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로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느낌표(!)

인생 최대의 곡선은 물음표입니다

유영만의 촌철살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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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을 역경을 뒤집어 경력으로 만드는 여정입니다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을 쓴 법인 스님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앞’과 ‘위’만 볼뿐, ‘옆’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직선으로 달리는 사람은 남보다 더 빨리 뛰기 위해 ‘앞’을 보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위’를 바라볼 뿐, 여유와 사색을 위해 ‘옆’과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사색을 통해 찾은 삶의 여유는 ‘앞’과 ‘위’에 있지 않고 ‘옆’과 ‘뒤’에 있다. ‘앞’과 ‘위’를 볼수록 더 빨리 더 높이 달려가고 올라가고 싶지만 ‘옆’과 ‘뒤’를 볼수록 더 느리고 더 낮게 그리고 더 가까이서 삶에 담긴 의미의 밀도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직선으로 달리는 사람에게 ‘앞’과 ‘위’는 도달해야 될 목적지와 성취해야 될 목표입니다. 곡선으로 걸어가는 사람에게 ‘옆’과 ‘뒤’는 함께 가야 될 희망의 연대이자 지나온 삶에 대한 정직한 반성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성급하게 찾아보는 검색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탐색하는 사색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여유 속에서 찾은 성찰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느림 속에서 즐기는 쉼표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돌아가다 만난 마주침이자 깨우침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역경을 뒤집어 만든 경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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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은 곤경을 풍경으로 바꾸는 파노라마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굴곡이 있는 삶을 살아왔지만 굴곡 속에서 굴지의 신화를 창조해내는 불굴의 의지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한 때 나에게 상처를 준 아픔이었지만 아픈 상처마저도 어루만져주는 포옹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숱한 곤경에 부딪히며 살아왔지만 곤경 속에서 창조되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직선도로롤 달리다 우연히 샛길로 빠져 만난 시골길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걸림돌에 넘어지고 자빠졌지만 걸림돌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지혜를 배우는 디딤돌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비록 밑바닥을 헤매면서 인생의 쓴 맛을 봤지만 바닥에서 다시 올라설 수 있는 희망의 텃밭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음지에서도 양지를 상상하려 다시 내 삶을 일으켜 세우는 용기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모진 비바람과 혹독한 추위에 시달려왔지만 그럼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잡초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경험했지만 나만의 체험적 교훈과 스토리로 창작하는 파노라마이자 드라마입니다. 나에게 곡선은 이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의 물음표를 던져 찾아가는 질문입니다.


곡선은 사랑으로 던지는 호기심의 물음표입니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은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다.” 미국 여류시인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휘파람 부는 사람》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두 가지 다른 활동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힘은 질문에서 비롯됩니다. 거꾸로 질문은 사랑하는 힘에서 나옵니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으면 질문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질문에서 비롯되고 질문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질문은 왜 하는가? 내가 알고 싶은 호기심과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현상에 이상 조짐이 감지되거나 정상적인 상황과는 다른 색다른 마주침에 직면할 때 질문이 시작됩니다. 알고 싶은 호기심과 궁금증이 질문으로 서서히 해소되면서 미지의 세계나 사람에 대한 이전과 다른 깊은 관심과 애정이 싹트고 그것이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질문을 품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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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파란만장한 곡선입니다.


인생 최대의 곡선은 물음표입니다. 그 물음표가 낳는 인생 최대의 직선이 바로 느낌표입니다. 곡선의 물음표가 낳은 자식이 바로 직선의 느낌표입니다. 삶은 우여곡절 끝에 깨달음을 얻는 파란만장한 곡선입니다. “시도와 물음, 그것이 나의 모든 행로였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입니다. 오늘도 산적한 삶의 문제를 부둥켜안고 마음속에 어제와 다른 물음표를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우리 청각의 한계: 인간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한도와 범위 내에서 질문이 던져집니다. 질문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수준과 정도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선정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물음이 달라져야 발걸음도 달라집니다. 오늘 내디딘 한 걸음은 내가 던진 물음이 이끌고 가는 평범한 보행입니다. 그 보행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을 바꾸는 운명적인 행보가 됩니다. 보행하면서 던진 물음표가 인생의 답을 찾고 나에게로 달려오는 발걸음이 바로 행보입니다. 보행이 뒤집혀 행보로 바뀌는 순간, 역전의 감동적인 드라마가 탄생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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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의 느낌표도 곡선의 물음표가 낳은 자식입니다.


물음(?)과 깨달음(!) 사이, 그 사이에 무수한 생각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입니다. 물음이 생기면 직선으로 달려가 검색해보려는 조급한 마음이 물음 속에 담긴 호기심을 죽입니다. 물음은 새로운 앎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물음표가 품고 있는 기대를 기다려주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직선의 마음입니다. 물음표를 물고 있는 마음, 그 마음속에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답을 찾아 나서는 마음이 곡선의 마음입니다. 직선의 마음은 급하게 지식을 만들어내지만 곡선의 마음은 때를 기다리며 지혜를 잉태시킵니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려면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려야 물음표가 던진 호기심과 궁금증이 다양한 시도와 모색을 통해 감동의 느낌표로 숙성되어 우리에게 달려옵니다. 물음이 있어야 다음이 기대됩니다. 물음이 있는 곳에는 믿음도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오리무중에 빠진 문제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감동의 느낌표를 품고 나에게 직선으로 달려올 것이라는 믿음, 곡선의 물음표가 직선의 느낌표를 낳습니다. 물음은 알고 싶은 마음입니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물음이 반복될 때 우리 삶은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물음이 달라져야 물음으로 건져 올리는 앎도 달라집니다.


물음표(?)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느낌표(!)입니다.


물음표(?)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느낌표(!)입니다.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유영건 작사·작곡, 김수희의 ‘애모’라는 노래의 가사를 바꿔서 써 봤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던진 물음표가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언뜻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 침묵의 시간은 그냥 잠자고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주어진 문제에 대해 실마리나 단서를 찾으려는 치열한 몸부림입니다. 물음표는 모름에게 몰래 던져 잠자고 있는 뇌를 흔들어 깨우는 자명종입니다. 물음표는 잠자고 있는 무의식의 바다에 던지는 마중물이기도 합니다. 마중물로 펌프가 물을 퍼 올리듯이 물음표도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의 바다에서 생각지도 못한 답을 길어 올리는 낚시입니다. 낚시 바늘을 바꾸지 않으면 잡는 물고기가 바뀌지 않듯이 물음이 바뀌지 않으면 물음에 걸리는 답도 바뀌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라야 생각지도 못한 답을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물음이라야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뇌세포가 자극되어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임신할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곡선의 물음표가 생각지도 못한 직선의 느낌표를 낳습니다. 나는 오늘도 당신이 던질 곡선의 물음표가 찾는 느낌표를 잉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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