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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Aug 29. 2022

고통을 줄이는 술과 쾌락을 더하는 술

불행의 값은 싸지만, 행복의 값은 비싸다. 

박초롱 작가의 <어른이 되면 단골 바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지>에서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이론을 읽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다.

“술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고통을 줄이게 하는 술과 쾌락을 더하게 하는 술 (...) 비싼 술은 보통 쾌락을 더하게 하는 술이라고 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셔야 하는 술. 잔의 10분의 1이나 채울까 말까 하면서 만 오천 원씩 받는 위스키나 포장이 화려하고 이름이 긴 와인 같은 것들이 그렇다고. 막걸리는 보통 고통을 줄이는 술이었는데 고급화되면서 일부는 쾌락을 더하게 하는 술로도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이런 말이 있다.

행복은 어느 정도의 높은 기준을 달성해야 느끼지만 슬픔이나 불행은 아주 작을 때도 느낀다고. 그래서 불행의 값은 싸지만 행복의 값은 비싸다고.

생각해 보면 유난히 고단했던 하루 일과를 끝내고 생각나는 술은 주로 소주나 막걸리다.

물론 만나는 친구마다, 그날그날의 안주나 날씨에 따라 주종이 달라지곤 하지만 고단한 하루일수록, 또 똑같은 내일을 맞이할 용기가 부족할수록 나는 소주 생각이 간절해졌다.

조금 부끄럽지만 이 지론의 타당성을 따져보기 위해 과거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나는 우울증과 불면증이 심했던 시절에 수면제 대신 매일 막걸리 1병과 맥주 2캔을 비웠다. 종종 보드카 큰 병을 사두고 음료수와 섞어 마시기도 했지만 늘 다시 막걸리로 회귀한 걸 보면, 고통을 줄이는 술에 대한 이 지론이 꽤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막걸리와 맥주만이 가득했던 흐린 기억 속의 그 옛날 나의 자취방 냉장고. 현재 내 방 냉장고에는 마시다 남겨 둔(무려 남기기까지!) 와인 한 병, 그리고 펜트리에는 좋은 날 먹겠다며 사둔 와인과 위스키 몇 개가 있다. 그때와 지금의 소득 수준이 비슷한 상황임에도 좀 더 좋은 술을 구비하고 있는 건 내 입맛이 변해서가 아니다. 변한 것은 오직, 내가 술을 마시는 시간을, 마시는 나의 모습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는 것뿐이다. 


여전히 술이라면 소주와 막걸리를 가장 사랑하지만, 좋은 술을 집에 모으고 있다는 건, 잊고 싶은 밤보다 기억하고 싶은 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고, 고통을 줄여야 하는 날보다 쾌락을 이어갈 순간들이 훨씬 많아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나의 일상이 꽤 행복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이 기쁜 오늘,

이 쾌락을 더하기 위해 퇴근 후 와인 한 잔을 들이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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