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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 했던 삶,
오색찬란하게 빛나다

개념과 체험이 마주치면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탄생한다:

개념 변경으로 다시 태어나는 10가지 성장 체험 이야기(2부) 


3부 오리무중 했던 삶오색찬란하게 빛나다     

성장 체험 6: 체험 없는 개념은 관념이다     



많은 사람 덕분에 특히 스승의 은혜 덕분에 유학생활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는 내가 이제부터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된다는 공식 인증서다. 지도교수님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세심한 지도 덕분에 큰 탈 없이 박사과정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공부가 좋아서 태평양을 건너갔지만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경제적 여건상 평일에는 1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와서 5시까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야말로 주경야독하는 공부를 했다. 해야 된다는 의무감보다 하고 싶다는 욕망이 내 공부의 길을 안내해주었다. 힘들고 지친 몸이었지만 책을 잡으면 다시 집중과 몰입이 되면서 새벽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공부를 해서 취득한 박사학위를 끝으로 공부하는 삶은 하나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제 책상에서 치열한 논리를 정련하는 공부에서 현장에 몸으로 체득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다. 삼성 인력개발원에서 보낸 5년의 현장체험은 나에게 많은 실천적 지혜를 쌓을 수 있는 소중한 기반이자 원동력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가슴으로 느낄 수 없다는 사실도 그때 깨달은 값진 교훈이다. 책상에서 연구하는 경영학자는 많지만 경영자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를 선물할 수 있는 경영학자가 많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책상에서 교육학적 논리의 타당성을 따지는 강단 교육학자는 많지만 교육현장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실천적 안목과 혜안을 지닌 교육학자가 많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 물음의 단서는 바로 앎으로 삶을 평가하는 학자가 아니라 삶으로 앎을 만들어가는 실천가들에게서 얻을 수 있다.     



5년간 현장 체험한 삼성 인력개발원은 이론과 실천의 개념적 차이점이 관념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인생 학교였다. 책상에서 배운 개념이 현장 체험을 만나지 못했을 경우 그 개념은 관념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은 겉으로 말한 요구대로 행동하지 않고 말하지 않은 욕망을 추구하는지, 책에서는 계획이나 목표를 수립하고 방법과 수단을 정하라고 하지만 왜 현장에서 수단과 방법이 먼저 결정되는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면서 모두가 원하는 합의된 대안이 나와야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은 언제나 정치적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지를 오로지 현장에서만 몸으로 배울 수 있었다. 한 분야의 전문가일수록 논리적으로 분석해보기 전에 문제 상황을 돌아보면서 직감적으로 깨닫는 지혜가 풍부하다. 그런 지혜는 책상에서 공부해서 생긴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몸으로 체험해본 결과가 축적되어서 생긴 안목이자 혜안이다. 책상에서 배운 수많은 개념도 체험을 통과하면서 재정의되거나 재해석된다. 개념이 체험을 만나지 않거나 체험이 개념으로 정리되지 않으면 둘 다 문제가 생긴다. 개념 없는 체험은 무모하거나 위험하고, 체험 없는 개념은 지루하거나 관념이다. 그동안 체험 없이 다양한 학자들의 개념을 배우면서 그 개념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학자 개인의 문제의식은 물론 그 개념이 담고 있는 시대 역사적 사연과 배경을 배웠다. 하지만 그런 개념도 내가 직접 체험하면서 나의 문제 상황에서 나의 관점으로 재해석해보지 않는다면 나의 신념이 없는 관념으로 전락할 수 있다.    

  

왜 집을 그릴 때 집을 짓는 순서대로 안 그리고 지붕부터 먼저 그리고 나중에 집의 밑 부분을 나중에 그리는지를 깨달았을 때 얻은 교훈은 충격적이다. 이론은 실천과 다르다고 하면서 실천 현장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론의 우위를 주장하는 관념적 지식인의 논리가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생각을 표현하는 개념도 관념의 산물이라기보다 체험의 산물이다. 많은 학자들은 실제로 체험해보니 기존 개념으로 설명이 안 되는 무수한 현상을 목격하고 고민에 빠진다. 인간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딜레마 상황에서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선택을 고민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가정했던 고전 경제학자의 가정이 갖는 한계는 행동경제학자에 의해서 비판받고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 것보다 다이어트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올라가기 편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고전 경제학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수많은 비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목격한 행동경제학 가자 고심 끝에 만들어낸 낸 개념이 바로 넛지(nudge)다. 아무리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해도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나 조건을 개선하지 않는 한 인간은 기대를 저버리고 순간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긴다. 넛지는 바로 비합리적인 인간에게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선택적 자극이다. 이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개념은 세상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한 사람이 기존 개념으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을 때 각종 변종이나 이질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묘안을 고심할 때 탄생된다.     


성장 체험 7: 전체를 다 아는 전문가는 없다     

 

“전문가란 뭔가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지만 그 밖에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A specialist who knows everything about something and nothing about anything else).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의 말이다. 그만큼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깊이 알지만 자기 분야를 넘어서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사람, 즉 전문적으로 문외한인 사람이다. 전문가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은 한 분야를 깊이 경험하면서 축적한 노하우가 많은 사람을 지칭한다. 하지만 깊이 있는 전문가는 기피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전문성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사회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지혜를 모아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우리 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면서 전문가 한 사람의 전문성보다 전문가 간 협업과 융합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교육은 협업과 융합을 강조하면서도 각자가 지니고 있는 전문성의 깊이에 빠진 나머지 다른 전문성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어려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차선책은 자세를 낮추고 나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겸손함을 갖고 모든 사람과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소통이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 분야가 다른 분야에게 일방적으로 다가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통을 부르는 지름길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문가 개념을 재개념화 시키지 않으면 전문적으로 문외한인 전문가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이제 전문가는 자기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성을 갖춤은 물론 자신이 전공하지 않는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기꺼이 배우려는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학에서는 전문 분야별 전공을 세분화시켜 놓고 자기들만의 리그를 벌이며 전공 간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면 파리 학과에 입학하면 파리학 개론부터 파리 앞다리론, 파리 뒷다리론, 파리 몸통론을 하나씩 다 배우고 대학을 졸업하면 학사 학위를 수여한다. 학사는 “이제 모든 것을 알 것 같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들은 적은 있으나 설명할 수 없는 절름발이 지식인 상태로 졸업한다. 지적 호기심이 생기면 대학원에 입학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파리를 부위별로 나누어서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면 파리 학과 석사는 앞다리를 전공, 파리 앞다리 움직임이 파리 몸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석사논문을 쓰고 졸업하면 “이제 뭘 모르는지 알 것 같다”라고 한다. 참고로 앞다리 전공 석사에게는 뒷다리를 물어보면 아는 게 없다. 박사과정은 파리 앞다리 세부 전공, 예를 들면 파이 앞다리 발톱을 전공, 파리 앞다리 발톱 성분이 파리 앞다리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박사논문을 졸업한다. 박사는 “나만 모르는지 알았더니 남들도 다 모르는 군”이라고 말한다.      


드디어 파리학 전공 박사는 파리 학과 교수가 되면서 파리 앞다리 발톱의 세부 전공을 선택, 세계적인 논문을 발표한다. 파리 앞다리 발톱의 때 성분이 파리 앞다리 발톱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논문을 쓴다. 이제 대학교수는 어차피 모르는 것 끝까지 우겨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대학교수로서의 우월적 지위로 세분화된 전문성의 깊이를 심화시켜 나간다. 문제는 파리 전문가는 없어졌고 파리 부위별 전문가는 대량 양산되고 있지만 전문가 간 소통이 안 되는 심각한 불통 문제가 격화되고 있다. 전문가일수록 자주 걸리는 병이 바로 ‘지식의 저주’다. 지식의 저주란 전문가가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뭔가를 설명할 때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만 비전문가는 전문가의 전문적인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비전문가가 전문가의 논리적 설명을 알아듣지 못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다.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해야 되지만 전문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You must continue to gain expertise, but avoid thinking like an expert). 미국의 연설가, 데니스 웨이틀리(Denis Waitley)의 말이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자기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성을 쌓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지만 전문가처럼 생각하면서 자기 분야의 관점으로 다른 분야를 바라보려는 편파적인 시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누가 전문가인가와 전문성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시대 변화에 걸맞게 재해석하고 재정의하려는 노력이 따를 때 전문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판 우물에 매몰되는 좌정관천형 전문가로 전락할 수 있다.     


성장 체험 8: 선두권에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앞만 보고 달리다 내 인생에도 큰 멈춤이 다가왔다. 2007년 4월 11일 밤 12시 50분, 분당 수서 고속도로에서 잠깐 졸다가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고 차는 전복되었다. 나는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411 사태라고 개념화했다. 갈비뼈가 좌우 거의 부러지고 팔뼈에도 금이 갔으며 목은 좌우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사고다. 다행히 119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져 나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의식이 회복된 후에 내가 큰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실려 온 것으로 알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몸으로 깨달은 점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소중하다. 사고가 내 사고를 바꿔준 역사적인 모멘텀이 아닐 수 없다. 갈비뼈가 가장 많이 손상되어서 주치의사는 갈비뼈 전공의사인 흉부외과 의사로 선정되었다. 그분은 매일 갈비뼈만 최선을 다해서 보고 가신다. 팔이 끊어질 정도로 아파서 팔 좀 봐 달라고 했더니 그 뼈는 자신이 전공하는 뼈의 경계를 넘었다는 것이다. 팔뼈는 정형외과의사 소관이었다. 마침내 정형외과 의사가 와서 팔뼈만 최선을 다해서 보고 간다. 그런데 목뼈가 너무 많아서 목뼈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정형외과 의사에게 물어봤더니 그 부위는 신경 외사가 전공한 뼈라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세 분의 의사가 오셔서 각자 자신이 전공한 뼈만 최선을 다해서 보고 간다. 하지만 내 몸은 갈비뼈와 목뼈, 목뼈와 팔뼈 사이가 아프다. 하지만 뼈와 뼈 사이를 전공하는 사이 전문 의사는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전문가는 사이 전문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만든 세계 최초의 개념, ‘사이 전문가(Homo Differance)’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심각한 사고가 '사이 전문가'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 것이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존중하지 않거나 사이와 사이가 막혀 소통되지 않을 때 사이는 좋은 사이가 되지 못하고 그 사이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이 없는 차이는 차별이고, 차이 없는 사이는 사이비다.      



병원에 입원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정신을 잃었던 나는 통증이 밀려오면서 의식을 회복했다. 의식이 돌아온 후 내가 던진 질문 두 가지, “여기가 어디지?” 그리고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질문을 나는 큰 사고가 난 후에 나도 모르게 던진 것이다. 맞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살아간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을 왜 하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물어보지 않았다. 두 번째 질문, “내가 여기 왜 와 있지?”라는 질문은 나의 정체성을 물어보는 또 다른 질문이다. 내가 지금 여기 와 있는 이유를 어느 순간부터 잊어먹고 매일 주어지는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정신이 나갔다 돌아오면 정신 차리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 인간은 그때부터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개미가 지나가는 지네에게 물어봤다. “지네야, 너는 앞으로 걸어갈 때 수많은 다리 중에서 어떤 발을 첫발로 내딛느냐?”라고 물어보는 순간, 지네는 멈칫하면서 잠시 앞으로 걸어가던 동작을 멈추고 생각해보았다. 사실 지네는 개미의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난생처음 질문을 던지거나 받을 때 비로소 잠심 멈춰 서서 생각해본다. 질문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드는 자극제이자 각성제다. 질문은 호기심이 생겨서 물어보는 것도 있지만 틀에 박힌 상태고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원동력인 셈이다. 질문을 받으면 그동안 습관적으로 생각했던 고정관념이나 통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411 사태로부터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질문 없이 달리는 직선의 질주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사실, 직선으로 달리는 고속의 질주에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속도가 빨라지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좁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죽음의 일보 직전까지 갔던 심각한 교통사고(事故)였지만 사고(思考) 패러다임을 바꾸는 소중한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2014년도에는 제주도 100Km 마라톤에 출전한 적이 있다. 첫날은 한라산 중턱을 오르내리고 둘째 날에는 해변도로 30Km,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오름 언덕 4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이었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3일 내내 1등으로 달린 일본 선수였다. 그는 내가 보기에 거의 기계처럼 달렸다.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그 선수를 보면서 목표 달성을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속도가 빨라지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좁아진다. 나아서 속도가 빨라지면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행복감, 즐 삶의 밀도는 느낄 여유가 없어진다.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일까? 아마 목적지에 도달하면 자신이 기대하는 모든 행복이 놓여 있을 것이라는 가정 때문이 아닐까. 행복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사고 체험이었다. 행복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목적지에 있는 것일까?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서 느끼는 수많은 삶의 밀도감을 무시하고 목적 지데 도달한들 거기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411 사태는 세상이 말하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행복으로 재개념화 시킬 수 있는 소중한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성장 체험 9: 정상(頂上)에 오른 사람은 정상(正常)이 아니다     


우리 주변을 관찰해보자. 남들이 생각하는 성공에 이른 사람은 정상적인 생각을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상(頂上)에 간 사람은 하나같이 정상(正常)이 아니다. 정상분포 곡선이라는 개념이 있다. 학문적인 논의를 떠나 정상분포 곡선을 쉽게 설명하면 정상적인 사람은 양쪽 극단에 속하지 않고 중앙을 기점으로 양쪽으로 적당히 분포된 범위 내에 속한다는 의미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비정상은 정상분포 곡선에 분포되어 있지 않고 양쪽 극단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정상적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그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비정상이며 정상적인 사람들의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몰상식한 사람이다. 나는 그동안 비정상적인 행보를 반복하면서 정상적인 대학교수의 이미지를 벗어나는  도전을 감행해왔다. 책상 지식인, 관념적 지식인의 굴레를 벗어나 밑바닥 체험부터 정상적인 사람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극한의 한계에 도전하는 체험을 통해 깨달은 메시지를 책과 강연으로 전달해왔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깨달은 사실만이 진실이고 몸으로 깨달은 진실만이 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내 몸으로 겪은 도전적 체험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설명과 설득의 개념적 차이점을 깨달은 것도 도전적 체험을 통해서다. 설명은 논리와 어울리고 설득은 감성과 어울린다. 의미를 설명하면 지루해하지만 의미로 설득하면 심장에 꽂혀 의미심장해진다. 남들이 흔히 쓰는 개념에 피와 땀과 눈물이 합작해서 탄생한 나의 신념을 추가하면 똑같은 단어라고 해도 자신감 있게 나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생긴다.      



2012년도에 사하라 사막에서 열리는 6박 7일간의 250Km 마라톤에 도전했다가 3일 차 120Km 지점에서 레이스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사막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아파트 34층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분당에서 한양대까지 왕복 56Km를 주말에 달리는 다양한 연습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몸이 한계를 직감하고 정신에게 말했다. 레이스를 포기하라고. 한계는 책상에서 머리로 알 수 없고 오로지 몸으로 한계에 도전해봐야 알 수 있다는 값진 깨달음을 얻는 소중한 도전적 체험이었다. 레이스를 포기하기가 처음에는 정말 망설여졌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극한 상황에서 레이스를 계속할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절박한 깨달음이 온몸을 휩싸고 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포기하면서 남긴 명언이 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를 절대로 쓰지 마라.” 우리는 이제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금언처럼 여기고 살았지만 언제 포기해야 되는지를 몸으로 깨달았다. 만약 내가 한계상황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믿고 계속 도전했다면 나는 죽을 수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인데 잘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인데 잘할 수 없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일을 시도해야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한계라는 개념을 새롭게 인식한 멋진 도전이었다.   

  


2015년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 정상 등정을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밤 11시에 4700m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드 라이트 불빛에 의지한 채 오로지 앞사람 뒷모습을 따라 정상을 향해 한 발 한발 내딛는 여정은 언제 도착하지 모르는 불확실한 탐험 여정이자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정상도전이다. 캄캄한 밤에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정상이 보이는 대낮에 올라가면 올라가기도 전에 포기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밤중에 정상을 향해 떠나는 이유는 오로지 앞사람 등만 바라보고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에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믿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은 충동이 중간에 들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는 개념이 실제 상황에서는 잘 못된 고사성어임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는 위기상황에서 어떤 대책도 속수무책인 경우를 진퇴양난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퇴양난의 위기는 없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면 옆으로 가면 된다. 실제로 진퇴양난의 위기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가든지 뒤로 가든지, 어니면 옆으로 가든지 빠른 시간 내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진퇴양난이라는 개념도 체험적 각성 후에 나만의 방식으로 다르게 의미를 부여했다. 세상의 모든 개념이 구체적인 체험적 상황에서 재해석될 때 비로소 내 생각을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개념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성장 체험 10: 지금까지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다음에 나올 책     


나는 지금까지 번역서 포함해서 약 8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공고를 졸업하고 우연히 읽었던 고시 체험생 수기집을 읽고 고시공부를 해서 출세해보겠다는 불온한 꿈을 품은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꿈은 잘 못된 꿈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덕분에 다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했다. 책을 열심히 쓰는 이유는 책을 통해서 내가 걸어가는 길을 알았던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다.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이나 지침서로 책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 책 쓰기는 고민하고 있는 화두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생각정리의 과정이자 인식 지평과 깊이를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각성의 과정이다. 책을 쓰기 전에는 몰랐지만 계속 써가면서 오리무중에 빠졌던 복잡하고 애매한 생각도 분명하게 정리되는 즐거움이야말로 책 쓰기의 부산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혜택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나의 체험적 깨달음으로 생긴 화두가 뿌리를 내리고 그동안 고뇌했던 생각을 정리해서 줄기를 만든 다음 다양한 생각이 버무려지면서 가지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책 쓰기는 책을 쓰기 전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쓸지를 사전에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정에서 분투노력하는 애쓰기다. 책 쓰기는 큰 화두를 잡은 다음 이런저런 자료를 참고하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쏟아 놓은 다음 시간을 갖고 수정하면서 완성해나가는 영원한 미완성이다. 일단 쓰기 시작해야 무엇을 쓸 것인지가 떠오른다. 어떤 책을 쓸 것인지를 사전에 완벽하게 준비해서 쓴다고 생각하면 완벽하게 책을 쓸 수 없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책 쓰기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나의 체험적 개념의 산물이다.     



책 쓰기는 100% 자기 아이디어로 쓸 수 없다. 참조 없이 창조 없다. 모든 책 쓰기는 이전 작품을 참조해서 이루어지는 창조 과정이다. "훌륭한 예술가는 가까운 곳에서 베끼고(copy), 위대한 예술가는 멀리서 훔친다(steal)." 피카소의 말이다. 훌륭한 예술가와 위대한 예술가의 차이가 바로 가까운 곳에서 베끼는지, 멀리서 훔쳐 오는지의 차이라고 한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자신이 아는 것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생각의 근거나 사례를 가까운 곳에서 밖에 구하지 못하는 훌륭함과 폭넓은 공부를 통해 쌓은 해박한 안목과 식견 덕분에 참조할 자료가 방대한 위대함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오한 혜안의 차이가 있다. 피카소의 말은 다시 한번 표절해서 석박사의 차이점을 표현해도 재미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석사는 가까운 곳에서 베끼고(copy), 박사는 멀리서 훔친다(steal). 훌륭한 예술가와 위대한 예술가의 개념적 차이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누구나 공감하는 쉬운 말로 표현하는 지혜는 아무나 이를 수 없는 경지다. 같은 맥락에서 “독창성이란 들키지 않은 표절”이라는 윌리엄 랠프 윙의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면 무엇이 오리지널이고 무엇이 모방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모든 예술작품은 이전 작품의 표절이다. 다만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표절했을 뿐이다. "세상이 어떤 작품을 오리지널이라고 할 때, 그 십중팔구는 그 작품이 참조한 대상이나 최초의 출처를 모르기 때문이다." 소설가 조너선 레섬의 말이다. 니체도 비슷한 맥락에서 “창작이란 말을 사람들은 쉽게 입에 올리지만, 내가 위대한 선인이나 동시대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얻고 있는지를 안다면 남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훌륭한 시인은 훔쳐온 것들을 결합해서 완전히 독창적인 느낌을 창조해내고 애초에 그가 어떤 것을 훔쳐왔는지도 모르게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시인 T. S. 엘리엇의 말이다.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되 훔쳐온 아이디어를 남다른 방식으로 결합하면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결국 창조는 다양한 체험과 독서를 통해 체득한 깨달음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에게 책 쓰기는 책을 통해서 습득한 다양한 개념으로 나의 체험적 깨달음을 녹여내는 고뇌의 과정이다. 책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몸으로 체득한 체험적 깨달음을 적확한 개념을 찾아 녹여내는 사고 과정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쓰면서 동일한 개념도 저마다 다른 의미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점에서 책 쓰기는 단순히 글쓰기 결과를 조합하거나 통합하는 과정이 아니라 한 가지 주제나 화두에 대해서 내 생각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의 비슷하거나 다른 생각을 논리적으로 편집하는 과정이다. 쓰지 않고 어떤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생각은 고민의 방향을 잃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빠져서 원론과 본질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생각을 거듭할 경우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지만 생각이 발전해서 새로운 창조로 연결되지 않는다. 책 쓰기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끊임없이 드나드는 생각의 꼬리를 잘라서 우선 글을 쓰면서 생각의 실체와 본질을 물고 늘어진다. 쓰지 않고 생각할 때와 쓰면서 생각할 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생각만 반복하는 경우보다 생각을 글로 옮겨 가면서 복잡한 생각을 한 가지 주제로 꿰뚫는 일이관지(一以貫之)형 글쓰기가 결국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면서 나만의 개념과 문제의식으로 녹여낸 책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책 쓰기는 발상이 아니라 연상이다. 새로운 생각을 토대로 글을 쓰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의 단서를 엮어가면서 글을 쓰다 보면 책이 완성된다. 책 쓰기에 앞서 책 쓸 재료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가 책 쓰기의 성패를 좌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언어 공동체에서 습득한 수많은 개념은 당대의 사람들이 고민했던 생각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시대적 의미가 더 이상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혁신적 생각을 담아낼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 기존 개념을 재개념화 시키거나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려는 노력을 전개한다. 교과서나 사전 또는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익힌 개념의 의미로는 내가 직면하고 있는 체험적 도전과제를 적확하게 포착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할 때 새로운 개념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기존 개념으로는 문제의 심각성이나 찾고 있는 묘안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낼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싹트는 순간이 바로 새로운 개념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사건과 사고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데 사용된 개념은 기존 개념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본 경우도 있고 없었던 개념을 창조한 경우도 있다. 한 사람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계기는 이전과 다른 체험 속에서 깨닫는 교훈을 색다른 개념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결국 한 사람의 성장과 발전은 체험적 각성의 과정을 재정의된 또는 창조된 개념으로 재해석하면서 자기 특유의 지혜로 축적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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