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마트 같은곳에 구경하러가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제품이 있습니다. 엄청난 사이즈를 자랑하며 선명한 화질을 자랑하는 TV입니다. 엄청난 가격의 최첨단 TV를 그렇게 가까이서 볼수있는 기회이기때문에 반드시 가까이가서 우와.. 감탄사를 연달아 내지릅니다.
TV는 클수록 좋다.
냉장고는 클수록 좋다.
집은 클수록 좋다.
따지고보면 다 맞는말입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당연히 큰것이 작은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먹을수록, 생활수준이 점점 올라갈수록, 눈높이가 높아질수록 큰것에 끌립니다. 예전 어렸을때를 생각해보면 냉장고는 적당했고, 집은 아담했고, TV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26인치정도 했던것 같습니다. 제 CRT 모니터가 17인치였으니까 어림잡아 그정도일걸로 추정됩니다. 대학교를 다닐때 제 룸메이트가 19인치 LCD를 썼었는데 굉장히 넓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떨까요?
요즘은 컴퓨터용 모니터는 아담한게 24인치, TV는 40~50인치인데, 물론 사람들은 그 이상의 몰입감을 원합니다. 예전 직장동료는 아이가 둘 있는 유부남이었는데 "요즘(2020년)엔 70인치 정도는 되어야해요" 라고 말했고, 네 누이의 집에서도 저렴한 중국산 60인치 TV를 5년째 보고있고, 작년 지인의 신혼집에 놀러가서 70인치의 거대한 TV를 구경하고 왔습니다.
이렇게 가면 나중엔 어떻게될지 상상해봤습니다. 크기는 상대적이라서 70인치도 100인치 앞에서는 조금 작게 느껴지려나? 40인치도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적이 있었는데 그렇지않은것처럼?
오랜만에 어제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레디 플레이어 원'을 다시 봤습니다. 현실의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마치 현실처럼 살아간다는 미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은 낡고 허름한데, 메타버스 속 가상공간은 멋지고 화려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항상 더 나은것을 갈망하고, 그 나은것을 찾았다면 그것에 오래 머물길 바랍니다. 비록 '그것'이 진짜가 아닌 가상일지라도.
TV가 70인치에서 100인치가 되고, 그보다 더 커지면 애플 비전프로가 해낸것처럼 화면은 나를 중심으로 곡선으로 감싸게됩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커지면 완전한 메타버스 안으로 내가 들어가게 되겠죠. 비전프로에서 현실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었다면, 메타버스에 현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게됩니다. TV가 커질수록 현실공간, 현실인식은 점점 작아지고 나와 멀어지게 됩니다. 콘텐츠를 향한 더 나은 몰입감을 추구하는 욕망이 불러오는건 결국 '현실차단'인 셈입니다.
예전엔 커다란 TV는 부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가격이 많이 내렸고, 다양한 브랜드들이 많아져서 반드시 그렇지않습니다. 조금만 투자하면 평범한 사람들도 70인치에 가까운 TV를 거실에 둘 수 있습니다. 못가져본 물건에 대한 환상은 경제적인 합리성을 이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한풀이하듯 크고 좋은 물건들을 구입해서 사용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입니다.
작년 초에 플레이스테이션5를 구입해서 게임을 했던 경험을 브런치에 쓴 기록이 있습니다. 게임과 현실 저는 이때 완전한 몰입감을 만들기위해 게임기를 55인치 TV를 연결하고, 방의 불을 끄고, TV 가까이서 게임을 했던 경험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어땠냐고요? 저는 그 이후로 게임기를 바깥으로 가지고나와 이제는 밝은곳에서 작은 TV를 연결해서 게임을 가끔 합니다. 그러는편이 제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느꼈기때문입니다. 현재 연결된 TV는 대략 39인치정도 하는데, 몰입은 덜 되지만 게임을 다 하고나서 멍~ 해지는 경우는 확실히 없습니다.
만약 아이들의 게임환경을 걱정하신다면, 의외로 적당히 작은 사이즈를 생각해보세요. 요즘 시대, 요즘 세대와 어울리지 않아서 불평불만을 들을수 있겠지만요. 가상세계로의 몰입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현실세계를 재밌게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