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상품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작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상품과 작품: 상품은 소모품이지만 작품은 소유품이다
시간과 더불어 가치가 떨어지는 상품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시간과 더불어 가치가 상승하는 작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시장은 상품을 개발하는 사람보다 작품을 개발하는 사람이 지배하고 이끌어간다. 상품은 사용할수록 소모품으로 전락하지만 작품은 사용할수록 작품 개발자의 철학과 열정에 물들면서 명품으로 격상한다. 하지만 ‘명품’도 밖에서 찾으면 ‘반품’할 수 없는 ‘소품’으로 전락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에 따르면 사물의 재배치가 사람의 욕망을 부추긴다고 한다. 욕망이 없었는데 ‘상품’ 디자인의 재배치가 ‘상품’을 사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명품’은 주로 밖에 있다. 내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만든 ‘상품’이다. ‘작품’은 창작자의 열정과 철학, 혼과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래서 ‘작품’은 창작자의 칼라와 향기가 묻어난다. 이에 반해서 ‘상품’은 고객의 욕망을 자극해서 많이 팔기 위해서 만든다. 고객의 사고 싶은 욕구와 욕망을 최대한 자극해야 한다. ‘상품’은 그래서 ‘신상품’으로 끊임없이 대체된다. ‘상품’에 철학이 담기고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칼라가 담기면 ‘명품’이 된다. ‘명품’은 ‘상품’처럼 쉽게 탄생되지 않는다. ‘명품’은 사람을 욕망을 끄는 특이하면서 고유한 철학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만들지 않은 ‘명품’은 소유와 과시의 대상일 뿐 나의 철학과 혼과 열정을 담고 있지 않다. ‘명품’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안’에서 빛나는 ‘명품’일수록 오래가고 그 사람만의 그윽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질 수 있다. ‘명품’을 ‘발품’ 팔아서 밖에서 찾으면 ‘반품’할 수 없는 ‘거품’과 ‘소품’ 인생이 될 수 있지만 ‘명품’을 자신의 ‘성품’과 ‘인품’에서 찾으면 누구도 갖고 있지 않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기품’을 발휘할 수 있다.
자기만의 ‘명품’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만의 칼라를 가꾸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명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일단 빛을 발하기 시작한 ‘명품’은 하찮은 세류와 세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의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등불이 될 수 있다. 내 ‘명품’은 그 어떤 ‘상품’이나 ‘작품’하고도 비교되지 않는 내면의 향기다. 자기만이 낼 수 있는 향기는 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눈을 안으로 돌려 나만의 향기를 낼 수 있는 나만의 칼라, 나의 ‘명품’을 개발하고 있는지 내 안을 들여다보자. 답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나는 명품을 밖에 찾고 있는가? 아니면 내 안에서 찾고 있는가? 명품을 소유의 대상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가? 나만의 작품을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 나는 어떤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가? 나의 작품에 담고 싶은 철학은 무엇인가? 다른 작품과 구분되는 내 작품의 독창적인 칼라와 향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조한 코코 샤넬과 건축가로서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 르 코르뷔지에의 삶을 들여다본다.
1. '내가 곧 스타일이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
샤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검은색 퀄팅 샤넬 백과 블랙 미니 드레스, 그리고 입기 편한 트위드 재킷과 샤넬 No.5 향수다. 전 세계인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명품의 표면만 보지 말고 우리는 샤넬이 꿈꾼 혁명의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이면에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반항을 꿈꾸었던 샤넬의 야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원천(源泉)에 가 닿기 위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의 말이다. 아마 샤넬도 한 시대를 풍미하는 패션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패션의 원천, 패션의 근본을 파고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왜 그녀가 만든 의상과 가방, 그리고 향수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면서 단순한 패션 디자이너를 넘어 패션 이노베이터(Fashion Innovator)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까?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그녀의 혁신적인 디자인 마인드와 용기 있는 결단을 들여다본다.
한 시대의 흐름을 갈랐던 대부분의 대가들은 불우한 유년시절과 극심한 청춘의 방황을 경험했다. 그 시절 겪었던 마음의 상처와 몸에 각인된 색다른 체험의 얼룩이 아름다운 창작의 무늬로 변신한다. 샤넬도 마찬가지로 불우한 성장 과정을 딛고 세상의 상식에 도전하는 원동력을 얻었다. 1883년 프랑스 남서부의 소뮈르(Saumur)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샤넬은 12세에 어머니와 영원히 작별하고 일찍부터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보육원에서 배운 바느질 기술이 훗날 샤넬이 패션업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근간이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받은 마음의 상처가 가라앉기도 전에 보육원을 나와 술집을 전전하며 노래를 부르면서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다양한 인생의 궤적을 살아왔다. 샤넬이야말로 ‘역경’을 뒤집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경력’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몸에 각인된 트라우마를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바꿔낸 힘은 바로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늘 달라야 한다”는 샤넬의 디자인 철학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의 삶을 창조해왔다. “난 내 삶을 창조한다. 이전의 삶이 싫었기 때문에.”
1910년대 당시 여자들이 난공불락처럼 불문율로 통하던 패션은 ‘코르셋을 이용한 잘록한 허리, 풍만한 엉덩이’를 강조하는 스타일이었다. 파란을 일으키는 혁신은 언제나 불문율을 깨려는 도전과 용기에서 시작된다. 샤넬은 옷을 입는 근본적인 이유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 즉 옷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옷에서 나를 해방시켜주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나 “패션은 단순한 옷의 문제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의 창조이자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몸의 곡선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조이는 코르셋에서 몸의 곡선을 드러내지 않고 약간 여유 있으면서도 편안한 트위드 슈트를 디자인한 것도 패션에 대한 그녀의 일관된 신념 덕분이었다. 옷을 입어서 옷에 구속된 여성들의 불편한 삶을 옷을 입음으로써 잃어버렸던 일상의 자유를 복권시켜준 것이다. 트위드 슈트를 입고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고 활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상복(喪服)이나 점원들이 입는 블랙 드레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기하고 1926년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발표하는 샤넬의 도발적 용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녀는 또한 땅에 끌리던 긴치마에서 일명 샤넬라인이라고 하는 무릎 밑 5-10Cm까지 올라간 치마를 통해 옷의 구속으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켜주었다. 1930년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운동 복용 옷감 '저지(jersey)'를 혁신적으로 활용하여 여성들의 평상복을 처음으로 디자인함으로써 옷 입는 시간도 단축하고 남성우월주의에 저항하는 혁신적 패션 스타일을 창조하였다. 샤넬은 언제나 패션 스타일에 지치지 않는 자기만의 열정(passion)을 담아냈다. 열정(passion) 없는 패션(fashion)은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유행으로 전락할 수 있고, 패션 없는 열정은 무모한 도전으로 추락할 수 있다. 열정(passion)과 패션(fashion)이 조화롭게 융합될 때 단순히 유행을 창조하는 패션 디자이너를 넘어서 패션 이노베이터로 거듭날 수 있다. 바로 샤넬이 패션 이노베이터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가방의 역사는 샤넬의 디자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샤낼의 혁신적 디자인은 의상에 이어 가방에도 적용되었다. 1929년 숄더백이 등장하면서 여성들의 손을 가방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 전에는 여자들은 외출할 때 클러치 백이나 도로시 백(가방을 허리에 묶는 형태)을 항상 손으로 들고 다녀야만 했다. 다른 용도로 움직이고 싶은 손의 욕망을 포착한 샤넬은 가방을 어깨에 멜 수 있는 숄더백을 여성들이 갖고 다니면서 가방에 묶여있던 두 손을 해방시켜준 것이다. 가방에 묶여 있던 두 손으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자전거나 오토바이도 탈 수 있게 되었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한 손으로 과감하게 담배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가방에서 해방된 손은 단순한 손의 해방이 아니라 여성들이 삶의 혁명이었으며 일상의 구속으로부터 풀려난 해방이었다. 샤넬은 말한다. “일부러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왜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야 하고, 다른 방식으로 하면 안 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늘 일상에서 보고 느낀 점을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거기서 세상의 흐름을 뒤집는 역발상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명품’은 주로 밖에 있다. 내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만든 ‘상품’이다. ‘작품’은 창작자의 열정과 철학, 혼과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래서 ‘작품’은 창작자의 칼라와 향기가 묻어난다. 이에 반해서 ‘상품’은 고객의 욕망을 자극해서 많이 팔기 위해서 만든다. 고객의 사고 싶은 욕구와 욕망을 최대한 자극해야 한다. ‘상품’은 그래서 ‘신상품’으로 끊임없이 대체된다. ‘상품’에 철학이 담기고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칼라가 담기면 ‘명품’이 된다. ‘명품’은 ‘상품’처럼 쉽게 탄생되지 않는다. 샤넬은 말한다.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그대로 남는다”라고. 스타일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칼라다. 남다름을 추구하지 않고 색다름을 추구한 샤넬은 저절로 남달라 졌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샤넬의 삶과 열정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의 뇌리와 폐부에 명품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명품’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안’에서 빛나는 ‘명품’일수록 오래가고 그 사람만의 그윽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질 수 있다. ‘명품’을 ‘발품’ 팔아서 밖에서 찾으면 ‘반품’할 수 없는 ‘거품’과 ‘소품’ 인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명품’을 자신의 ‘성품’과 ‘인품’에서 찾으면 누구도 갖고 있지 않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기품’을 발휘할 수 있다. 샤넬의 작품 속에서 샤넬의 기품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가. 그래서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명언, “내가 바로 스타일이다.”
2.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의 삶을 들여다보다
2017년 3월 말 예술의 전당에서 막을 내린 이 사람의 전시회 제목이 “현대 건축의 아버지, 4평의 기적”이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긴 4평의 기적이라는 말이 우선 어울리지 않는다. 호기심을 갖고 찾아보았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에 머물렀던 오두막집이 4평이었다고 한다. 아마 4평 정도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건축의 본질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휴대폰은 혁신적인 아이폰과 아이폰이 아닌 평범한 폰으로 구분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건축은 그가 태어나기 전의 건축과 탄생 이후의 건축으로 나뉠 정도로 건축사의 새운 지평을 연 혁신적 건축가가 있다. 건축을 말할 때 왜 항상 이 사람을 떠올리는 것일까. 그가 제시한 혁신적 건축사상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었어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그의 건축가적 사유의 폭과 깊이가 남다르기 때문이며 건축가적 논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의 사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반하는 색다른 상상력으로 상식과 타성의 덫에 걸려 살아가는 사람들에 그는 언제나 새로운 사유의 샘물로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가 바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다. 그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이자 작가이며 도시 계획가이자 화가, 그리고 조각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대규모 공동주택을 최초로 개발한 20세기 건축 혁신가의 상징이자 아파트의 아버지다. <타임>지 선정 20세기를 빛낸 100인에 건축가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는 점을 봐도 그가 얼마나 건축분야의 혁신적인 업적을 남겼는지를 알 수 있다. 과연 그는 건축사에 어떤 혁신적인 작품으로 건축사에 족적을 남긴 것일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전과 전혀 다른 대안을 제시할 때 혁신이 일상에서 비상하게 만들어준다. 일례로 처음 높이뛰기 선수들은 모두 무게 중심을 앞에 두고 높이뛰기 바를 앞으로 넘었다. 그런데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 미국의 리처드 더글라스 포스베리(Richard Douglas Fosbury, 약칭 딕 포스베리)라는 선수가 세계 최초로 몸의 무게 중심을 뒤에 두고 일명 배면 뛰기 방식으로 뒤로 넘었다. 인간의 한계로 생각했던 2m를 넘어 2m 24cm를 뛰어넘었다. 당시에는 비정상적인 시도였지만, 높이뛰기 정상을 차지한 딕 포스베리의 원동력은 비정상적인 시도였다. 혁신은 바로 정상적인 방식의 한계를 비정상적인 발상으로 넘어서려는 시도다.
르 코르뷔지에가 바로 건축분야의 딕 포스베리다. 그는 기존 건축가적 발상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건축적 대안을 제시하는 건축계의 이단아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모두가 너무 당연하게 살고 있는 주거 양식 중에 아파트가 있다. 1952년 프랑스 남동부의 항만도시 마르세유에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상한 콘크리트 건물이 등장했다. 이 콘크리트 건물이 바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거하는 아파트의 시초이자 주상복합건물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 d’Habitation)이다. 프랑스어로 ‘큰 주거 건물’을 뜻하는 이 아파트는 기존 건축양식과 판이하게 다른, 그야말로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건축양식의 표상이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르 코르뷔지에의 인간 중심의 건축 철학이 집대성된 작품이다. 프랑스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폐허가 되다시피 한 파리에서 밀려나 살아가는 서민들의 처참한 삶을 눈뜨고 볼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마련해줄까 고심 끝에 나온 작품이 바로 대규모 공동주택 양식을 띠는 오늘날의 아파트다. 언제나 혁신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한 시대가 겪고 있는 아픔을 포착한 사람이 자신이 그동안 축적한 삶에 대한 철학으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궁리에 궁리를 거듭, 마침내 세상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가는 혁신적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언제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저항, 조소와 조롱에 부딪혀 난파당하다 마침내 몰상식했던 혁신이 세상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오늘날의 아파트 개념이 탄생된 것이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지난 7월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제시했던 당시만 해도 건축계의 주류는 화려한 형식미와 장식적인 기능 미를 앞세운 ‘에콜 데 보자르’ 출신이 주름잡고 있었다, ‘에콜 데 보자르’ 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를 위한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프랑스의 전통에 빛나는 미술교육기관이다. 한 마디로 사람을 위한 건축, 삶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는 기능적 건축양식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치장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르 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건축사에 한 휙을 긋는 혁명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건물 1층을 철근과 콘크리트로 구성된 필로티(거대 기둥)로 만들어 지중해의 고온다습한 바람이 통과하도록 설계해서 일반 대중에게 개방한 점이나 투박한 남성미를 과시하듯 거친 콘크리트 표면으로 마감한 것도 당시의 건축미와 거꾸로 가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주류 양식이 지배하던 기존 건축계에 투박하고 단순하면서 난생처음 보는 공동주택 개념의 건축양식을 제안한 것은 혁신을 넘어 혁명이자 반란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비평가들은 르 코르뷔지에가 선보인 콘크리트 건물은 건축에 대한 도전을 넘어 모독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의 건축계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미친 건물’이라고 비난하고 건물 철거 소송까지 벌인 적도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세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건축 철학을 굽히지 않고 일관되게 추진한 원동력은 건축에 대한 남다른 신념 덕분이다. 그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규정,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효율적인 공간에서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축에 대한 그의 이러한 신념은 건축 본래의 기능적 본질과 관계없이 외형적으로 화려한 장식 미만 추구하던 당시의 건축 사조에 불만을 품고, “건축의 목적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데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삶 자체가 하나의 건축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思惟)뿐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의 아픔을 품으려는 따뜻한 인간적인 건축 철학은 하나의 사유로 우리들의 가슴을 오랫동안 적실 것이다. 한 참 활동할 나이에 운명을 다한 가수 김광석의 몸은 갔지만 그의 영혼이 담긴 노래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것처럼 건축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르 코르뷔지에 역시 삶을 통해 담아내려고 했던 치열한 건축 철학과 사유는 시간과 더불어 우리들의 영혼을 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