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나발루산 정상 등반 이후 생긴 생각지도 못한 생각의 지도
삶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키나발루산(4,095m) 등반의 희열과 일몰의 낭만,
코로나로 겪은 골방의 격리와 극적 탈출, 그리고 해방과 자유
2022.8.8. 일 부푼 꿈을 품고 코타키나발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늦은 밤에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산장에서 이른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에 일어나 키나발루 정상 등반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시작부터 절벽에 가까운 계단을 오르기 시작, 오후 늦게 라반라테 산장에 도착,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일찍 눈을 붙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잠은 오지 않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새벽 1시에 기상했다. 고산증 초기 증세인 골치가 지끈지끈 밤새 아팠던 것도 잠을 쉽게 잘 수 없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삶의 모든 길목에는 발목을 잡는 복병이 기다린다
약간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정도로 간단하게 출발 전 식사를 마친 다음 다시 절벽에 가까운 계단을 오르고 암벽을 밧줄에 의지한 채 기어오르면 새벽 6.30분을 넘어 키나발루 정상인 로우 피크(4,095M)에 오르는 순간, 1박 2일 동안 사투를 벌이며 기어올랐던 지난 시간의 고생이 희석되는 듯했다. 혹시 모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뜻하지 않게 만날 복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산장에서 잠을 잘 때도 마스크를 철저하게 착용했다. 식당에 밥을 먹을 때도 음식 먹을 때만 잠깐 마스크를 내리고 다시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가급적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도 피하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사람과의 만남도 유지했다.
이미 정상으로 등반하는 여정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다 쓴 상태라 내려올 때는 정말 올라갈 때의 힘든 과정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른 방식으로 몸에 고통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절벽을 오르는 기술과 전혀 다른 내려가는 기술이 필요했다. 체중을 견디면서 무릎에 하중이 덜 갈 수 있도록 가급적 몸의 무게를 스틱에 의존하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올라갈 때 뒤꿈치가 자주 뒤로 미끄러지면서 양말이 벗겨지는 고통이 반복되었는데 하산할 때는 거꾸로 발바닥이 앞으로 밀리면서 발톱이 신발 끝과 자주 맞닿으면서 극심한 발톱 통증이 가중되었다. 가려는 길 위해서 발목을 잡는 뜻밖의 복병은 곳곳에서 발목을 잡고 있었다.
간신히 라반라테 산장에 내려와 체크아웃 타임인 10.30분 전에 식사를 하려고 내려갔지만 이미 아침 식사는 마감되었다. 올라갈 때도 거의 먹지 못하고 기어올라 갔는 데 지금 여기서 다시 4-5시간은 내려가야 출발했던 팀폰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다. 과연 바닥난 체력으로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을지 출발부터 걱정이 앞섰다. 한 걸음의 힘든 반복을 통해 목적지까지 다 내려오고 나서 너무 허기가 지고 피곤한 나머지 간단하게 씻고 한식당에서 된장찌개와 삼겹살을 먹고 정상 등반 기념 축하 파티도 잊은 채 등반하면서 느낀 감각적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그 느낌을 반추하면서 등반 후기를 다 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다 쓰지 못하고 곯아떨어져 잤다.
이튿날 일어났지만 극심한 근육통에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었다. 간신히 몸을 이끌고 아침을 먹은 다음 어제 쓰던 글을 다 쓰려고 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글을 쓰다가 좀 피곤함을 느껴서 다시 잤다. 다시 심기일전, 맛난 해산물을 점심으로 먹기 위해 선셋으로 유명한 코타키나발루 해변가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푸짐한 점심과 와인을 마시고 호텔에 들어와 다시 잠깐 눈을 붙였다. 저녁은 진짜 아름답다고 하는 코타키나발루 선셋을 즐기기 위해 해가 지기 전에 5시 즈음 호텔을 나서 뷰가 좋은 자리를 예약, 5.30분 정도 일몰을 감상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에 들어갔다. 아직 햇빛은 지기 싫은 듯, 구름 속에서 이따금 나타나 강렬한 열기를 발사하고 있었다.
어제 못한 정상 등반의 기쁨을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셋의 경이로움을 벗 삼아 자축하는 멋진 자리로 무르익어갔다. 시원한 맥주 두 잔을 마시고 와인을 한 병 둘이서 나눠 마시면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선셋을 경이로운 장관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다. 세계 3대 선셋 중의 하나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코타키나발루의 저녁은 그렇게 어둠의 적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빛나는 태양도 지지 않으면 다시 뜨지 않는다. 잘 지지 않으면 잘 뜰 수 없다. 어제와 다르게 떠오르기 위해서는 오늘을 냉철한 자기반성과 성찰로 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천벽력, 나에게 새로운 이력을 선물해주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키나발루 등정 여정에 관한 글을 밤늦도록 완성하느냐고 무리를 했다. 마무리가 안 되는 이유가 바로 무리해서였을까. 암튼 피곤함을 달래려고 눕자마자 골아떨아져 자고 다시 다음 날 아침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듯한 느낌의 몸을 일으켜 아침을 먹었다. 여전히 근육통이 심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12일은 우리가 키나발루 등반을 마치고 코타키나발루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산을 내려온 지 이틀이 지났어도 근육통은 줄어들지 갈수록 설상가상이었고 몸은 잠을 그렇게 많이 잤는데 계속 피곤이 몰려오는 걸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드디어 출국하는 13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몸은 크게 아픈 곳은 없지만 약간의 콧물과 함께 밤새 에어컨 바람 탓인지 가끔 마른기침 한 두 번 정도 하는 상태였다. 점심을 호텔에서 먹고 다시 잠을 자다가 이른 저녁을 먹기 전, 신속항원검사를 하러 병원으로 향했다. 설마 내가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오리라는 상상은 해보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신속항원검사는 무조건 음성이 나와야 한다. 검사를 마치고 잠시 기다리는 사이,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는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포지티브(positive)! 드디어 나도 코로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상황, 그것도 비행기 타기 직전의 비보가 날아들자 갑자기 하늘도 놀란 듯,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가 한국으로 가려던 나의 발목을 잡았다. 혹시 몰라 비용을 지불하고 PCR 검사를 Urgent로 다시 받아보기로 했다. 결과는 오후 7~8시 사이에 나온다고 한다. 그 사이 병원을 한 군데 더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해봤지만 결과는 여전히 양성반응이 나왔다. 이제 만약을 위해 같이 왔던 강경태 소장은 먼저 출국하고 나는 음성이 나올 때까지 빠르면 3~4일 후, 늦으면 최장 10일 정도까지 격리 호텔에서 바깥출입을 차단한 상태에서 배달되는 현지 음식을 먹고 버티는 독수공방의 시간으로 접어들어야 했다. 내일 새벽 00:35분 비행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절망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청천벽력, 나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색다른 이력을 선물해주는 계기가 될 줄이야.
자유를 잃은 사람에게 호텔은 바깥과 차단된 격리공간일 뿐이다
차 안에서 PCR 검사 결과를 마지막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함을 넘어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으며 나 혼자 격리생활을 시작하려는 방향으로 몸과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8시 즈음에 최종 통보가 왔다. PCR 검사 결과 역시 양성이었다. 내가 태어난 고향, 충북 음성을 처음으로 잃고 잠시 양성 상태로 기약 없는 코타키나발루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몇 개의 호텔이 모두 예약 만료라 마지막 잡은 만다리 호텔엔 홍대 근처 거리처럼 길거리 공연이 펼쳐지는 등 도심 한가운데 있어서 소음을 사전에 예견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투숙이 결정되었다. 무한 자유가 구속되고 오늘부터 나는 음성반응이 나오기까지 바깥출입도 허용되지 않는 감옥 생활이나 마찬가지 하루가 시작되었다.
발목이 잡히다
가려던 길 위에서
뜻밖의 복병을 만나
발목이 잡힌다.
갑자기 날아든 비보 앞에서
한 가닥 희망을 기대했지만,
기대를 저버린 현실 앞에
암담한 미래가 달려와 널뛰기를 시작한다.
절망으로 뒤바뀐 희망에게
원망조차 토해내기 힘든 상황,
한 번 쓰러지고 다시 힘없이 넘어지며
하염없이 지나가는 바람을 탓한다.
가던 길 멈춰 서지 않고
멈춤을 당하고 나서야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여정에
긴 호흡으로 바라본 먼 미래가 없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쓰러졌지만
무너지지 않고 지금도 내일을 기약하는 까닭은
넘어지면서 겪은 고난의 깊이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혜안을
몸으로 겪어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리라.
밖으로 향하는 열망의 화살을 버리고
내면으로 파고드는 침잠의 시간,
적막한 밤이 창문 사이로 스며들며
새벽으로 향하는 고요함은 깊이를 더해간다.
느닷없이 날아가는 비행기의 굉음,
침묵과 나누는 대화 사이로
깊은 상처한 줄,
진한 여운 한 장 남기며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키나발루 정상을 올랐을 때의 하늘을 찌를 듯한 통렬한 기쁨과 코타키나발루의 황홀한 일몰의 낭만도 이제 나에게는 지나간 추억의 장면일 뿐, 내 몸과 맘은 어둠 속에 갇힌 호텔방에 갇혀 독수공방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비의 영산, 키나발루 정상 등반 여정이 전해준 경이로운 감동이 몸에서 희석되기도 전에 이제 내 몸속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외로운 전쟁을 치르면서 밖으로 모든 시선을 안으로 침잠시켜야 하는 색다른 격리 체험을 시작했다. 똑같은 호텔이지만 휴식과 안정, 추억과 깨달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몸속의 바이러스가 밖으로 퍼지지 않도록 차단된 침울한 공간이 호텔임을 처음으로 자각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늘 경험하던 방식대로가 아니라 전혀 낯선 공간으로 다가온 호텔, 그것도 들어갈 자유는 있지만 나올 자유는 제한되는 호텔 공간에서 한 인간은 저마다의 감각적 경험을 겪는다.
책 속의 문장으로 독수공방(讀修工方)하며 공부하다
분위기조차 음침한 호텔 3층에 올라 나에게 지정된 방을 찾아 들어서는 순간 문밖에는 두 개의 의자가 가지런히 기다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문밖에 기다리는 의자는 배달원이 가져다주는 음식 받침대였다. 그동안 많은 코로나 환자들이 이 의자를 통해 간신히 버틸만한 에너지를 공급받았는지, 허름한 의자 시트가 말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이제 코로나 확진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호텔 격리에 들어간 첫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샤워를 한 다음 시집과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 사이 방음장치가 전혀 안 되는 창문 밖으로 공연 소리와 함께 자동차 경적 소리가 그대로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렇게 시끄러운 소음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10일 새벽에 맛본 키나발루 정상에서의 희열은 이제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극심한 고독과 함께 언제 어둠이 가실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안감을 애써 감추며 버티고 견뎌내는 격리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단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코로나 확진 반응과 함께 가야 하는, 가고 싶은 한국으로 못 돌아가고 홀로 호텔에 남아 있는 동안 나에게 던져진 키나발루 정상 등정 여정의 깊은 의미를 곱씹으며 시 한 줄, 책 속의 인두 같은 문장 한 줄에 녹여 온전히 내 안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우선 고단한 하루를 보내면서 지친 심신을 침대에 눕혀 보았다. 조금이라도 일찍 잠을 청해서 오늘 맞이한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을 희석시켜보려는 의도였다.
침대에 눕자마자 극심한 소음이 자장가 소리로 뒤바뀌기를 손꼽아 기다리면 뒤척였지만 소음은 갈수록 설상가상의 난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잠을 더 이상 청할 수가 없어서 물을 연거푸 마시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해보려고 했지만 뚜렷한 대안은 보이지 않고 밤은 깊어만 갔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든 듯했지만 악몽에 시달리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내내 괴한들의 칼부림과 칼로 목을 조여 오는 꿈을 쉼 없이 꾸면서 발악을 하다가 중간에 일어났다. 다행히 현실은 어둔 호텔방의 앉아있는 내가 감지되었고, 직전의 심각한 가위눌림에 숨을 멎을 뻔할 정도로 돌이키기조차 싫은 괴로운 시간이었다. 어떻게 다시 잠을 잤는지 어둠을 삼켜버린 새벽 기운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 호텔에서 더 이상 묵는다는 게 나에게는 너무 큰 절망으로 엄습해왔다. 아침에 매니저와 사정 이야기를 해서 호텔을 바꿔달라고 했지만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음성 판정이 나오기까지 호텔은 절대 이동할 없다는 게 말레이시아 정부의 법적 규정이라는 것이다. 대신 소음이 심하지 않은 반대편 방으로 바꿔 줄 테니 다시 심신의 안정을 꾀하고 빠른 회복을 기원해주었다. 매니저의 제안대로 앞방으로 방을 바꿨더니 훨씬 조용해졌고,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조용한 시골장터 같았다. 우선 소음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고 책을 읽기에도 안정적인 책상을 갖추고 있어서 우선 이 방에서 내 고향, 충북 ‘음성’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까지 잘 견뎌보기로 했다. 반칠환 시인과 이병률 시인의 시집을 읽고, 김승희 시인의 《33세의 팡세》을 묵독하면서 내 몸속에 한 줄 한 줄 갈아 넣었다. 몸으로 쓴 글이 다시 내 몸속으로 말려들어가면서 또 다른 삶의 고독으로 낭송되어 나오는 듯했다. 한 문장 속에 담긴 시인의 몸부림을 나의 몸부림으로 이식시켜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하루를 보냈다.
절망이 반복되자 희망도 두 배로 커졌다
둘째 날, 8.15일 아침은 어제보다 숙면을 취해서인지 한결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다행히 특별한 증상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열도 안나 정상 체온을 유지하는 듯했다. 이제부터 언제까지 이 방에서 견뎌야 할지 최대 10일 동안을 있는다는 생각으로 Plan B를 짜야했다. 극단적으로 신속항원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계속 나오면 7일 후에 격리는 면제되고, 10일이 지나면 그냥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말레이시아 코로나 방역 규정이다. 가장 희망적인 바람은 확진 판정 후 3-4일 후인 16일이나 17일 다시 검사를 해서 음성 판정을 받으면 그 길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그때까지 최대한 잘 먹고 면역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메가도스 비타민 3,000cc를 매 식사 때마다 먹고, 오렌지 주스와 물을 수시로 마시기로 했다. 비타민 C와 물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할 면역력과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줄의 끈이라도 이어질 희망이 있다면 무조건 시도해보고 자신감을 충전해주는 노력이 지금 시점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 후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언제 다시 음성반응이 나올 수 있을지 알 길은 없다. 다만 내 몸 안에서 싸우고 있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내가 이겨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에너지를 잘 공급해줘야 하고 충분한 수면과 휴식, 그리고 영양 상태를 잘 관리하는 길 뿐이다. 첫날부터 생존하기 위해서 현지 ‘그랩’이라는 앱을 깔고 우여곡절 끝에 카드까지 등록해서 현지 음식을 거의 입에 못 대는 관계로 한국식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는 음식을 주문하는 데 성공했다. 된장찌개를 주문해보았다. 생각보다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다행히 나는 미각과 후각은 여전히 괜찮았고, 밥맛도 좋아서 그럭저럭 잘 버텨가면서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물을 수시로 많이 마셨고, 오렌지 역시 자주 마시고 비타민C도 많이 먹으면서 면역력 회복에 신경을 썼다.
격리 3일째 밤은 낮에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주기적으로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잠자는 사이에도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듯 물을 계속해서 많이 마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 상태는 다행히 호전되는 기분이 들었고 16일 아침이 되자마자 어젯밤에 현지 가이드와 약속한 병원에 걸어가 다시 신속항원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전에 호텔 매니저가 제공해준 자가진단 키트로 어젯밤과 오늘 아침 두 번에 걸쳐 검사한 결과 다행스럽게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큰 희망을 걸고 9시 즈음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 검사를 했다. 유독 깊이 코 속을 찌른 기분이 몹시 불안했다. 긴장과 초조의 이중주를 들으며 결과를 기다렸다. 역시 양성반응이 나왔다. 다시 내 고향, 충북 ‘음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실패했다. 깊은 좌절감에 한낮의 폭염은 나에게 식은땀을 선물로 주면서 다음을 기약해보자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주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짙은 어둠이 깔린 채 긴 장막이 막막한 길로 안내하는 듯 보였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몸을 추스르고 산산이 흩어지는 심란한 감정의 물길을 한 곳으로 모아놓고 정신을 가다듬어 다음 검사를 노려보기로 했다. 13일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내 느낌상 11일쯤 코로나에 걸린 것 같았다. 그날부터 극심한 피곤함에 다른 일도 못하고 호텔방에서 잠만 잤으니 말이다. 오늘이 16일이니까 실질적으로 코로나 감염된 날도 따지면 6일 차 되는 날이라 거의 일주일 정도 경과되었다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내 몸 안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사라져서 내 고향 충북 음성으로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불안감이 앞을 가리고
어둠은 절벽을 건넌다
불편함이 속을 태우고
시간은 절망의 집을 짓는다
두려움이 귓전을 맴돌고
공간은 상처를 더듬는다
당혹감이 심장을 때리고
시선은 허공을 헤맨다
난처함이 주변을 서성이고
의지는 맘 둘 곳을 잃는다
막막함이 온몸을 휘감고
욕망을 산산이 흩어진다
억울함이 포물선을 그리고
바람은 나뭇잎을 뒤흔들다 고개를 떨군다
차분함이 뇌리를 스치고
침묵은 심장을 파고들지만
하늘에서는 어둠의 광채가
기약 없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비록 결과가 다시 양성으로 나왔어도 몸은 점차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좌절감은 절망의 나락으로 나를 끌고 가지 않고 오히려 빠른 시간 안에 희망으로 뒤바꾸는 대역전극을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매니저에게 이야기해서 다시 오후에 가까운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기로 허락을 받았다. 점심을 잘 챙겨 먹고 오후 2시쯤 병원을 가기 위해 그랩으로 택시를 불렀다.
생각대로 안 되면 생각을 바꾸면 된다
그전에 혹시 모르니 한국 가는 비행기 좌석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다행스럽게 좌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아닌가. 문제는 18일 세바시를 비롯 두 개의 영상 녹화가 있고, 주말에는 3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로 잡힌 대학원 제자들과의 1박 2일 행사가 있다는 점이다. 만약 오늘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와서 귀국할 수 있어도 여전히 18일 영상 녹화를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일찍 포기하고 두 일정 모두 연기해놓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등록을 하고 잠시 자리에 앉아 긴 호흡을 하며 심리적 안정을 취했다. 드디어 다시 검사실에서 들어오라는 호출이 왔다.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남자 간호사가 화사한 미소로 불안해 보이는 나를 심리적으로 위로해주었다. 코를 파고드는 솜뭉치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다시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먼저 받은 두 분의 한국 사람이 음성반응이 나온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곧이어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결과는 Negative! 내 인생에서 네거티브가 이렇게 반갑게 들릴 줄은 몰랐다. 순간 환호성을 지르면서 이제 드디어 돌아갈 수 있구나 하는 깊은 안도감과 함께 3일간의 독수공방이 주었던 고독감이 힘든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고독력으로 바뀌면서 다가왔다. Positive와 Negative, 긍정과 부정의 선택 기로에서 우리는 늘 긍정을 선택해왔고, 그렇게 선택을 강요받으면서 살아왔다. 오늘만큼은 세상을 모두 네거티브의 세계로 바꿔놓고 싶었다. 현지 가이드와 통화가 안 되어서 한국의 하나투어 담당자와 통화해서 무조건 비행기표를 구해달라고 했다. 24시간 이내에 출국하지 않으면 내일의 검사 결과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급 탈출 후 관리 전략으로 급선회다. 다행히 비행기표 좌석은 구했고 현지 가이드와도 연결되어서 9시 즈음 공항으로 가기 위해 픽업하러 오겠다고 했다.
불편하지 않는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았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이병률의 시집, 《찬란》의 ‘시인의 말’ 중에서
정상으로 치달았던 즐거움과 환희, 기쁨과 감동의 순간은 낭만적인 코타키나발루의 선셋 장관으로 이어지다 출국 직전에 만난 비보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바닥을 넘어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몸과 맘을 추슬러 에너지를 회복하고 심기일전하는 가운데 새벽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탑승하는 또 다른 기쁨을 맛보았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9.30분 즈음, 신속하게 짐을 붙이고 티켓팅한 다음 남은 시간 동안 공항 내 스타벅스에 가서 참으로 오랜만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겼다.
오염된 몸속을 커피 한잔으로 위로하면서 읽다가 만 김승희 시인의 《33세의 팡세》를 다시 꺼내 들었다. “부득이함만이 전부인 세상이 바로 지옥”이라는 카프카의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3일간의 짧은 격리 기간은 온통 부득이,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수밖에 없는 지옥의 순간이었다. 짧지만 악몽 같은 3일간의 격리, 그래도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회복되어 확진 판정을 받고 4일 만에 음성 판정으로 선회되어 출국할 수 있는 뜻밖의 기쁨을 다시 누리게 되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인간은 오히려 그 순간부터 이전과 다른 생각을 하면서 다른 위기극복 전략을 수립하고 몸으로 실행하면서 이전과 다른 난국 돌파 전략을 구현해나간다. 생각대로 안 되면 기존의 미련과 아집, 통념과 상식을 부정하고 앞으로 다가올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를 이전과 다른 행동과 생각으로 임하면 된다.
밤 12시를 넘기면서 비행기는 코타키나발루의 밤하늘을 뚫고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다. 창밖으로 빛나는 별빛이나 네온사인은 그동안 억눌린 감정의 아롱진 얼룩 행렬처럼 보였다. 밤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비행기는 하늘을 밀어내고 날아오르는 사이, 코타키나발루 밤바다는 침묵했다. 비행기는 어둠의 장막을 뚫고 새벽을 잉태한 채 무심한 구름 사이를 헤집고 한국을 향해 날아갔다. 인천 공항에서 영원한 동지, 강경태 소장이 뜻밖에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혼자 남겨두고 떠난 동지애의 발로였다. 뒤늦게 남아 고생한 격리 생활에서 겪었을 힘든 시간을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녹여주었다. 의리의 사나이, 나의 영원한 어드벤춰 동반자 강안남자 강경태 소장은 백신 2차 접종을 한 달 전에 맞은 게 큰 위력을 발휘한 듯하다. 이제 모든 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 시계는 쉬지 않고 세상을 한 바퀴 도는 사이, 하루 해는 다시 오늘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바뀌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면서 족적을 남기는 인간과 시간, 그리고 공간에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