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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Oct 24. 2021

나의 두 번째 서울

휴식

못 봤던 친구들과의 만남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후 나는 다시 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시간을 놓쳤다는 생각에 초조해진 나는 영화를 위해 두 시간을 할애하는 것조차 불안해하며 강박적으로 나를 채찍질했고, 늘 그렇듯 욕심에 비해 현저히 낮은 체력 덕분에 또 병을 얻고야 말았다. 


조급함을 내려두고 마음을 편하게 가져보자 결심한 첫 일주일.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중간에 끊지 않고 봤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 정주행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영화에도, 드라마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이 주일째. 이 드라마 회차가 이렇게 많았던가. 지하철에서만 보고 나머지 시간엔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 아니 이런 생각도 그만.

삼 주째, 새벽 알람을 없앴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간 동안엔 눈이 떠지지 않으면 굳이 새벽에 카페인으로 각성하며 일어나는 것도 금지.

한 달이 되고, 드디어 머릿속이 비워졌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오늘과 내일의 변화가 없어도 조급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30분이라도 더 잠을 쪼개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하다 못해 영어공부라도 해야만 했던 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현재까지의 내 삶을 복기해 보면 이룬 것보다 실패가 더 많은데 말이다.

궁금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나를 쥐어짜며 살았던 걸까.

다시 일주일. 10년 동안 반복해서 들은 테이프처럼 늘어진 채 여전히 잠이 오면 자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는 시간들의 여백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았다.

지금까지 딱히 무언가를 거룩하게 이뤄낸 것도 없고 오히려 실패한 것들이 더 많은 삶을 살아왔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운 실패는 극히 드물다고. 그래서 이 셀 수 없이 많은 실패의 덩어리인 내가 부끄럽기는커녕 자랑스럽고 행복하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의 1/3을 살아오는 동안 내 삶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많이도 일어났고, 항상 이기진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싸워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이 길었던 휴식의 시간을 지나 다시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 결국 실패할 수 있음을 받아들일 것. 대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면 언제나 삶에서 승자는 될 수 없을지라도 패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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