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적힌 단어, 고향. 단어를 한참 바라보다가 네이버 사전을 켰다. 고향의 뜻을 몰라서라기보다는 그 단어에서 나오는 감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전에서는 맨 하단의 정의를 유심히 본다. 3번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이 정의를 보곤 생각한다. 고향은 내게 장소가 아닌 사람이구나.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사람. 승호는 나에게 딱 그런 사람이다.
고향은 사람을 위해 딱히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한결같이 자리를 지킨다. 나는 그 자리에서 뛰고, 달리고, 웃고, 울며 혼자서 기억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토대로 살며 고향이 그대로일 것이라 믿는다. 때로는 변화하지만 여전히 고향은 풋풋하고 순수한 나를 기억하며 몇 년 만에 인사해도 살갑게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내 고향 승호는 그렇게 내가 품 안에 가만히 있어도, 더 많은 곳을 보고자 뛰어나가도 그 자리에 묵묵히 있는다.
그렇게 승호는 항상 내 발밑에 있다. 곡예를 하듯 위태로운 나를 머리로, 어깨로, 손으로 밑에서 받쳐준다. 사실 받쳐주는 승호도 단단한 돌산은 아니다. 그도 아슬아슬 물기 많은 흙산이다. 그럼에도 돌산처럼 보이길 원하며 뿌리를 내리라고 말한다. 그런 승호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리면 눈물이 쏟아져 버릴 듯 눈과 코가 새빨개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모른 척 나를 받쳐주는 네가 고맙다고 말한다.
우리는 처음 만난 날 10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다. 연결고리 하나 없는 낯선 이의 눈을 오랜 시간 마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내게 아직까지도 신기하다. 승호는 나에게 명상을 좋아한다고, 나는 승호에게 집 앞 산책을 좋아한다고, 우리는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거짓말을 조금씩 보탰다. 그 거짓말들조차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향이 얼마나 비슷한지 알려주었기에 속아주며 같이 걸었다.
우리는 그 당시 불안한 사람들이었다. 승호도 나도 수험생이었기에 정신도 상태도 붕 떠 있었다. 수험생활을 막 시작한 승호와는 달리 나는 수험생활을 한 지 6개월에 접어들었으며, 되고자 하는 바가 명확했던 승호와 달리 나는 좋은 것이 없어 선택한 길이었다. 수험생이라고 말하지만 목적은 잃은 지 오래, 같은 생활의 반복, 반복, 반복. 그 반복 속에서 침대일체가 됐을 때 승호는 내 침대 속 상상을 실현하게 해 줬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 자신에 대해 더 알 수 있다는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승호는 ‘나’를 구체화해 줬다. 말 그대로 구체화였다. 어린 시절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듯 승호는 내가 원하는 공간, 음식, 음악 등 다양한 경험을 함께해 주며 내 취향을, 행복 조건을, 욕심을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승호 덕분에 나는 고향 품을 벗어나 욕심을 향해 상경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험생활이 더 오래된 사람은 나이기에, 더 불안한 사람도 나일 거라고 속단했다. 어쩌면 승호는 당시 나보다 더 불안했지만 안정을 찾아가는 내 모습에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승호는 위태로운 사춘기 학생이 성인 되는 순간을 한자리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본인은 여전히 붕 떠 있음에도, 고향에서 땅을 딛고 나아가는 내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기뻐하며 응원해 주었다.
내 고향 승호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고향의 기억을 가지고 차근차근 꿈에 가까워지는 나는, 승호의 뒷모습을 자주 생각한다. 나에게 보여주지 않지만 위태롭고 쓸쓸한 뒷모습. 승호 덕분에 내 뒷모습은 활기차졌지만, 승호는 여전히 불안한 상태이다.
마음의 짐이 깊어지면 고향을 찾는 나와 달리 승호는 마음에 물이 차면 동굴을 찾아간다. “내 불안을 나누면 열심히 달려가는 네가 힘 빠질 거 같아서 그랬어.” 이 한마디에 마음이 더 쓰리다. 그가 얼마나 더 많은 날을, 더 깊은 동굴 속에서 티 내지 않고 웅크렸을지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승호의 고향은 동굴일지도 모른다. 내가 위태로울 때 승호를 찾아가듯 승호는 동굴 안을 찾아가 곡예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오래된 고향을 나로 만드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짐한다. 그 동굴에서 같이 울어 줄, 옆에서 바라봐 줄 한 마리의 박쥐가 되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