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수평성, 강아지의 수직성

by 김정완

내가 대학생이었던 2000년대 초반엔 고양이를 집에서 기르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요즘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강아지는 부모와 함께 사는 집에서 키우고, 고양이는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키우는 편인데, 대학교 근처에서는 대부분 자취방에 살았기때문에 반려동물로서 강아지는 보기 힘들었고 오히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몇명 있었다. 그 중에서 호두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웠던 한 여자 후배가 있었다. 어떤 사정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잠깐동안 내 자취방에서 그 고양이를 맡아주기도 했다. 그 때가 고양이와 함께 지냈던 최초의 경험이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인상적이었다. 반려동물이라면 강아지밖에 몰랐던 난,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고양이가 내게는 신기한 존재로 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2009년에 강아지 한마리를 길에서 구조해 2021년까지 키웠다. 그동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주변에서 많이 늘어났다.


2010년대 초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라는 일본영화가 있었다. 보진 않았지만 개성있는 배우 이치카와 미카코가 출연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며>에서도 고양이는 꽤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확실히 일본은 우리와 다르게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구나,
그렇다면 우리도 곧 일본처럼 되겠는데?



한국과 일본의 성향은 굉장히 다르면서도 또 어떤 부분에서는 많이 닮았다. 1인가구가 많아진 것도 그랬고, 초고령사회가 된 것도 개인주의가 심해진 것도 그랬다. 예전에는 일본이 먼저가면 한국이 뒤따라가는 모양새였지만 요즘엔 반대의 상황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도 일본처럼 고양이를 더 좋아하게 될까? 그래도 한국에서는 명불허전, 여전히 강아지가 우세하진 않을까?


0Q.25816019.1.jpg 귀를 기울이면 (1995)


지금 나는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한옥숙소를 운영하며 이 곳에 찾아오는 길냥이들과 이웃집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이들이 사람과 관계맺는 방식이 다르다는것을 체감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최근 20년 사이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것과 연관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강아지는 주인에게 복종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강아지는 주인이 이리오라고 하면 오지만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않고 자기가 원할때만 온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안다. 개를 훈련시키는 강형욱 조련사는 이 점을 의아해하며 고양이 주인에게 "그럼 왜 키우세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주인'이 아니라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런점 때문에 고양이가 사람과 교감을 하지않는다던가, 심지어 무시한다던가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관계를 맺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는 자기들끼리도 그렇지만 사람과도 수직적인 관계를 맺는다. 나보다 주도권이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자세를 낮추고 복종의 길을 택한다. 예전부터 강아지를 키워온 사람들에게는 짐승이란 당연히 그런것이어야 했다. 내가 너를 먹여주고 돌봐주니 나에게 충성할 것. 그런 임무를 강아지는 잘 수행해냈고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집을 지키지도 않는데다 내게 재롱을 떨지도 않는 이런 짐승을 굳이 가축화 할 필요가 있었을까. 뒷집 아저씨는 강아지들을 키우고있는데 가끔 지나가는 말로 "짐승은 짐승이야"라고 한다. 강아지들을 예뻐하는 분이지만 그 말에는 아주 거대한 수직적 계급차이가 느껴진다. 고양이도 강아지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스스로 제자가 되어 스승을 섬기듯 주인을 대하는 강아지와는 달리 고양이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집이 같은방향인 친구처럼 사이가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깊어지길 원한다.




수평적인 사회 속 고양이


사람들끼리 수직적인 계급으로 나뉘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사회의 역사는 유구하다. 동양 뿐만 아니라 서양, 그리고 제 3세계의 인류도 마찬가지이고 식물을 제외한 동물들의 사회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인류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평화롭고 수평적인 세상임에 틀림없다. 한국 사회도 사람들끼리 수직적 관계를 맺던 과거의 방식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군대 문화도 그렇고, 대학교와 회사문화도 정말로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이 필요할 정도로 많이 바뀌고 있다.


그런 사회적, 심리적 변화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 듯 하다. 재미있는 연상이다. 그 대표적인 변화가 바로 수직에서 수평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공동체 감각인데, 설명을 더하자면 자기자신 바깥에 있는 세상과 수평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맺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내가 성인이 되었던 2000년부터 25년의 시간을 되짚어보면 분명히 세상은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빅데이터로 증명되고 전문가가 그렇게 말했다는게 아니라 순전히 나의 감각과 기억에서 꺼낸 결론이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내가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는데, 아직까지 큰 문제없이 이렇게 살아남은걸 보면 이런 사람마저 품어줄 수 있는 너그러운 사회가 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고양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최근 25년동안 한국인들은 그동안 수직적 관계맺기에 지쳐서 슬슬 수평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는 너무 귀엽고 만약 키우게된다면 정서적, 신체적으로 깊은 교감을 할수있음에 틀림없지만 절대복종을 약속하는 이 생명체를 돌봐주기에 내가 사는곳은 층간소음이 들리는 밀집된 공동주택이고 산책 코스는 부족하며 일과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너무 늦다. 이 점들은 현대 도시의 환경적인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수직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을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수평적인 관계맺기는 최소한의 리소스만 있으면 가능하다. 집 평수가 좁아도,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도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존재하며 서로 살아가면 되니까. 예전에는 이런 생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정 없고 건조하게 느껴졌다면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합리적이고 부담없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최근 25년 사이에 부쩍 많아진건 그런 영향이 있지않을까 하며 혼자서 생각해봤다. 고양이는 1만년 전부터 이모습 그대로 존재해왔다. 지금 한국사람들이 고양이를 보고 귀엽다며 어쩔줄 몰라하는 광경은 몇천년동안 적어도 이 한국땅에서는 거의 없었다. 시골에서 우리 부부와 가깝게 지내는 마을 어르신들, 이 마을에서 60년동안 살아오신 그분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 분들은 아직도 고양이를 귀엽고 예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보기에 고양이가 귀엽다며 난리를 치는 요즘 젊은사람들이 정말 신기할 것 같다. 고양이는 한결같이 늘 이런 모습이었을텐데, 어째서 요즘 사람들은 고양이를 귀엽다고 하는 것일까? 그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걸까? 감히 짐승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노인세대와 수평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세대가 가지는 감각적 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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