할 때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 순간이 각별한 순간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각별한 순간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저 한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추상적인 행복보다 지금 여기서 느끼는 구체적인 일상, 그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이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행복이다.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추억이다. 지금 내가 여기서 보고 듣고 만지며 느끼는 지중해의 쪽빛 칼라와 파도와 함께 다가오는 바람, 그리고 하늘과 바다와 만나는 저 수평선의 끝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포옹을 내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다. 지금 내 눈썹을 휘날리게 하며 귓전을 스쳐 지나가는 가 머리를 흔들어 깨우며 몸과 맘을 환기시키는 아드리 해의 바닷바람은 지금 내 신체가 여기 있기에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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