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지능적 성과에 감탄하지만 정서적 울림을 주는 성취에 감동한다
감탄과 감동의 차이, 머리와 가슴 사이에서 살다
놀라운 지능적 성과에 감탄하지만 정서적 울림을 주는 성취에는 감동한다
인공지능은 사람을 감탄(感歎, admiration)하게 만들지만 감동(感動, Deep Impression)시키기 어렵다. 인공지능의 본질과 인간 감정의 깊이와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화두다. 감탄과 감동의 차이는 단순한 화법이나 기교에서 나오지 않고 겪어본 경험의 깊이와 인간적 고뇌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빛의 속도로 압도적인 성과를 보여줄 때 나타나는 외부적 이미지에 대해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깊은 울림과 정서적 공감대를 자극하는 감동이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다. 놀라움이 엄습해서 뇌리를 자극하면 나도 모르게 감탄하지만 깊은 울림이 담긴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다가오지 않으면 감동하지 않는다. 놀라운 논리에 사람은 순간적으로 감탄하지만 심리적으로 와닿지 않으면 심장이 뛰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적 고뇌가 나의 문제로 느껴지는 심리는 깊은 정서적 공감의 연대망이 생기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감탄은 어떤 대상의 뛰어난 능력, 기술, 아름다움, 혹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해 놀라움과 찬사를 표현하는 감정이다. 주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에 기반하며, 대상의 '성과'나 '수행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순간적이고 즉각적으로 대상을 인지하는 순간 발생하며, 주로 시각적, 청각적, 혹은 지적인 자극에 의해 유발된다. '어떻게 저런 것을 해냈지?', '정말 대단하다!'와 같이 대상의 탁월한 능력이나 기술적 완성도에 집중한다. 대상의 외적인 표현이나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예를 들면 복잡한 수학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내는 인공지능, 완벽하게 연주되는 음악, 정교하게 만들어진 예술 작품 등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다.
이에 반해 감동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 마음속 깊이 울림을 주어, 정서적인 공감과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이다. 단순히 놀라움을 넘어, 대상의 의도, 노력, 진정성, 혹은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된다. 감동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으며, 단순한 자극을 넘어선 내면의 심층적 울림을 동반한다.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와 같이 대상의 정서적 내면이나 인간적인 가치에 집중한다. 감탄이 주로 외부 지향적 가치에 순간적으로 놀라는 감정이라면 감동은 대상과의 정서적 연결, 공감,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이나 가치관과의 내부 지향적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 예를 들면 어려운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 진심이 담긴 위로의 말,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행동 등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다.
감탄과 감동의 차이가 보여주는 감정에 비추어 볼 때 인공지능이 감탄은 주지만 감동을 주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냄으로써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인공지능은 정보 처리, 패턴 인식, 콘텐츠 생성 등에서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와 정확성을 보여줌으로써 생각지도 못한 뛰어난 성능과 효율성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복잡한 그림을 생성하거나, 방대한 텍스트를 요약하고 번역하는 능력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때로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인간의 창의성을 뛰어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는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조합과 변형을 통해 나타나는 예측 불가능한 창의성으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탄을 안겨준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능력은 우리가 그 기술력과 잠재력에 대해 '감탄'하게 만든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드는 인공지능이 '감동'을 주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반면, 인공지능이 '감동'을 주기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다. 인공지능은 감정을 '처리'하고 '모방'할 수는 있지만, 인간처럼 감정을 '경험'하거나 '느끼지' 못한다.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감정 표현은 학습된 데이터에 기반한 패턴일 뿐,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정이 아니다. 감동은 종종 고통, 기쁨, 슬픔, 사랑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그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인간적인 삶의 맥락과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동을 전달하기 어렵다. 즉 인간적 경험과 공감의 한계가 있다. 인공지능은 또한 의도와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어 감동하기 어렵다. 감동은 대상의 의도와 진정성을 느낄 때 더욱 깊어진다. 인공지능은 특정 목적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대로 작동할 뿐, 스스로의 의지나 진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행동에서 인간적인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은 비자율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감동을 주기 어렵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부여한 규칙과 데이터 안에서 작동하는 도구다.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며 겪는 고뇌, 선택, 성장을 통해 감동을 주는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은 그 뛰어난 능력과 효율성으로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에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감정, 경험, 그리고 그로 인한 깊은 공감과 울림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이 감탄은 주지만 감동은 주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감탄하지만 지속적으로 감동하지 않는다. 감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오는 놀라운 감정이지만 감동은 폐부를 찌르는 정서적 공감이 깊이 파고들 때 다가오는 짙은 울림이다. 논리적으로 편집한 작품의 외현적 이미지에 감탄을 자아내지만 이미지에 담긴 의미가 심장까지 파고들지 못한다. 의미가 머리에 꽂혔지만 심장까지 전달되어 의미심장해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 몸이 산전수전을 치르며 피눈물과 피땀 흘린 경험적 이야기가 없어서다. 감동은 논리보다 심리, 이성보다 감성, 정신보다 몸이 개입된 산물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감동을 주기 어려운 아유를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인공지능이 감탄을 넘어 감동을 선사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인공지능은 주관적 경험과 의식이 없어서 삶의 구체적인 맥락에서 겪어본 경험적 의미를 의식하지 못한다. 감동은 종종 특정 상황이나 삶의 맥락 속에서 개인이 겪는 고난, 성장, 깨달음 등 주관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통해 정보를 학습하고 처리할 뿐, '살아간다'는 주관적인 경험이나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인간이 겪는 희로애락의 깊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감동은 '나'라는 주체가 다른 '나' 또는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인공지능은 '나'라는 자아 개념이나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인간이 감동을 느끼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생성하거나 전달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둘째, 인공지능 의도와 진정성이 없어서 매사에 목적 지향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특정 목적(예: 정보 제공, 문제 해결, 콘텐츠 생성)을 위해 설계되고 작동한다. 그들의 모든 출력은 알고리즘과 학습 데이터에 기반한 결과물이며, 스스로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나 '의도'를 담고 있지 않다. 감동은 종종 대상의 순수한 의도, 희생, 헌신 등 진정성 있는 행동에서 비롯되는 데 인공지능이 던져주는 답은 명령에 부응하는 반응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 표현 패턴을 학습하여 이를 모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슬픈 이야기를 할 때 슬픈 어조를 사용하거나, 기쁜 소식에 환호하는 듯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학습된 패턴을 재현하는 것일 뿐, 그 감정을 실제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 이면에 진정한 감정이 없음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한다.
셋째, 인공지능은 육체적 존재감이 없고 취약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몸을 통한 경험이 부재하다. 인간의 감정은 육체적인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몸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고통을 경험하며, 기쁨에 몸을 떨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물리적인 몸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지 않으므로, 육체적 존재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거나 표현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은 취약성과 불완전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감동은 불완전하고, 실수를 하며, 때로는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이 복받쳐 일어난다. 이러한 취약성은 오히려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완벽함을 지향하며, 취약성이나 불완전성을 드러내지 않으므로, 인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넷째, 인공지능은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으로 움직이는 논리기계다.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은 기본적으로 알고리즘에 기반하며, 이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물론 복잡한 인공지능의 경우 그 작동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결과물이 데이터와 규칙의 조합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감동은 때로 예상치 못한 순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 혹은 비합리적인 선택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든 도구이며, 인간의 통제하에 존재하고 작동한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감동은 통제할 수 없는, 자율적인 존재의 행동이나 표현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강하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은 뛰어난 지능과 성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만들지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주관적인 삶의 경험, 진정한 의도와 감정, 그리고 육체적 존재에서 비롯되는 취약성 등이 결여되어 있기에 감동을 주기 어렵다. 감동은 인간 대 인간의 깊은 교감과 공감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 표현을 매우 정교하게 모방하고 인식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실제 감정을 느끼는 의식이나 주관적인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감탄'을 주지만,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존 듀이의 경험론으로 본 감탄과 감동의 차이
미국의 경험철학자 존 듀이는 《경험으로서 예술 1》과 《경험으로서 예술 2》에서 경험을 크게 1차적 경험(Primary Experience)과 2차적 경험(Secondary Experience)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차적 경험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직접적으로 겪는 감각, 느낌, 사건 등 날것 그대로의 경험을 의미한다. 아직 정제되거나 분석되지 않은, 즉각적이고 비반성적인 경험이다. 1차적 경험은 우리가 세계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얻는 날것 그대로의 경험이다. 감각을 통해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것, 예를 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맛보거나,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을 때 느끼는 순수한 감각적 인상과 정서적 반응을 포함한다. 아직 이성적인 분석이나 반성적 사고가 개입되지 않은, '경험 그 자체'의 단계다. 이에 비해 2차적 경험(Secondary Experience)은 1차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반성적이고 지적인 경험적 통찰이다. 1차적 경험에 대한 해석, 분석, 조직화, 의미 부여 등을 통해 형성되며, 개념, 이론, 지식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2차적 경험은 1차적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며, 개념화하고, 다른 경험들과 연결 짓는 활동을 통해 형성된다. 이는 단순한 감각을 넘어선 이해, 통찰, 그리고 가치 판단이 수반되는 '경험에 대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듀이의 경험적 차이는 감탄과 감동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도 그래도 적용할 수 있다. 감탄(admiration)은 주로 1차적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이 지닌 압도적인 아름다움, 웅장함, 뛰어남 등을 마주했을 때,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터져 나오는 반응이다. 이는 깊은 사유나 분석 없이도 일어날 수 있는, 감각적이고 비반성적인 놀라움이나 경외감에 가깝다. 1차적 경험으로서의 감탄은 즉각적, 감각적, 비반성적, 순간적, 외형적 특성에 대한 반응이다. 예를 들면 정동진에서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순간을 보거나, 금강산의 절경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와!" 하고 감탄한다. 이는 시각적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다. 또한 서커스 곡예사의 아슬아슬하고 완벽한 기술, 혹은 운동선수의 경이로운 플레이를 보았을 때, 그들의 비범한 능력에 대해 순간적으로 감탄한다. 이는 그들의 움직임과 결과에 대한 직접적인 인상이다. 나아가 예술 작품이 시각적인 충격을 줄 때 감탄한다. 강렬한 색채와 구도를 가진 추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시각적인 힘에 압도되어 감탄할 수 있다. 아직 작품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의 존재감에 반응하는 것이다.
감동(Being Moved/Touched) 1차적 경험을 넘어선 2차적 경험, 즉 대상의 내면적 의미, 과정, 노력, 가치 등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 일어나는 깊이 있는 정서적 반응이다. 단순히 외형적인 것에 대한 반응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서사나 맥락을 이해하고 자신의 내면과 연결될 때 발생한다. 이는 반성적 사고와 정서적 공감이 결합된 결과다. 감동은 반성적, 의미 지향적, 지속적, 내면적 가치에 대한 반응이자 공감이 동반되는 감정이다. 사람은 누군가 인생의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받는다. 한 사람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을 이루어낸 과정을 들었을 때, 단순히 결과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 속의 노력과 의지에 깊이 감동하게 된다. 이는 그 사람의 삶의 서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2차적 경험이다. 사람은 또한 예술 작품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을 받을 때 감동받는다. 처음에는 시각적으로 감탄했던 추상화가, 작가의 삶의 배경과 작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깊은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는 작품의 외형을 넘어선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가오는 감정적 반응이다. 감동은 타인의 진심 어린 행동에도 심금을 울리며 다가온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거나, 아무런 대가 없이 진심으로 베푸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행동의 이면에 담긴 순수한 마음과 사랑에 감동한다. 이는 단순한 행동 관찰을 넘어 그 의도를 헤아리는 반성적 경험이다.
결론적으로, 감탄은 주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1차적 경험에 기반한 반응이라면, 감동은 1차적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공감하는 2차적 경험이 더해진 깊이 있는 정서적 반응이다. 감탄은 주로 대상의 외적인 특성에 대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인 반면, 감동은 대상의 내적인 의미와 가치에 대한 반성적이고 공감적인 반응이다.
듀이는 경험을 '성장'과 '경험의 재구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했다. 그의 철학에서 '완벽한 경험'이란, 단순히 즐겁거나 인상 깊은 경험을 넘어,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고 미래의 경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감탄을 유발하는 1차적 경험과 감동을 자아내는 2차적 경험이 통합되어 듀이가 말하는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으로 재탄생되어야 감탄과 감동, 1차적 경험과 2차적 경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지속적인 배움과 익힘의 쌍두마차가 우리들의 삶을 행복의 목적지로 끌고 갈 수 있다. 여기서 존 듀이가 말하는 '하나의 경험'이란 단순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유기체(개인)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작되고, 발전하며, 마침내 어떤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하는 통일된 경험이다. 이러한 '하나의 경험'은 우리가 이전에 논의했던 1차적 경험(즉각적 감각, 감탄)과 2차적 경험(반성적 이해, 감동)이 통합되어 나타나는 결과다. 1차적 경험이 재료를 제공하고, 2차적 경험이 그 재료를 가공하여 의미 있는 형태로 완성하는 과정인 셈이다.
예를 들면 주말에 산에 오르기로 결심하고, 등산 계획을 세우며 설렘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산을 오르면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고(1차적 경험), 때로는 가파른 경사에 힘들어하며 숨을 고르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예: 갑작스러운 비)에 대처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동료들과 서로 격려하며 함께 나아간다. 마침내 정상에 도달하여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성취감과 함께 깊은 감동을 느끼며 등산을 통해 배운 삶의 교훈을 되뇌어 반성하고 성찰하는 2차적 경험을 한다. 하산 후에는 다소 피곤하지만,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체력과 인내심을 재확인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으며 경험을 통해 체득한 성장교훈을 재구성한다. 이처럼 등산은 단순히 걷는 행위를 넘어, 계획, 노력, 도전, 감탄, 감동, 그리고 성취와 깨달음이 하나의 통일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경험'이 된다. 듀이에게 '하나의 경험'은 삶의 질을 높이고, 개인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내는 핵심적인 요소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재구성되는 발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감탄을 유발하는 1차적 경험은 새로운 환경과의 즉각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며, 이는 경험의 '시작점'이자 '날것의 재료'를 제공한다. 반면, 감동을 자아내는 2차적 경험은 이 1차적 경험을 반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기존의 지식 및 가치 체계와 연결 짓는 과정이다. 이 두 가지가 통합될 때, 경험은 단순한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된다. 듀이에게 교육의 목적이자 경험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바로 '성장'이다. 그리고 성장은 '경험의 재구성(reconstruction of experience)'을 통해 이루어진다. 1차적 경험인 감탄을 통해 새로운 자극, 예상치 못한 발견, 혹은 강렬한 인상을 제공하여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습관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 '균열'은 개인이 더 깊이 탐구하고 반성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동기가 된다.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 감탄하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넘어, 그 작품에 대해 더 알고 싶게 만드는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 1차적 경험을 통해 발생한 '균열'을 메우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기존의 이해를 확장하는 과정이 2차적 경험으로서의 감동이다. 감탄했던 예술 작품의 배경, 작가의 의도, 시대적 맥락 등을 탐구하면서 그 작품이 주는 감동은 더욱 깊어지고, 이는 개인의 미적 감각이나 세계관을 재구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1차적 경험이 제공하는 '날것의 재료'가 2차적 경험을 통해 '요리'되고 '소화'될 때, 비로소 개인의 내면적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듀이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감성적 존재로 보았다. '완벽한 경험'은 이 두 가지 측면이 조화롭게 발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감성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감탄은 삶의 활력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다. 이에 반해 감성적인 울림과 더불어 이성적인 이해와 반성적 사고가 결합될 때 감동적인 경험이 다가온다. 이는 경험에 깊이와 의미를 더하고, 단순한 느낌을 넘어선 통찰을 제공한다. 이 둘이 통합될 때, 우리는 세계를 단순히 감각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복합적인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더욱 풍요롭고 깊이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듀이의 관점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1차적 경험과 감동을 자아내는 2차적 경험이 통합될 때 비로소 '완벽한 하나의 경험'에 가까워진다. 1차적 경험이 새로운 자극과 호기심을 제공하고, 2차적 경험이 그 자극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면화함으로써 개인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세계와의 관계를 재구성하며,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