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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Jul 22. 2022

<나, 건축가 구마 겐고> 리뷰

샐러리맨에 대해

나, 건축가 구마 겐고 (안그라픽스)

가끔 건축에 관한 책을 읽습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IT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저에게는 건축가가 디자이너보다 더 대단해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을 고민하고, 인간의 삶에 더 지대한 영향을 주니까요. 그에 비하면 디자이너들은 세상을 고민하기보다는 작품의 완성도와 고객의 반응에 반응하는, 비교적 좁은 세계관을 가집니다. 큰 틀에서 보면 건축가도 디자이너에 포함되긴 하지만 물리적인 생활 공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분야 전문가들은 공리적이면서도 스케일이 큰 고민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건축가가 언제나 그럴싸한 멋진 고민만 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래도 작업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디자이너와는 달리 직접 현장을 다니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만나서 소통하는 점 때문에 건축가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책 내용 중에서 샐러리맨에 대한 내용이 여러차례 등장하는데 그 중 몇 개를 소개합니다. 저자는 샐러리맨을 무척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샐러리맨이라는 사람보다는 그런 정신을 싫어하는 것이겠지요. 저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무척 공감이 되었습니다.






한편 일본은 오너조차 샐러리맨 같습니다. 일본 기업은 오너라는 존재가 있으면서도 실제 결정 사항은 샐러리맨 구조에 의존하지 않으면, 오너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너처럼 행동하면 회사가 이상해지든지 본인이 쫓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건축, 역사에 남을 건축은 샐러리맨 시스템에서는 탄생하지 않습니다. 샐러리맨 구조란 위험을 피하는 시스템입니다. 오늘날에는 건축 세계도 점점 소송사회로 바뀌어서 어떻게 하면 소송을 회피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소송 회피야말로 샐러리맨 구조의 목적이 되어버린 겁니다. (중국의 오너문화, 일본의 샐러리맨문화, p.51)
제가 말하는 샐러리맨은 회사원 그 자체가 아닙니다. 어떤 조직 속에서 '무슨 일이 있어라도 위험을 짊어지지 않는다, 짊어지고 싶지 않다'는 태도에 물든 사람을 말합니다. 내 집을 짊어진 샐러리맨에게 대출상환계획이 뒤틀린다는 것은 곧 인생의 파멸과 이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 샐러리맨의 정신 상태가 만연하면 건축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도 위험 회피가 첫 번째가 됩니다. (더 외로운 샐러리맨, p.157)
개인의 확립은 앞으로 샐러리맨 사회가 무너진 뒤 일본인 모두가 나서야만 하는 큰 과제입니다. (진지하게 즐거움을 즐기다, p.319)






샐러리맨. 정식 영어는 아니고 일본에서 건너온 재플리쉬(일본판 콩클리쉬)입니다. 회사원이나 직장인, 또는 약간 비하하는 느낌으로 월급쟁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저자는 '샐러리맨 사회가 무너졌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런걸까요? 저자가 샐러리맨의 안일한 정신을 너무나 싫어하는 나머지 다소 성급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20세기의 공업사회와 샐러리맨 시대를 지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샐러리맨 그 다음은 무엇인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무척 중요해보입니다. 저자는 그 다음으로 '세상 속에서 즐겁게 일하는 개인의 확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조금 시간을 두고) 샐러리맨이 되었는데,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걸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샐러리맨의 시대였다면 그러하 고민은 하지 않았을겁니다. 저도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서 샐러리맨의 시대가 끝났다고 느꼈던 것일까요.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때문에 샐러리맨이 되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사회 초년에 회사에서 만났던 한 상사가 정말 좋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언은 그 후로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는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회사에서 정완님이 하는 모든 일에 정완님의 이름을 걸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해요'


그 상사의 조언 덕분에 저는 그 이후로 회사일을 하면서도 되도록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회사에 소속되어 회사 일을 하고있지만 나중에 언제라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살아남아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상사가 지적했던 것, 제가 피했으면 하는 것이 바로 구마 겐고가 혐오했던 샐러리맨 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직 뒤에 숨어서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있는 쉬운 일만 하려하지 말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그런 뜻이겠죠. 운이 좋게도 저는 그 상사의 뜻을 정확히 이해했고 언제나 가슴속에 새기며 현재까지 왔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샐러리맨 정신이 전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시대가 변하면서 헤게모니가 조직에서 개인으로 이동했고, 과거에 조직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했던만큼 앞으로는 개인을 강화시키는 방법을고민해봐야 합니다. 매달 봉급을 받는 샐러리맨도 아니고 집안이 부유하지 않아도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역량을 키우고, 생존을 넘어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강의를 하고있는 저에게도 많은 관심을 갖게 하는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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