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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언어를 디자인해야 하는가?

언어를 design하지 않으면 언어로부터 resign 당한다

왜 언어를 디자인해야 하는가?:

언어를 design(설계)하지 않으면 언어로부터 resign(사임당한다


한 회사가 오랜 고심 끝에 주 5일 근무제를 파기하고 새로운 근무형태를 도입했다. 경영층에서 결정한 근무형태는 금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방식이다. 다음 날 직원들에게 “주 4.5일 근무제 전격 실시”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생각만큼 직원들의 반응은 즐거운 표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시 경영층은 외부 자문을 얻어 “주 4.5일 근무제 전격 실시”라는 논리적 설명과 지시와 같은 계몽 형태의 메시지를 직원들의 심금을 울리는 감성적인 메시지로 다시 디자인했다. “회사는 여러분에게 금요일 오후를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같은 생각이지만 다른 언어로 생각의 옷을 입혀서 밖으로 내보냈더니 반응은 기대 이상의 감동적인 반응을 만날 수 있었다. 언어 디자인은 이처럼 같은 생각인데 사용하는 언어를 바꿔서 메시지를 받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 건축술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를 디자인해야 되는 첫 번째 이유이자 언어를 디자인하는 노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https://youtu.be/SfQ0-hnQF68


이처럼 똑같은 말인데 전달하려는 의미와 의도를 언어를 재배치하고 문장을 건축하니까 똑같은 제도적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감은 감동을 넘어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나이를 먹으니까 잘 되던 것도 안 되네”라고 말하면서 나이 듦을 한탄하지만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나씩 포기하는 것 같아”(유재석)라고 말한다. 똑 같이 나이가 들어가지만 누군가는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낡은 생각을 날조하면서 한탄과 후회의 과정으로 해석하지만 누군가는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익은 생각을 창조하면서 감탄과 이전과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인생 후반전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나이 들어가는 현상을 어떤 언어로 디자인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와닿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생각이 낡아빠지는 것은 얼마든지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바로 사용하는 언어 사용 방식을 바꾸면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그만큼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언어 디자인이란 말하고 싶은 의지나 의도를 적확한 언어를 벼리고 벼린 다음 적재적소에 배치해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건축함으로써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 같은 말이지만 전혀 다른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디자인한다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일까. 둘째, 언어 디자인은 소설가 배수아가 《당나귀들》이라는 책에서 말한 ‘언어의 틈새’를 메꿔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이다. 언어의 틈새는 매일 만나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배운 언어'로 포착되지 않을 때, 아직 배우지 못한 언어를 동원해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려는 분투 사이에 존재한다. 사물이나 현상이 말하고 싶은 의도를 배운 언어로 담아내지 못할 때 언어의 틈새는 벌어지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틈새를 메꾸지 위해 어제와 다른 언어를 동원해서 사물이나 현상이 말하고 싶은, 그래서 그걸 받아쓰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언어는 틈새를 메꾸는 새로운 매개체로 부각된다. 언어 디자인은 바로 언어의 틈새를 메꾸기 위한 분투노력이자 애쓰기다. 배수아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언어 디자인은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 사물이 말하고 싶은 의도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는 영원한 투쟁, 즉 “언어와 사물이 그대로 등가가 되는 세상”을 향해 끝이 없는 싸움을 벌이는 과정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소설가 김훈이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작가는 처음엔 “꽃이 피었다”가 아니라 “꽃은 피었다”로 적었다고 한다. ‘은’이 ‘이’가 되기까지 담배 한 갑을 태웠다는 고백을 산문집 《바다의 기별》에서 이유를 밝힌 적이 있다.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라는 김훈 작가의 고백을 들어보면 언어의 틈새 사이에서 작가가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고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은(는)’과 ‘이(가)’의 사소한 차이로 사실과 정서의 세계를 다르게 담아내려는 노력이 언어 디자인이다. 이런 노력에 풍부한 어휘력과 화려한 수사적 기교가 필요하지 않다. 단순한 차이지만 심오한 의미상의 차이를 가져오는 효과는 보다 적확한 언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려는 작가적 정신과 자세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셋째, 언어 디자인은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던져주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때, 전두엽을 자극할 정도로 폐부를 찌르고 살갗을 파고드는 문장 건축과정이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7쪽). 우치다 타쯔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에 나오는 말이다. 무지를 나태의 산물로 생각했던 범상한 사람들의 생각에 일격을 가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무지라는 개념을 놓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근면이라는 개념과 마주치면서 색다른 깨우침의 장을 여는 색다른 언어 디자인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


https://youtu.be/30llVG2rkzI


이런 언어 디자인은 언어적 기교나 테크닉, 말의 솜씨나 능숙한 기술로 구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글을 쓰려는 작가의 체험적 깨달음과 각성을 통해 자신의 사고방식을 이전과 다른 언어로 표현하려는 노력에서 얻어지는 지혜의 산물이다. “오래 산 사람을 늙는다고 하고(늙었다고), 오래 쓴 물건을 낡다고 한다(낡았다고). 사람과 물건이 다르다는 뜻이다”(29쪽). 이어령의 《눈물 한 방울》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과 ‘물건’, ‘늙는다’와 ‘낡다’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는 표현하는 사람의 언어 선택과 배치,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 비교와 분석을 통해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 차이를 가져오는 언어 디자인에 달려 있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이가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6쪽).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에 나오는 말이다. 자연과학적 전공언어인 ‘진동’을 인문학적 언어인 ‘떨림’으로 바꾸니 수리체계로 직조된 물리학이 갑자기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다정한 문장으로 다가오는 경이로움이 탄생한다.


김상욱 교수의 주장은 존재의 떨림은 서로의 울림이 된다. 떨림에 공명을 맞추지 못하면 울림은 없다는 문장에 농축되어 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살아가기 위해 떨고 있다. 그 떨림에 반응하는 움직임이 울림이다. 떨림과 울림의 어울림이 곧 물리현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여기서 언어를 디자인하는 네 번째 노력을 보자. 자신은 떨림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기에 감응하는 사람이 울림으로 보답하지 않다가 떨림의 방식으로 바꾸니까 전혀 다른 공명의 장이 형성되는 사례다. 미국의 마케팅 에이전시인 퍼플 피더(Purple Feather)가 만든 ‘단어의 위력(The Power of Words)’이라는 영상을 보면 언어를 디자인한다는 게 무슨 의미이고 얼마나 위력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본보기다. “저는 장님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I’m blind.  Please help!).” 이런 글을 써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보려고 하지만 소수의 사람만이 동전을 놓고 간다. 때마침 지나가던 한 숙녀가 장님의 문장을 호소력 있는 글로 재건축한다. “참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하지만 전 볼 수가 없네요(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기꺼이 놓고 지나간다. 순식간에 동전통에는 많은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같은 생각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디자인하면 관심도 없었던 사람에게 주목을 끌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심어준다. 이것이 바로 언어를 디자인해야 되는 가장 절실한 이유이자 목적이다. 



언어를 디자인하는 과정은 풍부한 어휘력이나 현란한 수사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풍부한 어휘를 다양하게 동원해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언어가 전달하는 의미의 강도는 훨씬 높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휘력이 풍부하고 현란한 수사적 기교를 부린다고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를 심장에 꽂아 의미심장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언어 디자인은 같은 말이라도 마음을 훔치고 감동을 주는 감성적인 언어로 바꾸기만 해도 상대에게 전달되는 언어적 의미와 가치는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면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바뀐다(Change your words. Change your world)는 책을 쓰는 미국의 작가, 앙드레 가드너(Andrea Gardner) 역시 이 영상을 활용해서 언어 디자인의 강력한 효과와 가치에 대해서 언급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면, 그 언어를 매개로 바라보는 세상이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세상을 다르게 보려면 결국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해야 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패트릭 랑보아제(Patrick Renvoise)는 레스토랑 앞에서 노숙자를 대상으로 퍼플 피더가 보여준 비슷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집이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문장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안타까운 사정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똑같은 안타까움과 아픔을 논리적 언어를 사용해서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다가 이전과 다른 생각의 옷을 입혀서 표현하니까 놀라운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배고파 보신 적 있나요?” 단순한 변화지만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의미의 강도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집이 없어서 도와주세요”라는 문장과 “배고파 보신 적이 있나요”라는 문장은 똑같이 집이 없어서 힘들과 견디기 어렵다는 아픔을 호소하고 있지만 전달 효과는 천지차이가 난다. 



언어를 디자인하는 다섯 번째 노력은 주로 시인들의 언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우리들이 사용하는 틀에 박힌 언어를 사용하면서 생긴 언어적 점성을 파기하고 낯선 사유를 부르는 촉매제로 언어라는 무기를 개발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자주 기존 언어 사용 문법을 파기하고 색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뜻밖의 깨달음을 선물해주는 문장 건축가다. 시적 언어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사유체계를 건축하면서 견고하게 자리 잡은 통념이나 고정관념의 집을 부숴버린다.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의 심장이 올라와있다.” 박용하 시인의 ‘심장이 올라와 있다’는 시의 일부다. 심장과 눈의 관계를 연결시켜 심장 뛰는 사람의 모습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는 시인의 통찰력이 담긴 문장이다. 심장에 담긴 의미는 볼 수 없지만 심장박동으로 전해지는 감정의 변화는 그 사람의 눈에 고스란히 담긴다는 시인의 관찰이 낳은 통찰이다. “햇빛의 비수에도 나무는 살을 베이지 않고/어떤 침엽수도 제 바늘로 빗방울을 찌르지 않는다.” 이기철 시인의 ‘가을의 규칙’에 나오는 문구다. 시인은 물아일체가 되어 사물이 말하고 싶은 욕망을 귀담아듣고 언어를 매개로 심금을 울리는 문장을 뽑아내는 언어의 연금술사다. 틀에 박힌 언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가장 먼저 접해야 할 언어가 시인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언어를 벼리고 벼리는 과정을 통해 낯선 생각을 잉태할 수 있도록 날 선 언어를 취사-선택하는 언어적 노동자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어머님 배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성선설’이라는 함민복 시인의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불러오는 시적 통찰력이 담긴 시다. 손가락이 열 개인 이유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사람의 손가락이 10개인 것은 당연하고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당연함과 원래 그런 현상, 그리고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는 현상에 낯선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며 언어를 디자인해서 촌철살인의 깨달음을 주는 문장을 건축한다.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면 내 사고방식도 습관의 적에 짓눌려 작동한다. 평범한 언어지만 이전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언어를 연결하면, 예를 들어 손가락 10개와 임신기간 10개월을 연결하는 발칙한 발상이 예술적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언어가 되는 것이다. “나이테는 그 여름의 연서이자 그 겨울의 난중일기다...나이테는 제 가슴에 새긴 목판 경전이다.” 반칠환 시인의 ‘둥근 시집’에 등장하는 시 구절들이다. 나이테는 나무의 나이라고 하거나 나무가 살아온 역사적 흔적이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나이테는 그 여름의 연서이자 그 겨울의 난중일기이며, 자기 가슴에 새긴 목판 경전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테가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언어를 디자인하면 없었던 생각도 새롭게 꿈틀거리고, 보이지 않았던 현상도 색다른 상상력을 품고 낯선 세계로 인도하는 신호등이 켜진다. 언어를 디자인하면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도 갑자기 추진력을 받으면서 과감하게 실천하게 만드는 촉발력이 생긴다. 방관하던 사람도 주먹을 쥐고 심장이 뛰는 삶을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언어 디자인의 위력이다. 똑같은 말도 맥락에 따라 임기응변력을 발휘해서 적재적소에 적확하게 사용하면 언어는 문맥을 타고 흐르는 깨달음의 보고이자 생각의 그릇이다. 필름이 모든 이미지를 담아내는 그릇이듯, 언어는 모든 생각을 저마다의 고유함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내는 그릇이다. 언어를 디자인하면 평범한 99%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사용 방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비범한 1%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예술적 언어의 세계로 입문할 수 있다. 지능은 타고난 기능이지만(99%), 재능은 노력으로 일궈낸 유능함이다(1%). 자존심 부리다 자괴감을 맛보지만(99%), 자존감으로 자신감을 회복한다(1%). 난감하게 생각하며 무력감에 빠지지만(99%), 용감하게 도전해서 성취감을 맛본다(1%).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고 비난하지만(99%),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고 비판적으로 성찰한다(1%). 심오하지만 단순한,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인생의 지혜, 적확한 개념으로 이루어진 문장 건축 디자인에 달려 있다. ‘언어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미래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Design하지 않으면 언어로부터 Resign 당한다.



교보 https://bit.ly/3JCJvp7


예스https://bit.ly/3bHIZ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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