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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생태학자 유영만, 휴먼 브랜드가 되기까지

어른의 전달력은 자기다움으로 구축된 대체불가능한 휴먼 파워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휴먼 브랜드가 되기까지

어른의 전달력은 자기다움으로 구축된 대체불가능한 휴먼 파워다


2025년 8월 28일은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우선 내 생일이기도 하고 한국소비자포럼에서 선정한 2025 올해의 브랜드 대상,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어 수상하는 날이기도 하다. 국내 포함 해외까지 약 100만 명의 소비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이 브랜드 대상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의미는 한양대학교 유영만 교수보다는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의 휴먼 브랜드를 소비자가 인정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상보다도 뜻깊은 상이 아닐 수 없다. 익숙한 지식과 생태학자라는 두 가지 개념이 우발적으로 접속되어 낯선 지식생태학자라는 낯선 브랜드 이름이 탄생된 것은 30여 년 전의 일이다. 지식생태학자라는 휴먼 브랜드는 나의 자기다움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브랜드 이름이기도 하고 세상이 나를 인식할 때 떠오르는 각인된 이미지이기도 하다. 지식생태학자라는 브랜드가 탄생되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어른의 전달력에 비추어 추적해보려고 한다. 어른의 전달력은 궁극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휴먼 브랜드 이미지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유한 설득력이기 때문이다.



한탄과 후회 또는 걱정은 앞으로 나가는 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휴먼 브랜드의 여정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진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수렵, 어로, 채취, 농경 생활하다 장학금과 숙식은 물론 취업까지 보장해 준다는 수도전기공고에 입학하는 선택이 역사적 의미를 잉태하는 중대한 사건의 출발이다. 취업도 보장해 준다는 달콤한 미래라는 미끼에 넘어갔고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는 감언이설의 비전에 대책 없이 끌려 수도전기공고에 입학했다. 밤낮으로 국영수 과목 대신 용접 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힘겨운 실습을 반복하는 학교 생활은 내가 기대했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벗어나는 뜻밖의 삶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기숙사에서 먹고 잘 수 있는 생계까지 책임지는 학교를 벗어나면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암담한 앞날만 기다리고 있어서 버티고 견디면서 졸업만 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미래를 밝혀보기 위해 엄격한 선배들의 규율과 구타로 점철된 기숙사 생활을 참고 견디는 일뿐이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전기용접 실습을 반복하면서 후배 구타로 맞은 무기정학은 암담한 미래조차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회색빛 청춘으로 점철된 고등학교를 천신만고 끝에 졸업하는 또 다른 사건이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병역면제 혜택이 주어지는 평택화력발전소에 취업, 밤과 낮을 바꿔가며 교대근무를 난생처음 시작했다. 발전소 교대근무가 끝나면 뚜렷한 목표도 없고 미래를 꿈꾸는 비전도 없어서 술에 의미하며 암담한 미래 한탄만 일삼기를 반복했다. 그저 하루살이처럼 주어진 일을 맹목적으로 하고 나면 허탈한 심정과 왠지 모르는 적개심과 분노를 삭이기 위해 늘 술을 밥먹듯이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현실의 시름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면서도 언젠가는 대학을 가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우연히 서점에 들러 이런저런 책을 보다 고시체험생 수기집과의 우연한 만남이 오늘의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은 만든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공고생이 사시와 행시를 합격한 감동적인 고시합격생 수기집을 우연히 읽은 덕분에 고시를 공부하면 밑바닥 인생을 한 방에 역전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꿈을 품고 1년간 방송통신고등학교 라디오 방송으로 독학하며 사투를 벌였지만 당시 대입 학력고사 점수는 생각보다 훨씬 낮게 나왔다.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다. 받아들이고 주어진 상황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길이 빠른 길이다. 한탄과 후회 또는 걱정은 앞으로 나가는 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여한 마주침이나 우발적 접촉이 색다른 깨우침이나 낯선 촉감을 낳는다


법학과를 지원, 고시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학력고사 점수가 부족해서 선택한 운명의 학과가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였다. 공고(工高)를 졸업해서인지 교육공학과(敎育工學科)의 ‘공(工)’자가 유난히 정이 갔었다. 교육공학과가 무슨 과인지도 모르고 입학, 고시공부를 학과 공부와 겸행하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면서 또 하나의 일생일대 결단을 내렸다. 고시공부를 하면 할수록 재미는 없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의 불행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음을 깨닫고 복학해서 고시공부하던 책을 다 불사르고 고시를 포기하는 일명 분서갱유 사건을 감행했다. 강제로 읽던 재미없는 독서에서 벗어나 뒤늦게 책 읽는 재미에 빠져 교육공학을 내가 하면 재미있는 공부,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공부하면서 스승님 덕분에 모교에서 학부와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 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과목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야와 관점을 넓히기 위해 다른 과에 가서 철학이나 사회학 등 다른 분야의 과목을 폭넓게 공부하면서 혼돈이론이나 학습조직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적 관점을 배우는 소중한 깨달음의 시간을 보내다 비교적 빠른 시기에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인력개발원에 취업했다.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근무한 5년의 기간은 박사 때까지 배운 다양한 이론적 지식이 격전의 현장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소중한 실전 경험의 시간이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삼성인력개발원에 근무하면서 학습하는 속도가 환경변화 속도보다 빠르거나 같아야 한다는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과 필요한 지식을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자는 ‘지식경영(Knowledge Mnagement)’ 관련 업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에서 배운 학습과 지식의 본질적 의미를 재음미하면서 어떤 학습활동을 통해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고 공유할 수 있는지를 다른 관점에서 공부하고 적용해 보는 경험을 쌓아나갔다. 우연히 미국 캘리포니아에 출장을 가서 조지 포(George Por) 박사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조지 포 박사는 프랑스의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객원교수를 역임하면서 생태학적 관점에서 지식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선구자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 분과 지식의 본질적 속성에 관해 토론을 하며 제록스 최고 연구위원을 역임했던 존 실리 브라운(John Seely Brown)과 같은 전통적인 심리학자들의 학습과 지식에 대한 고전적 관점에 대안적 관점을 제공하는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여한 마주침이나 우발적 접촉이 색다른 깨우침이나 낯선 촉감을 낳는다.



지식은 정체되어 있는 객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흐름이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습과 지식은 사회현실과 격리된 공간에서 학습자가 독립적으로 레고블록 같은 객체로서의 지식을 습득하는 활동이나 결과가 아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습과 지식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상호의존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 가운데 지식이 창조-공유되는 역동적인 흐름이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지식(knowledge)과 경영(management)의 합작품, 즉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은 김건모 노래 중에 잘못된 만남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식은 존 실리 브라운에 따르면 정보와는 다르게 끈적끈적하고(sticky), 눈에 보이지 않으며(intangible), 어떤 통제수단이나 관리를 해도 밖으로 계속 새어나갈(leaky) 수밖에 없어서 관리나 통제가 불가능하다. 지식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과 분리독립시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빛의 속도로 공유할 수 없다. 엄마의 김치 담그는 노하우를 매뉴얼로 만들어 딸이 시집갈 때 선물로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딸은 엄마가 선물로 준 매뉴얼대로 김치를 담가보았지만 엄마가 담근 김치맛과 자신이 담근 김치맛은 여전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 맛의 차이가 바로 손맛이다. 엄마의 김치 담그는 비밀 노하우, 손맛은 지식관리 시스템에 저장했다가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빛의 속도로 공유할 수 없다.


지식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의 몸에 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몸을 벗어나 분리되는 순간 지식은 정보로 전락한다. 지식을 하나의 물건이나 객체처럼 지식소유자로부터 분리시켜 지식관리 시스템에 저장해 놓은 다음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지식을, 적기에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려는 서구의 지식경영 발상 자체가 지식을 왜곡하는 잘 못된 접근논리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지식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 직접 접촉을 통해 그리고 지식이 창조되는 맥락이나 문화를 기반으로 지식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이해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 환경이나 도구와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창조되고 공유되며 부단히 움직이는 흐름(flow)이다. 물이 흐르지 못하고 한 군데 오래 저장되어 있으면 썩듯이 지식도 흐르지 않고 지식댐을 건설해서 거기에 가두어 놓으면 지식의 유효기간이 지나 부패되거나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흐름을 멈추는 순간 지식도 정체되어 정체성을 잃는다. 지식의 정체성은 정체되지 않고 정중동 가운데에서 부단히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환경 사이를 흐르며 일일신 우일신을 거듭해야 한다.



지식은 생태학과 만나야 생생하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흐르는 물을 땜을 막아 홍수조절하겠다는 발상은 결국 자연적인 물의 흐름을 가로막는 자연파괴적 행위인 것처럼 조직 내에 역동적으로 흐르는 지식을 지식댐과 같은 지식관리 시스템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쓰겠다는 발상 역시 지식의 본질적 속성과 핵심적인 원리를 오해하고 처방된 잘못된 경영혁신 전략이다. 지식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 몸과 분리시켜 공유할 수 없어서 언어화시켜 문서로 정리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직접 가르칠 수 없다. 때문에 기존 지식경영과 전혀 다른 접근논리로 지식을 창조하고 공유하며 활용하는 대안적인 접근이 필요했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길이 바로 내가 추구하고 지향하려는 ‘즐거운 학습’을 통해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고 공유해서 ‘보람찬 성과와 성취’를 나누는 ‘행복한 일터’를 조성하고 설계하는 길이었다. 생태학적 접근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즐거운 학습’을 통해 창조되고 공유되는 ‘건강한 지식’이 ‘보람찬 성취감’을 맛보는 일의 원동력이며, 서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행복한 일터’가 바로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지식생태계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1990년대 초반에 만약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다른 사람에게 짧지만 기억에 남게 소개를 한 다면 유영만의 이미지를 어떤 메시지로 각인시킬까를 부단히 절치부심하다 만난 계기가 바로 지식경영에 대한 대안논리다. 대안적 지식경영에 대한 접근논리를 구상하기 시작한 전환점이 지식생태계를 우연히 떠올리면서 시작된 휴먼 브랜드의 출발점이었다. 지식은 경영학보다 생태학과 우발적으로 만나면 지식의 본래적 속성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이 생겼다. 지식은 경영학을 만나면 자본 증식의 수단으로 전락하지만 생태학을 만나면 어제와 다른 지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생태계의 보고(寶庫)가 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공동체도 숲처럼 지식숲을 조성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면 생태계처럼 자기 조직적인 힘으로 선순환되면서 유지되고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지속가능하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아름다운 지식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명함의 이름 앞에 지식생태학자를 새겨 넣고 세상에 지식생태학자의 이미지를 다양한 SNS를 통해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쉬지 않고 천천히 알리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파괴하면 생계도 걱정된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는 김종삼 시인의 어부에 나오는 시구절이 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지만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답을 찾아보고 때로는 갓길이나 샛길로 빠졌다가 다시 이전보다 더 멋진 길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면서 여전히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향하는 탐구욕망은 여전히 식지 않는다. 살아온 오래된 날에서 시행착오 끝에 담긴 미스터리의 세계를 파고들기도 하고 여전히 마스터리에 이르는 길은 모르지만 살아갈 날의 우발적 마주침이 던져주는 삶의 지혜를 등불 삼아 언제나 현실적 안락함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낯설지만 모호하며 어렵게 다가오지만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개발하려는 오만한 자연파괴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자연을 위대한 스승으로 모시고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생태계에서 배우는 지식생태학적 사유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식을 바라보는 대안적인 관점을 자연 생태계, 특히 숲에서 얻은 다음 생태계에서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을 연구하는 생태학 관련 책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자연의 생명체 중에서 화초보다 잡초가 생명력이 길은 노하우, 인삼보다 산삼이 비싸고 효능이 탁월한 까닭, 콩나물과 콩나무는 한 글자 차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는 방식, 목재보다 분재가 대접받으며 오래 사는 비결, 하우스 배추보다 노지 배추가 김치 맛이 더 좋은 이유 등을 파고들다 보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의 생존과 성장원리에서 생태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배울 수 있으며, 여기서 얻은 지식에 대한 생태학적 관점과 접근논리를 교육을 비롯, 사회전반의 흐름과 추세를 이해하는 사상적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 어설프지만 그 첫 결과물이 2005년도에 ‘생태학적 교육공학의 정초마련을 위한 시론적 탐색’이라는 부제가 붙은 「지식생태학과 교육공학」이라는 논문으로 교육공학 연구지에 처음으로 게재했고, 2006년도에 《지식생태학》이라는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그 후 후속적인 연구와 개발을 통해 박사 제자들과 공동으로 ‘생태학, 죽은 지식을 깨우다’는 부제가 붙은 《지식생태학》 책을 2018년에 출간했다. 2023년에는 “생태계를 파괴하면 생계도 걱정된다”는 슬로건을 필두로 ‘지식생태학회’를 만들어 학자들만의 전문용어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고등학생은 물론 현장의 다양한 실천가들이 함께하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학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휴먼 브랜딩으로서의 어른의 전달력은 대체불가능한 휴먼 파워다


지식은 박제된 진공관이나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창고 안에서 고립된 한 개인의 인위적이고 독립적인 노력으로 요리되는 푸드코트의 음식이 아니다. 지식은 거칠고 소란스러운 들판에서 비바람과 천둥번개도 맞고 혹한의 추위와 맨몸으로 싸우며 자연과 환경과 사람과 도구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경험적 깨달음을 사회역사적 문제의식과 문화적 맥락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번역한 사회적 관계의 합작품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사유로 축적한 야생성이 생존가능성을 가늠하는 자생성을 결정하며 그 사람이 어떤 지식으로 무장한 정체성을 지니는지, 나아가 미래 가능성을 결정하는 텃밭이다. 야성이 없는 지성은 지루하고 지성이 없는 야성은 야만일 수 있는 까닭이다. 《브리꼴레르》,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공부는 망치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2분의 1》등 삶에 대한 생태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제 목’을 걸고 ‘제목’을 정하면서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책을 써오다 100번째 책, 《코나투스》를 출간했다. 《인생이 시답지 않아서》, 《모두 인공지능 백신 맞았는데 아무도 똑똑해지지 않았다》는 책으로 꾸준히 그리고 여전히 저술작업과 함께 대중강연, 방송과 유튜브에 출연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지식생태학자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30여 년 전에 이름 앞에 지식생태학자라는 휴먼 브랜딩을 시작, 변함없이 한 길을 걸으며 어제보다 나아지기 위해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여전히 지식생태학자로서의 초심을 유지하며 한결같이 걸어가고 있다. 그 길 뒤로 역사적 족적과 사회적 관계의 그림자가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어 한 줄기 빛과 희망으로 빛나고 있다. 오늘도 멈추지 않고 어제와 다른 도전을 욕망하며 낯선 세계로 몸을 던진다. 날뛰는 우연과 만나는 깨우침의 향연에 넋을 잃고 전율하는 감동을 받는다. 오늘 배운 의미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다름과 차이를 반복하고 물극필반의 반전을 꿈꾸며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겪어낸 경험적 흔적과 얼룩을 어제와 다른 언어로 벼리고 벼리는 가운데 끊임없이 자아를 재서술하고 재창조하는 지식생태학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틀에 박힌 언어 사용방식에서 과감히 탈피, 어제와 다른 은유적 사유로 익숙한 세계에서도 낯선 사유를 잉태하기 위해 우연의 바다에 몸을 던질 것이다. 지식생태학자라는 브랜드 이름은 그대로 있어도 어제와 다른 지식생태학자로 거듭 변신을 거듭할 것이다. 브랜드 이름은 동일해도 어제와 다른 마주침의 주름으로 다른 의미의 주름을 축적해 나갈 것이다.



어른의 전달력은 전달기법이나 방법을 습득, 주어진 메시지를 명쾌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아니다. 어른의 전달력은 삶이 곧 메시지임을 몸으로 보여주며 자기 다운 정체성을 증명하는 휴먼 브랜딩 과정에서 생기는 대체 불가능한 자기만의 핵심역량이다. 핵심역량은 나무로 따지면 뿌리에 해당한다. 뿌리가 깊어야 세상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으며, 아래로 뻗은 뿌리의 깊이만큼 성장할 수 있는 높이가 생긴다. 휴먼 브랜딩으로서의 어른의 전달력은 1-2년 사이에 전달 기술 향상을 위한 교육을 받는다고 생기는 변화능력이 아니다. 휴먼 브랜딩으로서의 어른의 전달력은 어제와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자기다움을 증명하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생기는 나력(裸力, Naked Strength)이다. 나력은 겨울 나목이 혹한의 추위를 견뎌내고 새봄의 희망을 싹 틔우듯이 자기다움이라는 본질적 정체성으로 구축된 대체불가능한 휴먼 파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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