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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Oct 24. 2021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1월부터 3월까지 야근 기간이라는 게 있는데, 이 야근 기간이 끝난 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평화의 기간이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바로 야근 기간에 돌입했던 터라 야근 기간 종료와 동시에 그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과의 약속이 몰려들었고, 약속이 있을 때마다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동네의 한 고깃집으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 날까지 나흘 동안이나 연달아 같은 고기집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자주 가면 질리지 않냐고?

전혀. 나는 그 후로도 약 반 년 정도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식당을 꾸준히 찾았고, 그런 내 모습이 나 스스로도 웃겨서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sns 스토리에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신기해하며 연락이 왔다. 


- 혹시 거기서 일해요?

- 이 정도면 정말 가야겠다.

- 안 지겹냐 등등.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야근이 끝나고 6개월이나 지난 시점인데, 여전히 나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그 고깃집을 찾아가고, 지금도 그곳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나는 좀 그런 편이다. 어떤 장소든, 드라마든, 책이든, 영화든 내가 좋았다면 몇 번이고 다시 보는 사람.

그래서 내가 그 책 좋아. 그 영화 좋아,라고 말을 한다면, 그건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다섯 번 이상은 본 작품이며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열 번, 스무 번은 더 볼 의향이 있다는 말과도 같다.

이렇게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좋았던 장소를 몇 번이고 다시 가는 이유는 뭘까.

생각건대 가장 큰 이유는 안정감일 것이다. 좋았던 기억을 고스란히 가져와서 실망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이 좋은 감정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검증된 것만이 줄 수 있는 안심.

물론 새로움이 주는 설렘도 좋지만 오랜 연인 관계나 친구, 가족에게서 느끼는 사랑처럼 의심할 여지없는 안정감 속에 마음을 누이고 싶을 때, 나는 이미 스무 번도 더 읽은 책이나 영화를 서랍 속에서 꺼낸다. 그리고 여지없이 같은 문장을 만나 감탄하고, 같은 장면을 보면서 펑펑 울지만,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 감정에 따라 평소에는 지나치던 문장이 마음에 더 닿기도 하고 다른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나는 그 책을, 영화를, 장소를 더욱 깊고 폭넓게 이해하게 되고 도타워진다.

이 말인즉슨 반대로 뒤집어서 보면, 내가 어떤 대상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선 자주 봐야 한다는 뜻이 될 터.

그래서 나는,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나 자신을 더욱 자주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이제야 조금씩 친해지고 있는 나를 더욱 좋아하기 위해서.

다양한 상황에 나를 둬 보기도 하고 여태 해보지 못한 일을 해봄으로써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들, 싫어하는 일들을 구체화하면서 나를 알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이 현재 내게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일상도 마찬가지다. 해가 뜨면 같은 길을 걸어 회사로 출근하고, 근무 후 약속이 없으면 집에 돌아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자는 것이 보통의 내 일상이지만, 나는 이 내 삶의 80%를 차지하는 일상을 사랑하기 위해 오늘 내가 지나가는 아파트의 꽃은 폈는지, 늘 지나는 길이 아닌 다른 길에서의 노을은 어떤 모습인지 보려고 길을 둘러 돌아가는 등 하루를 채우는 풍경들을 애써 면밀하게 살피기도 하고 나의 배경을 넓히기도 한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지나간 과거의 하루라는 뭉텅이가 되지 않도록,

소중한  인생의 순간으로써 빛날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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