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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부호가 말해주는
한 사람의 탄생과 인생

문장부호가 말해주는 한 사람의 탄생과 인생


물음표(?)를 갖고 우주에서 낯선 세상으로

어느 날 상상의 천국, 세상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물음표가 세상에 던져지자마자

감동의 느낌표(!)로 바뀐 날이기도 하다.


일생일대의 사건이었으며

경이로운 기적이었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세상은 모두 호기심의 천국이었으며,

낯선 세계였지만 어떤 경계도

겁 없이 넘을 수 있어서 한계는 아니었다.


수많은 관계로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한 인간은 사람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분명하지 않지만 성질도 생겼고

품격에 이르지 못했지만

성격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덜산정상.jpg


하지만 느낌표의 무늬로 가꾸어놓은 세상은

세월을 먹고 자라면서 상상하기 어려운

숱한 시련과 역경으로 삶의 얼룩으로 수를 놓기 시작했다.

느낌표(!)는 생을 마감하려는 마침표(.)로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가

힘에 겨워 가끔 주저앉아 쉼표(,)를 찾아 쉬기도 했다.

말없는 세상, 적막으로 휩싸이기도 하고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했으며

살을 에는 듯한 혹한과 눈보라가 앞을 가리기도 했다.


삶은 언제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아니고

햇살 좋은 날씨에 풍광을 만끽하는

기쁜 날의 연속도 아니다.


두브로닉까페 4.jpg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며 사투요,

하얀색과 까만색의 중간 지대 어디쯤에서

숨죽이며 하루를 살아내는 회색지대이기도 하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어떤 날이 나에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날,

빠져나가도 여전히 어둠이 터널 속이며

올라가고 넘어도 앞산은 먼 산으로 바뀌는

힘들고 어려운 고행의 연속이지만

어제의 곤경이 오늘의 풍경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으로 숨죽이며 내뱉은 말을

작은따옴표(‘’) 안에 가둬놓고 되뇌기도 하고

누군가 한 말을 기억해내 끌어다

따옴표(“”) 속에 집어넣고 반추하면서

살아지지 않기 위해 살아내려고 버둥거리는

한 많은 세상을 하늘을 쳐다보며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부자까페 독사진 일몰.jpg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왜 태어났는지?”로 불평을 담아 바꿔 묻다가

바쁜 일상에 파묻혀 잊어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왜 지금 여기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인지?”를 묻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은 숙명적으로 결정된 바도 없고

운명적으로 정해진 길도 없다는 사실은 과연 사실 일까로

부단히 물어보다가 답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할 말이 없음을 대변하는 말없음표(……)를 찍고

한 동안 침묵을 유지하기도 했다.


코토르 등정1.jpg


쌍점(:)을 찍고 내가 겪는 삶의 의미를 풀어보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정의한 단어도 다시 정의하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개념 부족이고 사고 부실의 연속이다.


쌍반점(;)을 찍고 문장을 일단 끊었다가

이어서 설명을 더 계속하거나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의 의미를

예를 들어 이해하고 해석해보지만

삶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완성 교향곡이다.


이런사람1.jpg


이런 사람 만나서 인간관계의 이치를 깨닫고

저런 사람 만나서 인간관계의 저력을 깨우치고

그런 사람 만나서 인간관계의 그리움을 알게 되었다.



코토르.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어디엔가에서

한 인간이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호기심의 물음표(?)를 가슴에 품고

감동의 느낌표(!)를 찾아

인생의 먼 여정을 여전히 탐구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두 분이 계실 것이다.


깊은 사색의 강물에서 쉼표(,)의 여유를 잊지 않고

풀리지 않은 문제도 잠정적으로 마무리하며

여기서 지금까지의 마침표(.)를 찍는다,


호숫가 독사진 야경.jpg


오늘의 ‘마침’에서 내일의 ‘마주침’을 기다리고

내일의 마주침에서 미래의 깨우침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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