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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발상’이 아니라 ‘연상’이다

일상에서 구상하는 상상력이라야 비상할 수 있다

글쓰기는 발상이 아니라 연상이다

일상(日常)에서 구상(構想)하는 상상력(想像力)이라야 비상(飛上)할 수 있다


《천천히, 스미는》은 영미 작가 조지 오웰이나 마크 트웨인을 비롯하여 25명의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이다. 오늘 읽은 작가는 조지 오웰의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돌아오는 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노동이 절감된 유토피아에서 행복할 이유가 있을까? 그 사람은 기계 덕택에 생긴 여가 시간에 무얼 할까? 중략. 우리가 어린 시절 사랑했던 나무와 물고기, 나비 그리고 – 내가 처음 든 사례로 돌아가서 두꺼비 같은 것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미래가 조금 더 가능해질 것이며, 강철과 콘크리트만 떠받들라고 가르친다면 우리 인류는 남아도는 에너지를 서로 증오하고 지도자를 숭배하는 일에 쏟아붓게 되리라 나는 믿는다”(99쪽). 글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만나면 바로 메모한다. 행복이라는 글을 쓸 때, 4차 산업혁명이 와도 자동화로 확보한 여가 시간을 또 다른 자동화에 투자해서 계속 속도전을 치르는 불쌍한 현대인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로 활용할 예정이다. “공장에는 원자폭탄이 쌓여가고 거리에는 경찰들이 어슬렁대고 확성기에서는 거짓말이 쏟아져 나와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돈다. 독재자도 관료도 이런 변화가 제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결코 막지 못한다”(100쪽). 이런 구절 역시 바로 밑줄을 긋고 독서일기 폴더의 파일을 열어 컴퓨터로 타이핑해서 저장해놓는다. 인간의 힘으로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때가 되면 그친다. 내가 걱정한다고 내일 해가 안 뜨는 경우는 없다.



읽기와 쓰기는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연동된다


나는 자주 피트니스 센터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며 앞에 보이는 TV를 보는데 생활의 달인에 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가방 가게 권창민 대표의 스토리가 나온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난감한 사람들, 비밀번호를 잃어버려서 열지 못하는 그 어떤 캐리어를 갖다 주어도 손으로 계속 돌려보면서 미묘한 손 감각을 이용해 다 열어버린다. 심지어는 눈을 가린 상태에서도 번호를 계속 돌려가면서 맞춰 보다가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놀라운 달인의 신기(神技), 예전에 전 세계 어떤 금고를 갖다 줘도 미묘한 손 감각으로 열어버렸던 선일금고의 김용호 회장님을 연상케 한다. 이 장면을 보고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서 바로 파워포인트를 만들었다. 예전에 만들었던 장표를 찾아서 수정한 다음 단순 지식을 넘어서는 체험적 노하우가 축적된 실천적 지혜의 대표적인 사례로 활용할 예정이다. 내친김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읽었던 구절을 발췌해서 읽던 중 놀이와 일에 대한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만났다. “논다는 말은 세상에서 노는 일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논다는 뜻이다”(201쪽). “아이들처럼 놀려면 삶과 정신의 대부분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202쪽). 양육을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은 교육 전문가일 뿐이지만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는 어머니이다“(203쪽). “군사전략에 대해 기사를 쓰는 사람은 그저 기사 쓰는 사람일 뿐이다. 참으로 지겨운 풍경이다. 그러나 양철 병정으로 군사 작전을 펼치는 아이는 살아있는 병사로 군사 작전을 펼치는 장군과 같다. 아이는 아이의 능력이 닿는 한 작전을 궁리한다. 하지만 종군 기자는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293쪽). 역시 《천천히 스미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하면서 일을 하는 전문가와 그 일을 즐기면서 재미에 빠져 노는 아이의 창의성을 이렇게 극명한 대조를 통해 명쾌하게 표현하다니. 우리가 일상을 지루한 반복을 통해 다리가 떨리는 인생을 사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심장이 뛰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일을 놀이처럼 해야 되는 이유와 그 정당성을 한꺼번에 알려주는 놀라운 문장을 만나 오늘도 행복한 공부가 되었다. 깊은 고민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펼쳐 드는 책이 산문집이나 에세이집이다.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과 《천천히 스미는》을 보고 갑자기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의 서문을 쓰는데 조지 오웰의 글과 체스터튼의 글을 읽다가 갑자기 연상이 되어 이런 문장을 완성했다. “나에게 나무는 《멀고도 가까운》 곳에 존재하면서 《천천히 스미는》 존재다. 나무는 내 삶과 먼 산에 다른 나무와 숲을 이루면 존재하기도 하고 가까운 거실과 서재, 그리고 나의 연구실에도 존재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중략.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이 수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뇌리를 파고들어 심장 속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치면 인연이지만 스미면 연인이다. 나는 나무를 그동안 스쳐 지나갔지만 이제 나무는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삶은 글이 되고 글은 다시 삶으로 연결된다


글을 읽다가 쓰고 쓰다가 다시 읽으면서 쓰는 과정은 내가 글을 읽고 쓰는 과정을 별도의 과정으로 분리하지 않는 앎과 삶, 삶과 앎이 따로 놀지 않게 만들어가는 나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문을 보면서 Book Review 섹션을 즐겨보다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구절이 뇌리에 꽂혀서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고 그 시집까지 구매하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지 않았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19쪽).”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세상의 옳은 말은 많지만 먹히는 말은 적은 이유를 설명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거 같아서 좋은 문장이라는 폴더를 열어서 바로 파워포인트 자료로 만들어 놓았다. 귀에서 죽지 않고 심장을 파고들어 의미가 심장에 꽂혀 의미심장한 말이 되려면 그리고 의미심장한 설득이 되기 위한 강연을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 소중한 단초가 되었다. 계속 다른 쪽 신문을 보다가 동아일보 이삼형 전문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장을 만났다. 태초 먹거리 학교를 운영하는 이계호 충남대 명예교수 관련 기사다. “증상 치료는 전문가가 하지만, 원인 치료는 자기가 해야 된다.” 순식간에 뇌리에 박혔고 의미가 심장에 꽂혔다. 이 문장도 바로 명언 폴더의 파일을 열어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놓고 이걸 근간으로 짤막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원인 치료를 하지 않고 증상 치료를 전문가에게 맡기는 우리들의 행태를 통렬하게 꼬집는 말이다. 원인 치료 전문가는 외부 전문가가 아니라 바로 내가 전문가다. 나의 원인 치료 없이 반복되는 증상 치료는 몸과 맘만 아프게 할 뿐이다. 책이나 영화, 잡지나 tv를 보든 걸어가다 간판이나 눈에 띄는 문구를 보든 모든 보는 것은 나에게 공부의 대상이고 글쓰기의 재료가 되며 강연 자료 제작의 단서가 된다. 공부는 날 잡아서 별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일상적 삶의 매 순간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공부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문제의식을 열어놓고 위기의식의 촉수로 세상의 모든 감각적 느낌이나 자극을 받아들인다면 내 몸으로 자각한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내 생각을 흔들어 깨우는 배움의 원천이자 출발점이며 깨달음의 원료이자 체험적 지혜의 원동력이다. 글쓰기는 일상에서 만나는 매사를 글감으로 활용하면서 읽었던 책을 인용하면서 내 생각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글이 삶과 분리된 채 진공 속에서 써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읽고 보고 느낀 점을 매개로 글쓰기는 시도하다 우연히 마주치거나 연상되는 또 다른 글감과 연결시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글은 또 다른 글을 불러와 끝을 모르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단어와 관련된 연상 세계가 곧 그 사람의 상상력의 수준이다


《기획은 2형식이다》의 저자 남충식에 따르면 “아이디어는 발상이 아니라 연상”이라고 주장한다. 글쓰기도 발상이 아니라 연상이다. 특정 주제나 문제에 대해서 글을 쓴 다는 것은 해당 주제나 문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기존 정보나 지식을 동원해서 일정한 논리적 구조에 맞춰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내가 쓰고 글의 주제나 문제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게 폭넓고 깊을수록 글도 넓고 깊게 쓸 수 있다. 연상적 글쓰기는 하나의 주제를 떠올리면 해당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메시지를 연결시켜 글을 써나가는 방식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우여곡절 끝에 전기 용접 2급 기능사 자격을 취득했다. 갈고닦은 연습 끝에 처음으로 낯선 기능사 시험장에서 실기 시험을 봤다. 결과는 보기 좋게 낙방했다. 온도조절이 몸에 익숙하지 않아서 용접봉을 녹여 철판을 붙이다 철판에 구멍이 뚫어져버렸다. 불합격이다. 어차피 불합격이 될 건데 용접봉을 녹여서 철판에 구멍을 크게 뚫어보았다.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철판을 생각하면 보름달이 연상된다. 시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시를 쓸 수 있다면 철판과 보름달을 연결시켜 색다른 시를 쓸 수도 있다. 시인의 영감은 체험적 각성과 독서,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철판 함부로 만지지 마라, 너는 철판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시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를 패러디해서 쓴 시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시를 알아야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원용해서 “철판 함부로 만지지 마라”는 시구절을 연상할 수 있다.



윤수일이라는 가수를 떠올리면 ‘아파트’라는 노래가 연상된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이다. 윤수일의 히트곡 중의 하나가 바로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파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구릿빛 노동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대학 다닐 때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사상은 그가 주장하는 논리 이전에 그 사람의 연상 세계, 그 사람의 가슴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 사람의 사상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연상 세계를 그 단어와 함께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봐요”(65쪽). 신영복 교수님의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에 나오는 말이다. 아파트와 관련된 한 사람의 사상의 깊이와 넓이는 아파트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무엇을 연상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한양대 정재찬 교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 책에 보면 별에 관한 체험적 스토리가 나온다. 정 교수는 별을 주제로 쓴 시를 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장르를 연결시켜 글을 쓰고 있다. 별에 관한 윤형주의 ‘두 개의 작은 별’이라는 대중가요를 소개하는가 하면 영화,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별에 관한 명언, “별은 말이지...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라는 말도 인용한다. 이어서 별에 관한 오란씨 광고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통해 인간의 별에 관한 다양한 상상을 자극한다. 또한 알퐁소 도데의 《별》이라는 소설을 인용하고 철학자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등장하는 별 이야기도 소개한다. 한 마디로 별에 관한 시적 상상력이 시를 넘어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노래와 영화는 물론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횡무진으로 엮인다. 별에 관한 연상의 깊이와 넓이가 내가 별에 관해 글을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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