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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제대로 정리하는 데 알맞은 다섯 개의 알까기

성찰과 재발견, 관계 회복과 독서, 그리고 휴식

한 해를 제대로 정리하는 데 알맞은 다섯 개의 알까기 비법:

Reflect, Rediscover, Reconnect, Read, Relax


2014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등정한 적이 있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등정하기 전에 마지막 밤을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4시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출발한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몰 장면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해 질 녘 앞산의 바위가 불타오르기 시작하면서 주변은 어둠의 밤으로 물들기 직전 해가 넘어가면서 바위산은 불타오르는 활화산처럼 보였다. 해가 넘어가면서 자연이 연출한 한 편의 파노라마였다. 그 순간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나오는 명대사가 생각이 났다.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The beaut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나에게 이 말은 아름다운 것은 사진을 찍지 말아야 된다고 들렸다.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을 찍다가 아름다운 순간을 감상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그냥 보고 흘려보내기가 너무 아까운 장관이었다.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으로 그 장면을 찍었다. 바위산이 불타는 순간을 포착해서 찍는 순간, 이미 해는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한순간을 순간적으로 감상하고, 영원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으로 간직했다. 모든 순간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의 일몰 순간을 감상하면서 3M 법칙을 만들었다. 3M은 Make Moment Memorable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순간(moment)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memorable)으로 만들으라는(make) 의미다.


마차 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직접 찍은 일몰 사진


우리가 보내는 모든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안타까운 순간이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여성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의 일부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감상했던 일몰 장면의 황홀함은 다시 느낄 수 없는 지나간 과거의 추억의 한 장면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그동안 만났던 모든 순간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내 몸에 각인된 잊을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 어떻게 각인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보낸 매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지만 모든 순간을 똑같이 추억해낼 수 없다. “평생 동안,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찍으려고 노력했는데,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All my life, I’ve tried to shoot the decisive moment of life, every moment of life was the decisive moment).” 세계적인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의 말이다. 매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지만 그 순간을 보내는 사람은 그 순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자기도 모르게 보낸 한 순간의 축적이 한 장의 사진으로 기억되고 깨달음을 주는 추억의 한 장면으로 개인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기도 한다. 의미 있게 보내는 매 순간의 축적이 어느 날 기적을 만든다. 모든 기적은 공들여 보낸 순간의 노력이 축적되어 생긴 흔적의 산물이다.


아래 사진출처는 모두 pixabay


오늘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며 연출하는 일몰 장면을 지켜보았다. 매일같이 어김없이 서산으로 넘어간 해는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떠오른다. 일몰과 일출을 반복하면서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또 한 달을 맞이한다. 그렇게 올해도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2019년도 한 달 남짓의 시간을 남겨두고 있다. 연말에는 한 해를 돌이켜보는 끝인 동시에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12월은 일 년의 끄트머리다. 끄트머리는 끝인 동시에 머리가 된다. 끄트머리에는 끝과 시작이 같이 있다. 끝에 머리가 있다는 의미는 끝에서 언제나 새로운 머리, 시작을 맞이한다는 의미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한 해의 끝에서 새해의 머리, 즉 시작을 구상하며 사색에 빠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잉크(Inc)' 매거진에 실린 마케팅 전문가 케빈 돔씨가 제안한 방법을 응용, 5R을 생각해본다. 케빈 돔씨는 Reflect, Reconnect, Reposition, Relax, Recruit를 제시했는데 Reflect와 Relax만 차용하고 나머지는 새로운 R로 대체했다. 오리무중 했지만 5R로 다시 생각해보면 오색찬란한 의미로 다시 빛나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장식할 수 있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그 만큼 나의 영혼도 여물어가기를 기대한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과거에서 배우고 미래를 설계하지만 지금 여기서의 삶을 즐기지 않을 수 없다. 시끌벅적하고 왁자지껄한 송년이나 망년이라는 여인을 만나지 말고 조용히 사색하면서 신년이라는 여인을 만나자. 2019년 ‘끝’을 향하는 시점에서 새해 ‘머리’를 구상해보는 ‘끄트머리’ 성찰법, 다 섯개의 R(Reflect, Rediscover, Reconnect, Read, Relax)을 통해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해본다.



첫 번째 R은 성찰(Reflect)이다. 성찰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언론사에서 연말에 10대 뉴스를 발표하듯이 개인차원이 10대 뉴스를 정리해보는 것이다. 성공적인 체험을 한 일 다섯 가지와 좌절이나 실패 체험 다섯 가지를 나눠서 정리해보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그런 일이 발생했으며, 성공과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었는지를 조용히 반추해보고 복기(復棋)하면서 정리해보는 것이다. 성찰에 이르려면 우선 관심을 갖고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주변 현상이나 주목하고 싶은 이슈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관찰이 새로운 통찰을 불러오지 않는다. 관찰이 통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고찰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관심을 갖고 남다르게 속뜻을 캐내기 위해 유심히 관찰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현재 직면하고 있는 이슈를 해결할 대안을 고민하다 보면 고찰의 다리가 나타난다. 고찰하는 동안 갑자기 큰 깨달음이 오는 게 그게 바로 통찰이다. 통찰을 다시 한번 문제 상황에 적용해서 반추하며 생각하는 과정이 성찰이다. 올 한 해도 관찰하고 고찰해서 통찰을 얻었던 배움의 순간을 성찰해보며 내년을 기약하면 어떨까. 개인적인 반성을 넘어 내가 살아온 과거로부터 배우고(Learn),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지만(Plan), 지금 여기서의 삶(Live)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할 때다.



두 번째 R은 재발견(Rediscover)이다. 지나가버린 일, 간과했거나 무시했던 일을 다시 꺼내 본래 의도에 비추어 어떤 결과를 냈으며, 그것이 갖고 있는 가치를 다시 한번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다. 늘 만났던 사람도 다시 한번 생각(Rethink)하고 늘 보던 일상의 많은 사물이나 현상도 어제와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안 보이던 새로운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딱따구리 혀를 관찰하고 묘사하기, 사람들이 어떻게 살얼음판 위를 걷는지 물어보기, 돼지 허파에 바람을 불어넣어 어떻게 부풀어 오는지 관찰하기와 같은 보통 사람은 봐도 그냥 지나칠만한 것들을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고 물어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빈치를 천재로 만든 원동력은 일상에서 남다른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원래 그런 현상에서 당연하지 않은 생각을 잉태하기를 멈추지 않은 데에서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올 한 해 내가 추진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일 중에 몇 가지만이라도 선정해서 그 일을 추진하기 전에 품었던 기대나 목표대비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그 사이에서 내가 배운 교훈이나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재발견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



세 번째 R은 관계 회복(Reconnect)이다. 한 해 동안 만났던 사람을 회고해보고 주고받은 명함을 정리하면서 그 사람과의 특별한 인연을 돌이켜 생각해본다. 언제 어디서 왜 만났으면, 만남을 통해 받은 인상과 특별한 인연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인간관계의 새로운 맥을 짚어보고 내가 거기서 배운 점이 무엇인지를 반추해본다. 올해는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책을 내면서 그 어느 해보다 인간이 만들어가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무고 성찰해보았던 한 해였다. 작년 이맘때쯤 한 해를 정리하면서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대강 열 가지 정도 떠올린 다음 그런 사람의 부정적인 모습을 연상하면서 글을 쓴 것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귀막아’, 필요할 때만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는 ‘필요한’, 나만 생각하는 ‘나뿐놈’, 365일 자기 과시하는 ‘자랑질’, 많은 문 중에서 말문 막는 ‘입닥쳐’, 만나면 과거 이야기만 늘어놓는 ‘옛날에’, 타성에 젖어 사는 ‘익숙한’, 책(冊)을 읽지 않고 책(責) 잡히는 ‘왜읽어’, 단점만 지적하느라 장점을 볼 시간이 없는 ‘꼬투리’, 대접받고 은혜를 저버리는 ‘저버림’이 바로 그런 사람 유형이다. 이런 사람에게도 반면교사의 교훈을 배우며 바람직한 인간관계로 회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될지를 우선 나부터 반성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네 번째 R은 독서(Read)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자 깨달음의 보고다. 인두 같은 한 문장을 만나기 위해 핸 해 동안 활자의 바다를 건너왔다. 《유영만의 파란문장 엽서집》은 활자의 바다를 건너면서 깨달은 교훈과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몸으로 쓴 한 문장의 감동을 캘리로 써서 묶은 책이다. “다짐이 많으면 짐이 된다”거나 “이기적으로 살아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처럼 짧은 문장이지만 깊은 생각을 유발하는 촌철살인의 아포리즘 형태로 쓴 글을 모은 책이다. 한 해 동안 많은 책을 읽었겠지만 읽는 독서보다 더 중요한 일은 눈으로 끝나지 않고 메모하면서 읽은 내용을 내 삶에 실제로 적용해보는 일이다. 독서의 완성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가 아니라 읽고 감동받은 대로 내 삶에 적용해보는 실천에 있다. 독서의 발견에서도 강조했던 것처럼 독서는 피클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오이였지만 책을 읽고 나면 피클로 바뀐다. 오이가 피클이 될 수 있지만 피클이 다시 오이로 돌아갈 수 없다. 독서는 오이를 피클로 바꿔주는 비가역적 변화를 일으킨다. 다시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위험한 행위다. 올해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그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실천해서 내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성찰 해보는 시간이 올 한 해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모든 것이 컴퓨터로 통제되는 첨단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는 기계로 만들어 낼 수 없는 희귀한 작품이다.” 김광규 시인의 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시집 한 권 읽고 시인의 마음으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다섯 번째 R은 휴식(Relax)이다. ‘쉬지 않으면 쉬게 된다’는 일본의 인쇄광고 카피가 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 가지 ‘식’이 바로 음식과 지식, 그리고 휴식이다. 내가 먹은 음식과 내가 공부해서 얻은 지식, 그리고 음식을 먹으면서 습득한 지식도 반추해보며 취하는 휴식과 함케하지 않으면 한 사람의 품격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음식을 먹기만 하고 소화시킬 시간을 주지 않거나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의 활용방안을 침묵을 통해 반추하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다. 음식과 지식은 휴식을 만나야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다. 음식 없는 휴식은 곤란하고 휴식 없는 음식은 폭식일 수 있다. 지식 없는 휴식은 허망하고 휴식 없는 지식은 지루할 수 있다. 한 해 동안 먹은 음식과 그동안 습득한 지식이 소화되고 체화될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영혼을 맑게 하려면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휴식이라는 선물을 준다면 내 몸은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휴식(休息)은 한자 의미 그대로 나무 옆에 사람이 가서 스스로의 마음을 감싸 안고 보듬어주면서 힘들게 살아온 자신을 보듬어주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한 해 동안 고생했던 몸과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따뜻한 덕담을 건네주며 스스로 돌아보며 긴장과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다가오는 신년을 구상해보는 시간이야말로 연말에 맞이할 가장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누구보다도 힘차게 달려온 당신, 이제 힘을 빼고 내년에 써야 할 힘을 다시 비축하는 휴식을 통해 비상하는 웅비의 날개를 준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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