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간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에 가려면 정상적인 사람과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

정상과 비정상: 정상에 간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에 도전하고 있습니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에 도전하고 있습니까?


정상(頂上)에 오른 사람은 정상(正常)입니까? 정상에 오른 사람은 비정상이다. 정상적인 높이뛰기 선수는 모두 앞으로 넘었다. 앞으로 넘는 사람들의 한계는 2m를 넘지 못하는 데 있다.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정상적인 높이뛰기 선수는 앞으로 넘는 방식을 통해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2m 벽을 넘으려고 했지만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넘으려고 시도하다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도전하기 전에 한계를 두지 않고 한계에 도전하는 방법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에 도전한 사람, 1968면 멕시코 올림픽 때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뒤로 넘는 높이뛰기 선수가 나타났다. 그 사람이 바로 높이뛰기의 전설, 딕 포스버리(Richard Douglas Dick Fosbury) 선수다. 그 사람 이름을 따서 지금은 포스베리 플롭 기법, 배면 뛰기가 높이뛰기의 상식이 되었다. 비정상이어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해준 셈이다. 딕 포스베리가 처음으로 뒤로 넘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딕 포스베리를 가리켜 상식에 위배되는 몰상식한 사람이며 정상에 시비를 거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라고 놀라워했다. 정상(頂上)에 오른 딕 포스베리는 분명히 정상(正常)이 아니다. 만약 딕 포스베리도 정상적인 사람처럼 정상적(正常的)인 방법으로 정상(頂上)에 도전했다면 정상(頂上)을 절대로 정복할 수 없었다. 정상을 정복한 사람은 하나같이 비정상이다.


생각지도 못한 비정상적인 생각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을 저지르고 당했을 때 비로소 잉태된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발상은 인간의 신체구조상 2m를 절대로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정상분포 곡선에 갇혀서 정상적인 사유와 상식, 그리고 타성과 고정관념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다. 딕 포스베리 선수 덕분에 인간의 높이뛰기 한계는 2m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딕 포스베리가 정상 정복에 도전한 방법은 정상적인 사람들과 다른 비정상적인 방법이었다. 정상에 가려면 비정상이어야 한다. 비정상만이 정상에 갈 수 있다. 정상에 가고 싶다면 정상적인 사람과 어울리면 안 된다. 정상적인 사람과 어울릴수록 정상에서 멀어진다. 비슷한 생각과 행동방식을 공유하는 정상적인 사람끼리 만날수록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없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통용되는 이유다. 누군가 정상을 벗어나는 이상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제기하면 그것도 아이디어냐고 비웃거나 비아냥거린다. 한 사람의 독특한 생각을 소속된 집단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정상적인 면접관이 많은 신입사원 후보생을 두고 면접을 본다. 대부분 정상적인 신입사원만 입사가 결정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면접관이 정상이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사유를 즐기는 사람은 입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힘겹게 비정상적인 사람이 입사를 했다고 할지라도 회사 생활을 즐겁게 영위하는 데에는 많은 장애와 걸림돌이 기다릴 것이다. 다수의 정상적인 사람이 소수의 비정상적인 사유를 즐기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몰상식’한 사람이 ‘상식’을 뒤집는다. 그렇지 않으면 ‘상식’이 뒤집혀 ‘식상’해진다. 사과 10개 중에 3개 먹으면 몇 개 남을까요? 어떤 학생이 손을 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3개 남는다고, 왜냐하면 엄마가 그러는데 “먹는 게 남는 거”라고 말씀하셨다고. 10개 중에 3개 먹으면 3개 남는다고 대답한 학생은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급기야 엄마를 학교에 부른다. 아이가 비정상이라고. 아이를 엄마가 야단을 쳐서 10-3=7이라고 정상적인 답을 쓰고 나서야 집으로 데리고 간다. 학교를 오래 다닐수록 틀에 박힌 사유를 하게 되는 이유는 비정상적인 사유를 인정받지 못하고 조롱을 당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좌뇌를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며 합리적인 정상적인 사람을 대량 양산해왔다. 예술가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색다른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면 판검사가 바로 나타나서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하면서 싹이 트기도 전에 싹을 잘라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뇌를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기대 밖의 대답을 하면 비정상적인 아이로 낙인찍힌다. 좌뇌로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을 받은 우리는 우뇌로 틀 밖에서 뜻밖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방법을 배워 본적이 거의 없다. 틀 밖의 사유를 하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생각되어 심한 질책이나 비난, 조소와 조롱을 받기고 한다. 전대미문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세상 사람은 처음에 무시(ignore)한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조소와 조롱(laugh)을 보내고 서서히 세상을 움직이는 화두로 바뀌면서 저항(fight)하는 사람이 나타나다 마침내 내가 세상을 이끄는(win) 사람으로 부각된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보기에 비정상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이 보기에 비정상이다. 서로가 옳다고 믿는 신념체계나 가정, 올바른 삶의 이상적인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은 늘 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으로 이전과 다르게 시도해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이들이 살아가는 이유를 드러내는 한 가지 방식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은 그래서 언제나 딴 길(別路)로 빠져서 딴 세상(別天地)을 보려는 도전을 늘 즐기려고 한다. 딴 길을 가봐야 딴생각을 할 수 있고 지금과는 다른 색다른 도전을 시도할 수 있다. 딴 길을 한자로 쓰면 별로(別路)다. 말 그대로 특별한 길이다. 이제까지 가보지 않은 길이다. 이제까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봐야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체험적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남이 걸어간 길을 전속력으로 달려 가봐야 목적지에 도착하면 허망함만 남을 뿐이다. 남이 걸어간 길을 뒤쫓아 가는 사람은 가슴이 뛰지 않는다. 색다른 발견과 경이로운 체험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색다른 체험적 자극을 받지 않은 이상 우리 뇌는 색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틀에 박힌 일상적 경험이 계속되는 한 뇌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직접 몸을 움직여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고 이제까지 읽어보지 않은 책을 읽는 지적 자극을 받아야 생각지도 못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생각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낯선 환경에 노출되어야 가능하다. 틀에 박히면 절대로 뜻밖의 색다른 생각은 잉태되지 않는다.


그런데 딴 길을 가보는 사람, 즉 별로(別路)를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별로’라고 말하거나 ‘별꼴이네 ‘, ‘별 볼 일 없다’는 비꼬는 투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치고 ‘별’이 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하늘의 별을 따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따는 사람은 하나같이 다 비정상적인 시유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남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사람이다. 하늘의 별을 따는 사람은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한계에 도전한 사람이다. 누군가는 도전해보기도 전에 한계선을 긋고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한계라고 생각한 지점에서 도전을 시작한다. 바로 그 사람이 딴 길을 가는 사람이고 딴생각을 하는 사람이며 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신입사원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마자 주어진 분야의 전문성을 쌓기 위해 다른 분야는 완전히 무시하고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은 전문가는 될 수 있어도 전문가를 뛰어넘는 식견과 안목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은 모두 정상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은 한 우물을 파되 자신이 판 우물에 매몰되지 않고 색다른 전문성과 부단한 접속을 통해 낯선 사유를 잉태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전개한다.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어도 정상적인 전문가는 자기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동원해서 해결하려고 하지만 비정상적인 전문가는 다른 분야의 전문성도 내가 직면한 문제 상황에 동원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깊이만 파는 정상적인 전문가는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지니는 전문성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이자 위기이며 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마다의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만나 각자의 전문성을 다른 전문성과 어떻게 융합하면 색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탐색해봐야 한다.


비정상적인 전문가는 늘 내가 지니고 있지 않는 낯선 전문성과의 우발적 마주침을 즐긴다. 세상을 뒤집어엎는 색다른 가능성은 낯선 전문성이 우연히 충돌하면서 생긴 경우가 많다. 한 우물만 파고들거나 깊이 없이 넓이만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기피 대상이 된다. 파고든 전공의 깊이와 확장된 교양의 넓이를 동시에 추구할 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난국을 돌파할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 딴 세상을 만나려거든 딴생각과 딴짓을 해보고, 전공 서적을 기본으로 읽되 딴 책도 읽어야 한다. 정상(頂上)을 정복(征服)한 사람은 모두 딴짓을 하면서 딴생각을 만들어 가려고 발버둥을 친 비정상이다. 그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 하지 않는 다른 방법,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각하고 도전했던 사람들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은 발상을 뒤집어 언제나 역발상을 생활화했으며, 상식에 매몰되어 식상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 ‘비정상’은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언제나 물음표를 던져 의문을 품고 문제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많은 철하자가 이성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가정을 근간으로 서양철학을 발전시켜 왔다. 신체가 품고 있는 욕망은 변덕스럽기 때문에 냉철한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존 철학을 망치로 깨부수고 그 위에 언제나 새로운 철학을 세우려고 노력했던 전복의 철학자 니체는 이런 생각을 뒤집었다. 과연 이성이 신체를 지배할 수 있으며 지배하는 것이 타당한 논리인가? 니체는 그동안 서구 철학을 지배해온 이성 지배 패러다임을 뒤집어서 신체가 오히려 이성을 지배한다는 신체 중심 철학을 처음으로 제시한 비정상적인 철학자였다. 신체가 없는 마음과 이성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신체성이 담보되지 않는 그 어떤 담론도 무용지물이다.


이처럼 정상적인 사람은 세상의 통념을 따르는 모범생이지만 비정상적인 사람은 통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남들이 정한 한계에 도전하는 모험생이다. 모범생은 정해진 길 위에서 정상적인 생각으로 누군가 걸어간 길을 따라간다. 하지만 모험생은 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위험한 길을 선택해서 모험을 거듭하며 정상적인 생각에 시비를 거는 비정상적인 발상을 일삼는다. 비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은 위험하다. 니체도 지적했지만 위험한 시작이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평범한 발상은 평범한 작품을 낳지만 비범하고 위험한 발상이 전대미문의 새로운 작품을 낳는다. 위험한 생각을 품고 위험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의 위험한 삶을 구원해줄 수 있다. ‘정상’에 간 비정상적인 사람은 정상에 올라갔다고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또 다른 ‘정상’을 향해 비정상적 ‘보행’을 계속하면서 정상에 이르는 방법과 여정도 남다르다. 평범하지만 진지하게 반복하는 ‘보행’이 어느 순간 남다른 ‘행보’가 탄생하는 비결이다.


2015년도에 지인들과 함께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 정상에 등반한 경험이 있다. 마지막 4700m 고지의 마지막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밤 11시에 출발을 했다. 7-8시간의 사투 끝에 정상에 도달했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정상 등반 2/3 지점에서 극도로 피곤함이 몰려오고 체력이 바닥날 즈음, 중대 결정을 해야 했다.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가 온 것이다. 극한의 위기가 왔을 때 마인드로 신체를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정신도 거주할 공간이 없어진다. 몸은 그래서 마음이 거주하는 우주다.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마음이나 이성이 몸을 아무리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이 맘과 정신을 지배한다는 점을 극한의 한계 상황에서 깨달았다. 니체가 주장한 신체 중심 패러다임을 몸으로 증명한 셈이다. 진퇴양난의 위기 또한 정상적인 사람들이 만든 사자성어라는 점도 몸으로 깨달았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는 위기는 없다. 옆으로 가면 된다. 진퇴양난의 위기상황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고민을 거듭해봐야 죽음을 맞이하는 길 밖에 없다. 결단을 내리고 옆길로 새서 우회하지 않고 검토를 거듭하다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느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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