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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걸작과 대작도
졸작과 실패작에서 시작된다

20대의 마음과 20대의 청춘으로 2020을 보내고 2021을 맞이하면서

미지의 걸작과 대작도 졸작과 실패작에서 시작된다


한 해를 돌이켜 회고해보고 새해를 앞당겨 전망해보려고 의도적으로 12월의 마지막 주를 제주에서 다양한 삶의 화두와 주제를 떠올리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8권의 책을 갖고 내려왔지만 5박 6일 동안 7권의 책을 읽고 긴 글을 2편 썼다. 한 해 동안 살기를 통해 깨닫고 배운 점을 읽기와 접목시켜 글짓기를 통해 책 쓰기로 연결하며 미국의 실용주의 교육철학자 존 듀이가 말하는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을 해보았다. 뿌듯한 성취감은 물론 읽고 사색하는 시간에 깊어지는 사유체계의 성숙과 숙성 시간을 몸소 체험해보았다는 점, 그것도 연말(年末)과 연초(年初)가 맞물려 돌아가는 경계 지점에서 새로운 경계선을 만드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예술의 임무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다. 자네는 비루한 모방자가 아니라 시인이야!”(82쪽). 오노레 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의 임무는 예술가만의 임무가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일상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미천한 모방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예술적 창작을 즐기는 시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시를 전문적으로 짓는 사람만이 시인이 아니다. “시가 가진 힘은 시를 삶이라는 단어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11쪽). 이원의 《시를 위한 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삶은 곧 시이고 시가 곧 삶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범상한 우리 모두의 삶은 이미 시이고 그렇게 쓴 시는 삶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102쪽).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 나오는 말이다. 아름다움은 그래서 앎음다움이다. 앎이 상처로 생긴 결과라면 아름다움 역시 예술가가 고통으로 치른 아픔의 산물이다. 극심한 혼돈 속에서 질서가 창조되듯 우리가 겪은 올 한 해의 혼란이 새로운 영혼의 씨앗으로 재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생명이 없는 사물에게도 나름의 음악이 있다. 수도꼭지에서 반쯤 찬 양동이 속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13쪽). 파스칼 키냐르의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에 나오는 말이다. 생명체만 저마다의 고유한 소리를 갖고 음악을 들려주는 게 아니다. 비 생명체도 생명체만큼 살아 있는 소리로 그 어떤 음악보다 감미로운 선율을 지닌 음악을 들려준다. 사유보다 사물이 좋다고 헤세도 《싯다르타》에서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사물은 이미 탄생 배경과 존재 이유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유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간이 몰라줄 뿐이다. 귀담아 들어보고 말을 걸어주면 사물도 자기만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삼라만상이 음악이고 시이며 예술이다. 



어떤 화가도 자연이나 사물을 100% 동일하게 재현(representation)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이상적이지도 않다. 형태를 완벽하게 모방하거나 재현하지 말고 영혼이 살아 숨 쉬는  표현(expression)으로 대상의 본질을 구현(materialization)해내야 한다는 것이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에서 실현해보고 싶은 예술적 야망이었다. 평생을 통해 혼신의 힘을 다해 사물이나 현상의 물성이 살아 숨 쉬는 회화적 상상력을 언어적 논리로 풀어내려고 했지만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미지의 걸작으로 남긴 발자크의 작품은 스스로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뜨겁게 불태운 문학적 정열과 열정의 산물이다.


올 한 해 다양한 사람들과 속 깊은 인간관계를 맺어왔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모두가 나에게는 배움의 자극제였다. 책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도 책은 나에게 이전과 다른 사유의 씨앗을 잉태하게 만드는 지적 자극제이자 삶의 각성제다. 한 해 동안의 행동반경도 환경과 맺는 관계 맺음의 다름을  경험하게 만들어준 촉발점이었다. “다르게 관계 맺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247-248쪽). 한 해 동안 맺어온 수많은 인간관계는 물론 주변 환경이나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도구와의 관계 맺음 방식을 바꾸기만 해도 경계를 넘나다는 새로운 사유 기반을 건축할 수 있다. 



숨 가쁘게 달려왔고, 지쳐서 잠시 주저앉아 쉬기도 했으며, 멍하니 뒤돌아보기도 했다. 하염없이 먼 산이나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고 하루를 정리하며 또 다른 하루를 내다보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후에 오는 사람, 생각, 판단, 사물을 이길 수 없다”(322쪽). 김홍중의 《은둔기계》에 나오는 말이다. 격랑의 파도가 휘몰아치며 끝이 없이 반복되던 코로나 19 난국을 경험하며 한 해를 보낸다. 나는 믿는다. 코로나 19 이후에 오는 생각과 판단이 성숙을 넘어 숙성되어 또 다른 이후의 사유 기반에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올 한 해 ‘미지의 걸작’조차 남기지 못하고 많은 실험 작품을 남기며 내년에 출산될 또 다른 실험 작품에 기대를 걸어본다. 대작이나 걸작도 졸작이나 실패작의 무수한 반복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이후의 사고는 이전의 사고를 능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믿는다. 20대의 마음과 20대의 청춘으로 2020을 보내고 다시 21살의 청춘으로 2021년 신축년(辛丑年)에는 얼른 매듭이 신축성(伸縮性) 있게 풀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맞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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