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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여운이 페이지마다
감도는 바람의 여행자다


당신은 여운이 페이지마다 감도는 바람의 여행자다


오십이 처음인 사람에게

오십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오십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 봐

생업이 오십 인 사람이 

외로움의 전재산을 걸고 그가 살아온 

가난함과 험난함을 외로움의 촉수로 애무하며

중년의 그리움에 안타깝게 매달려 있다


건드리면 아무 데서나 세레나데가 울리고 

한 편의 시로 승화되다 

몸이 움직이면 영혼도 따라 움직이고

모든 족적이 다 음악이고 그림인

당신은 아직도 삶에 대해선 숙제검사를 받는 저학년이다



여전히 험담하는 비난의 화살에 상처받고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뚜껑이 열리는 일 부지기수, 

기분대로 풀리지 않으면 

허공을 향해 무언의 메아리를 날리기도 하고, 

투정하는 자식과 투쟁하는 

철부지 인생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틈날 때마다 가방 한가득 어휘를 싣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내렸지만 

당신이 느낀 외로움은 언어로 포착되지 않고

갖은 노력을 다해도 그물망 사이로 하염없이 빠져나가버린

절망과 희망의 언어로 

얼룩진 행간에서 오늘도 의미를 채굴한다.



낙엽에 쌓인 그리움이 추위에 떨어도 

추억으로 한 동안을 버티며 살아왔고

폭설에 새겨진 아쉬운 발자국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지워져도 

새벽 찬이슬 맞으며 땅바닥에 엎드려 

그 자리를 지키는 족적에 희망을 건다


누가 입을지도 모르는 

생각의 옷을 입은 언어들이 동맥을 타고 흐를 때 

반평생의 삶은 피로써 울분을 토하며 

얼룩을 무늬로 만들다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에 바람을 타고 

지나가던 서글픈 소식들이 어김없이 

오늘도 가지가지 사연으로 매달려 있다

얼마나 외로운 사연 많이 품었으면 

무거움을 참지 못하고 

구름은 비가 되어 땅으로 곤두박질치겠는가



중년이 되면 강물이 훑고 지나간 

모래알의 그리움을 긁어내 

어루만져줄 비법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새벽이 찬이슬 앞에 머뭇거리다 먼동이 터옴을 

시로 번역해 내는 경이로운 작법을 

구름에 달 가듯 자연스럽게 포착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여러 번 착각하는 인생을 반복해서 살고 있다


쟁반에 맴돌던 달밤의 낭만이 

소나무 가지가 속삭이는 연서와 만나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싹을 틔우는 순간이 

매 순간 다가올 줄 알았지만

중년이 되어도 하늘이 품고 있는 

변덕스러운 생각에 조응하는 

명령을 따를 수 있을 정도의 

혜안과 안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당신은 쓰다 남은 메모장에 적힌 

그리움 한 조각이고 

찢어진 노트에 담긴 

서글픔 한 페이지라서 

펼치면 시공간이 오십 세 인간을 만난 얼룩과 무늬가 

씨줄과 날줄로 아직도 직조되고 있다


당신은 오르락내리락 우여곡절의 전반전을 뛰고 나서 

한눈팔고 딴짓하다 바라본 구름 한 점이고

거기에 기꺼이 기록을 거부하는 

비애 한 권의 서글픔이 주변을 서성거리다

방황과 배회가 쓰다 남긴 긴 산문시인이다


당신의 내공은 한 두 문장으로 압축되거나 요약되지 않고 

양극단의 스펙트럼에서 언제나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다 

어느 한쪽으로 쏠린 상식과 신념의 종합선물 세트다



처절함과 처연함 사이에서 

처참함을 느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딘지 모르는 중간 간이역에서 

당신의 발걸음은 잠시 쉬고 있다


숱한 역경에 부딪혀 넘어지고 자빠져도 

자기다움으로 다듬어지는 아름다움에 언어는 

이미 항복을 선언하고 잠복근무 중이고

고독이라는 옷을 입은 단벌신사에게

외로움이 느닷없이 습격해서 잠시 머물다 만난

냇물을 건너가는 별들의 향연이다


철부지 매미가 울음을 멈추고 

묵묵히 밥을 나르던 그리움이 한나절 머물다 

하품만 토해내던 나른한 오후가

갑자기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잠시 중간에 멈춰 서서 항의하는 것도 

당신이 입장이 되고 나서야 처음 겪어보는 난국이다  



비록 오락가락 가랑비가 내려도 

그 비의 끝에는 날씨조차 잠시 자신을 잊어버리는 

희망의 광채에 온몸을 떠는 전율감이 엄습해도

낯선 생각을 잉태한 글자들이 

날 선 물음표를 품고 세상으로 나갈 

출산일만 손꼽아 기다리 린다


기다림에 지친 글자들이 

며칠째 밤샘 시위로 피곤함에 젖어 있고

내 숨결을 채집해 세상 살아가는 

지혜의 연료나 원료로 쓰겠다고 다짐해도

인간의 힘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새벽이슬 한 방울에 담긴 자연의 섭리도 

경건한 마음으로 배울 수 있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



삭풍 때문에 수직으로 하강하지 못하고 

불어닥치는 바람을 타고 사선으로 떨어지는 눈발처럼 

중년은 지향하는 대로 방향이 결정된 적이 거의 없고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지만 

걸음걸이는 언제나 휘어진 사선이거나 곡선이다


에둘러 말하는 언어로 휘갈긴 바람의 엽서에는 

힘겨운 숨소리와 기침 소리가 저음으로 깔려있고

마음으로 눌러쓴 그 엽서의 글씨는 

마음씨가 몇 겹의 포장지를 덮고 누워있어서 

우여곡절의 터널을 빠져나온 경험이 없는 

새벽의 찬 서리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문자다



폭풍우나 비바람에게 묻고 

먹구름 속에 숨어 있는 태양에게 물어봐야 

흐릿한 글씨가 품은 속뜻을 알아낼 수 있다지만

당신은 모든 책의 페이지마다 

우여곡절의 악보로 채워진 

한 권의 책을 밤새 온몸으로 읽어도 

다 읽지 못하고 여운이 페이지마다 감도는 

불멸의 습작이다 


저마다의 사유로 작별을 고하고 

이별을 경험한 씁쓸한 당신은 

새벽이 다가와도 잠이 오지 않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에 시름을 희석시켜 

샛별을 위한 아침을 준비해도 

숱한 작별과 이별에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간직한 사전을 펼쳐놓고 

단어들이 품은 의미를 선별하며 문장을 건축해 보지만 

여전히 언어는 하늘을 날며 허공에 펀치를 날릴 뿐

여전히 난해한 상형문자로 건축되어 있는 세월의 문장은

며칠 밤 지새우며 세상의 언어로 

옷을 갈아입고 부단히 신출귀몰하며 

어제와 다른 의미를 잉태한다


비바람에 꺾어진 채 통증을 호소하는 관념이

나뭇가지를 붙일 수 없고

늙음을 속이지 못하고 헛기침하는 

어르신의 아픔을 치유할 수 없는 까닭은

관념은 바닷가에 객사(客死)한 모래알이고, 

땡 빛에 힘없이 죽어가는 들국화의 쪼그라듦이기 때문이다



관념이 땀을 만나지 못하고

침을 흘리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치열한 앎이 아니라 

치명적인 암으로 전락하며

어떤 의심도 의문의 화살을 품고 

활시위를 떠나지 않는 이상, 

과녁을 맞힐 수 없는 평범한 진리를 

당신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고통에 끊임없이 주석을 다는 시간을 보내도

상처 입은 짐 심이 방향감을 상실한 채 뛰어다니는 것처럼 

당신은 내면의 아픈 기억을 보듬어 어루만지고 

새벽공기가 엄습할 때까지 몸부림치며 

행간의 의미를 밝혀보려는 어리석은 여행객이다 



겨울이 와도 떨리는 문풍지만 바라보는 

그림자의 애처로운 눈빛이 

석양의 어둠에 가려져도

당신은 달력만 바라보다 불현듯 만난

초침의 빠른 째깍 꺼림보다 

조금 느긋한 분침 위로 

더 여유롭게 자기 반경을 그리며 살아가는 시침에게 

깨우침을 얻는 나이다 


신체가 감각하며 흐느끼는 

관능적 에로스가 포물선을 그리며 

하강 곡선을 그리다가도 

갑자기 과거가 환생되어 현실로 발돋움하는 

편견이 가로막고 편리가 지름길을 알려줘도 

굳이 불편한 행복을 찾아 위험한 길을 찾아 나서는 

위험을 밥먹듯이 먹고사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신체가 움직이며 만나는 모든 공간의 추억이 

시간을 매개로 환생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하루를 보내고 내일을 걱정하지만

지나가는 바람결을 벗 삼아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려는 안간힘 속에서 

오늘도 당신은 내일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밤새 내린 된 서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낮은 열기를 그리워하는 이름 모를 풀잎의 

가냘픈 미소에도 주목하려고 애쓰지만

몇 시간째 허공을 떠다니며 

헐벗은 하늘의 부끄러움을 가리는 

먹구름의 느닷없는 소나기 꿈에도 

당신은 가던 길을 멈추는 찰나적 다정함을 보여준다 


달빛에 목욕하며 새벽이슬을 머금은 

물안개를 만나 밤새 작곡한 

새벽의 환상 교향곡을 들려주어도 듣지 않고

당신은 뒷굽이 다 닳은 고독한 신발을 신고 

여전히 갈 길이 먼 다급한 마음 억누르며 

다시 분발하려는 바람의 여행자다



중년의 행복은 관념이나 정신을 앞세우거나 

그것이 발목을 잡는 판단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 

비록 악조건이지만 지금 몸으로 밀고 나가면서 

불확실한 상황을 맞이하는 육신이 

정신을 압도하는 가운데 체득하는 

지혜의 불빛을 밝히는 것, 

앉은자리에서 수많은 변수들을 시뮬레이터에 집어넣고 

가상 사고실험을 반복하면서 앞으로의 행동을 

어떻게 전개할지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중년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어도 다행이고 축복이다. 


관념과 추상, 이념과 통념이 지배하는 

중년은 불행하고,

관념이 통제하는 오십은 아프며,

검토가 갈 길을 막는 오십은 한심하고,

다리가 떨리는 오십은 불쌍하며,

만날 친구가 없는 오십은 불안하고, 

갈 곳이 없는 오십은 답답하다. 




P.S.: 이 글은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책의 프롤로그를 시 형식으로 바꿔써 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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