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용기는 심장이 떨릴 때 떠나는 결단이다
진정한 용기는 심장이 떨릴 때 떠나는 결단이다
심장이 떨릴 때 떠나지 않으면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지금 여기서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에서 행복이 시작된다
톨스토이가 던진 세 가지 질문을 보자.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바로 지금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 대답은 지금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바로 그 일, 특히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그 사람을 위하여 베푸는 사랑의 수고다. 흘러가는 한 순간, 지금 내가 보내는 이 순간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순간이다. 지금 내 앞에서 아른거리는 이 순간이 나에게 각별해지고 특별한 추억으로 재생되기 위해서는 매 순간마다 내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사연을 만들어야 한다. 톨스토이가 던진 질문과 대답처럼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순간 지중해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모금이 입안을 감싸고돌면서 적당한 취기를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같이 일몰 직전의 지중해를 바라보며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나와 같이 여행을 떠난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더불어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는 일이다. 진정한 용기는 지금 당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뭔가를 할 수 있는 결단이다. 행복해지는 비결 역시 먼 미래와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베푸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언제 이 느낌을 다시 향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서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에 행복했다는 말은 지금도 행복하다는 말이 아니며 앞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말 역시 지금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행복은 두 발로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며 두 손으로 만져보고 두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들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미래의 언젠가에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추상도 일상에서 비롯되지만 추상화된 명사가 다시 일상으로 내랴와 보통사람들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버무려지고 그들의 삶과 뒤섞이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잉태된 추상일지라도 일상과 가까이할 수 없는,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래서 현실에서 붕 떠 있는 관념의 파편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척박한 땅에서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몇 송이밖에 열리지 않은 포도를 따서 숙성시킨 크로아티아산 명품 와인 딘가츠(DINGAC), 뽀스트업(POSTUP), 뽀쉽(POSIP), 사람이나 식물이나 자라는 환경이 혹독할수록 쉽게 자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성장통을 경험하며 자란다. 특히 와인은 혹독한 환경에 자란 포도일수록 숙성시킨 와인일수록 그 향이 짙고 그윽하며 형언할 수 없는 잔향이 남는다.
그 와인이 지금 지중해 해변의 어느 카페에서 내 입안으로 들어와 혀끝을 자극할 때, 입안에 감기는 와인의 맛과 풍미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을 던져준다.
행복은 정신으로 판단하는 이성적 사유의 산물이라기보다 내 신체가 감각적으로 반응하면서 온몸을 파고드는 육감적 반응이다. 지금 내 신체가 와인이 던지는 풍미와 깊은 맛의 향연을 즐길 수 없다면 행복도 욕망도 없다. 신체 없는 욕망 없고 욕망 없는 행복도 없다. 몸으로 느낄 수 없는, 느끼지 않는, 행복은 관념의 찌꺼기이며, 현실에 다가올 수 없는 환상일 뿐이다. 인간적 성숙의 조건은 동일한 것, 익숙한 것을 보고도 이전과 다르게 그리고 낯설게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역시 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해서 인간이 해온 것은 결국 감성의 생산, 이전과 다른 오감의 형성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여행은 익숙한 세계를 떠나 낯선 세계와의 신체적 접촉을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과정이다. 여행은 또한 익숙한 세계에서 늘 봤던 익숙한 것을 이전과 다르게 보며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행이 특별하고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소한 것이 더 이상 사소해 보이지 않으며 익숙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고 원래 있었던 익숙한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하다.” 니체의 말이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잘 못 인식해왔다는 것이다. 니체는 값비싸고 위대한 것만이 중요한 것이고 늘 만나는 익숙한 것, 무관심하고 간과했던 사소한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얘기한다. 진정한 용기는 위대한 것을 선택하려는 안간힘보다 사소한 것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결단에서 비롯된다.
심장이 떨리기 전에 떠나지 않으면 다리가 떨린다
여행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사소한 것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소중하게 다가오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나에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소중한 체험적 사유의 과정이다. 사소한 것을 더 이상 사소한 것으로 보지 않고 거기서 이전과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과정이 다름 아닌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루 여행을 통해 무엇을 먹고 어디를 거닐었으며, 거기서 나의 신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감각적으로 느꼈는지, 그리고 어디서 잠을 잤으며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느꼈는지 이런 사소한 하루 일과의 연속에서 내 오감을 열어놓고 신체가 반응하는 과정을 관조적으로 살펴보면 니체가 얘기하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구체적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흔히 중요한 것은 남의 가치 판단기준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남의 그 중요한 기준으로 삶의 기준으로 살아가다 보면 내 삶과 나의 이야기는 실종되고 남의 이야기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남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 종일 소비하는 삶을 소비한다. 남의 이야기에 파묻힐수록 나의 이야기는 실종된다. 나의 이야기가 없는 세상은 이미 내가 사망한 세상이다. 세상의 중심에 나를 다시 끌어 들어야 한다. 나의 이야기는 내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야기는 체험적 스토리다. 몸이 동반되는 체험이 없으면 당연히 스토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체험이 동반되는 스토리라야 스스로 자기 히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 남의 이야기에 휘말려 살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살아가야겠다는 결단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용기가 살아난다. 자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심장 떨리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 중요한 것보다 정말 소중한 것은 신체가 존재하는 동안 신체와 더불어 일어나는 내 삶의 일상을 어제와 다르게 반복하는 것이다. 신체가 갈망하고 욕망하는 일상적 삶에서 신체와 더불어 부딪히는 모든 체험적 일상이 내 삶의 일상이고 내 행복의 원천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체가 건강하고 사지가 멀쩡할 때 미래의 언젠가 향유할 행복을 담보로 가정법 인생을 산다. 그렇게 고생 끝에 달콤한 미래가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믿고 전력투구 했지만 마지막으로 내 신체에 남는 것은 신경통과 관절염, 연골파괴와 디스크 등 온몸에 남기는 병뿐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이제 고진통래(苦盡痛來)로 바뀌면서 고생 끝에 남는 것은 온갖 통증뿐이다. 나이 들어서 필요한 것이 참으로 많지만 보고 싶은 것은 내 두 다리로 걸어가서 직접 피부로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골이 필요하다. 연골 없는 신체는 이미 신체가 아니며 신체 없는 욕망과 행복, 이미 헛된 망상이며 행복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 신체를 경멸하고 영혼을 돌보는 일이 철학의 핵심 임무라고 생각했던 플라톤 철학의 전통 때문에 신체의 욕망과 감정을 통제하는 이성 우위의 철학을 시종일관 강조해온 서구 철학은 절름발이 철학이다. 니체는 망치 철학자답게 신체를 커다란 이성으로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을 작은 이성으로 전복시켜 신체의 욕망을 이성 우위에 두는 디오니소스적 철학을 펼친 것이다. 신체가 따라야 감각적 체험이 동반된다. 감각적 체험이야말로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원천이다. 진정한 용기는 몸을 이끌고 어제와 다른 감각적 체험을 다르게 축적하기 위해 지금 여기서 저기로 과감히 떠나는 용기다. 지금 떠나기를 미루면 영원히 떠날 수 없다. 심장이 떨릴 때 떠나지 않으면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다리가 떨리면 살아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증표다.
진정한 용기는 하찮은 일이라도 꾸준히 지속하는 끈기다
신체 없는 영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체 없는 사람, 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삶은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은 삶이며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은 삶은 미래의 언젠가가 되어도 행복하지 않다. 여행에 관한 박지원의 《열하일기》, 괴테의 《그림과 글로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1-2》와 알렝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의 책을 아무리 읽은 들 무슨 소용이랴. 내 두 발로 걸어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내 신체로 직접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의 유명한 여행 관련 책이나 영화는 그저 책이나 영화일 뿐이다. 여행 책에 나오는 더없이 좋은 명언도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내 신체에 각인시키거나 육화 되지 않는다면 부표처럼 떠돌아다니는 관념의 파편이나 허구적 담론에 불과하다. 세상의 여러 좋은 말보다 내 육신의 고통스러운 체험 덕분에 뼈 속에 각인된 한 마디가 내 인생의 시금석이 되고 디딤돌이 된다. 걸림돌에 넘어져 아프지만 참고 견디면서 깨달음의 교훈으로 피워낸 각성이 다른 사람에게도 여전히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던져준다. 악조건 속에서 사투 끝에 위기를 극복한 스토리에서 도움이 되는 한 마디가 나온다. 비록 그 한 마디가 어설프고 설익었을 지라도 세상의 명사들이 벌이는 말씀과 명언의 향연보다 훨씬 내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내 몸에 상처를 준 체험적 깨달음이 걸러낸 한 마디가 더 절실하게 다가오고 감동적인 느낌으로 온몸을 파고든다.
베스트셀러를 수없이 읽어도 내 인생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읽고 위로받으며 감성적으로 만족하고 감동받을 뿐, 손발이 움직여 직접 실천해보고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감동받고 위로받지만 그럴수록 내 신체는 더욱 무기력해지고 내 마음은 더욱 무료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얼마나 세상의 좋은 말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모든 좋은 말이 처방해주는 대로 살아갈 필요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지만 그래도 심금을 울리는 한 마디가 내 삶의 전부를 뒤흔드는 전율하는 체험이 있다. 그 전율의 체험이 내 삶의 전부나 일부로 고스란히 들어오지 않는 이상 말은 말을 타고 주마간산처럼 휙 지나갈 뿐이다. “높이 오를 생각이 있으면 그대들 자신의 두 발로 오르도록 해라.” 역시 니체의 말이다. 성현들의 옳은 말이 들어 있는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에 쓰인 옳은 말대로 내 신체가 체험하지 않으 파편화된 관념이나 환상에 머무른다. 세상의 모든 사상은 내 두발로 건져 올린 체험적 소산이자 치열한 몸부림의 산물이다. 세상의 옳은 말에 더 이상 심취해있지 말 세상의 바깥, 지금 여기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내 몸을 던져 경계 밖으로 뛰쳐나가 온몸으로 사유해보자. 거기서 건져 올린 한 마디가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 여행은 그런 면에서 너무나 경이로운 신천지의 체험을 내 신체로 온전히 겪어보는 감동의 연속이다. 원하는 것을 순식간에 발견할 수 없다. 남다른 관심을 갖고 매일 하는 일도 어제와 다르게 시도해보려는 용기와 끈기가 새로운 깨달음으로 유도한다. 진정한 용기는 대단한 거사를 꾸미는 신중한 계획에서 비롯되지 않고 하던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하는 인내와 끈기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