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책을 읽어야 시련을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격주에 한 번 씩 만나서 대학원생과 스터디를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0여 년 동안 우리는 모여서 쉬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교육공학이 전공이지만 주로 철학을 비롯해 사회학과 인류학, 교육학과 체제 이론 등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이론적 관점을 접하고 독창적인 개념을 익혀 사람과 조직을 변화시키는 기반 원리와 접근 논리를 개발하는 연습을 해왔습니다.
읽기의 본질과 핵심은 해당 저자나 작가의 문제의식을 읽어내고 그 사람이 강조하려는 메시지나 주장을 관통하는 화두나 이슈를 깊이 파고 들어가 고유한 사유체계를 어떻게 구축해나가는지를 주도면밀하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깨달은 사유의 흔적을 끌고 나와 함께 토론하고 자신의 공부 방향을 점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대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만의 고유한 관점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합니다.
특히 한 두 번 읽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난해한 책을 함께 읽어낼수록 책에 담긴 저자의 사유체계를 간파해내는 정신 근육(mental muscle)이 생깁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읽을 수 있는 글은 읽어도 기존 사유에 생채기가 생기지 않거나 근육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가벼운 무게를 들고 힘들이지 않고 운동해서는 근육이 잘 생기지 않는 이치와 일맥상통합니다. 읽기 어려운 책을 읽어내려는 안간힘 속에서 문장이나 개념이 품고 있는 심오한 의미의 껍질 속으로 파고들어가려는 사투를 벌입니다. 힘겨운 싸움 끝에 안개가 걷히지만 여전히 뿌옇게 성에가 낀 유리처럼 여전히 뇌리는 선명하지 못한 혼돈의 도가니입니다.
지난 6개월 넘게 마이클 폴라니의 《개인적 지식》을 만나서 번역이 반역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말인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한국어가 이렇게 어려울 수도 있음을 몸소 느꼈던 소중한 깨달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번역자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덕분에 원서를 더 가깝게 한 줄 한 줄 읽어내면서 마이클 폴라니의 방대한 사유의 깊이와 넓이의 바다에서 유영(遊泳)만 반복하면서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기를 반복했습니다.
지식에는 그 지식을 창조하는 사람의 발견적 열정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공동체 구성원과 나누려는 설득적 열정이 함께 동반될 때 지식은 그냥 이론적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삶을 바꾸는 위대한 혁명의 DNA로 변신을 거듭합니다. 지식창조 주체의 지적 열정과 헌신적 몰입, 말로 다할 수 없는 암묵적 깨달음의 정수를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사투를 벌이는 모든 노력이 앎을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책 제목인 《개인적 지식》은 개인별로 구분되는 특수한 지식이 아닙니다. 사실 모든 지식은 《인격적 지식》입니다. 지식에는 지식을 창조하는 사람의 철학과 혼, 열정과 용기, 문제의식과 위기의식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보이는 이유입니다. 인격적 지식은 뜨거운 불길에 각종 이질적 철판들이 녹아드는 용광로에서 탄생하는 지식과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폴라니의 《Personal Knowledge》는 《개인적 지식》으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인격적 지식》으로 번역해야 폴라니의 문제의식을 가깝게 담아낼 수 있습니다.
어렵고 지루한 여정이었지만 그 속에서 한 학자의 위대한 열정과 사투를 온몸으로 보고 느끼고 배우며 깨달았던 멋진 탐험 여정이었습니다. 손으로 베껴 써보고 우리말로 다시 번역해보고 각장 별 나오는 키워드를 엮어 저자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소중한 공부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폴라니의 위대한 지적 열정 언저리에서 따뜻함을 느낄 정도입니다. 이 책을 쓴 폴라니는 깨달음의 정수를 자기만의 개념과 문제의식으로 녹여내기 위해 기존 학문공동체의 저항과 반대를 무릅쓰고 어떻게 극복하고 마침내 인격적 지식이 탄생해서 뜨거운 연대와 연회 속에서 공유되어 실천되는지를 온몸으로 사투를 거듭하며 정리해낸 위대한 학자입니다.
우리가 책에서 배워야 할 점은 책에 쓰인 지식과 개념, 이론과 원리라는 결과보다 그것이 탄생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역사적 사연과 배경, 역사적 문맥을 꿰뚫고 기존 이론적 문제의식과 실천적 담론의 한계를 넘어서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저자의 논리적 접근방식, 그리고 저자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독특한 개념을 온몸으로 익히는 공부입니다.
주류 담론의 한계와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걸 넘어서는 대안적 관점과 이론적 접근을 개발하려는 결단의 뒤안길에는 절치부심의 흔적이 보이고 우여곡절의 족적이 드러나 있고, 파란만장한 사투의 얼룩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연함과 원래 그런 세계로 뛰어들어 뭔가를 새롭게 건져 올리려는 발견적 열정으로 터득한 작은 깨달음을 설득적 열정으로 녹여보려는 시도와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점을 우리 모두가 마이클 폴라니에게 배웠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저마다 읽어내고 발표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여전히 역부족임을 누구보다도 우리 스스로 잘 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배움의 여정을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험난한 깨달음의 길이지만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내일도 서슴지 않고 걸어갈 것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음악과 문학, 철학과 소설, 시와 영화가 영원히 완벽하게 완성할 수 없는 미완성의 교향곡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만의 얼룩과 무늬가 고스란히 담기는 앓음다운 창작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