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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Aug 16. 2022

Prologue

예전에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을 당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지금 불행한 시간은 앞으로 이만큼 행복하기 위한 거예요.


선생님께선 분명히 날 위로하려고 하신 말씀이었겠지만 오히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는데.


- 그런 거라면 전 앞으로 행복한 순간이 와도 즐기지 못할 것 같아요. 반대로 보면 행복이 커질수록 그만큼의 불행도 올 거라는 말이잖아요.

- 음.. 드라마나 영화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인물들은 행복했다가 불행했다가 다시 행복하잖아요. 그게 인생이고 현실이에요. 현실을 받아들여야 덜 힘들어요.


물론 맞다. 인생은 불행과 행복과 무감정의 날들이 반복적으로 뒤섞이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더이상 무너질 여력이 없었다. 애초에 행복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더욱’ 불행해지진 않을 테니, 차라리 계속 우울하게 지내는 편이 나를 지켜낼 수 있는 방패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몇 년을 스스로 '우울한 나'로 지냈고,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3년 전.


평소 나는 다이어리를 쓸 때 먼슬리 달력 부분과 노트처럼 쓸 수 있는 줄만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을 선호하는데, 노트처럼 편하게 쓰다 보니 한 다이어리로 1년을 쪼개어 쓰지 않고 많으면 두세 개의 다이어리를 1년 동안 쓰기도 한다. 그해는 11월에 다이어리를 다 썼고, 새로운 다이어리를 사러 간 날이었다. 나는 그날 매장에 놓인 다이어리를 고르다 문득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리게 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데, 바로 올해의 다이어리는 감사일기를 쓰듯이 좋은 일만 매일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이 다이어리를 다 쓰고 나의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매일 좋은 일들로 가득 채운 해로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이어리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 오늘의 좋은 일을 남기기 위해 하루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좋은 일을 찾아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는 다이어리를 채우기 위해 ‘걸어가다 예쁜 꽃을 봐서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커피가 있는 새로운 카페를 발견해서 정말 좋았다.’ 등 ‘좋았다’는 의미를 억지로 부여했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적다 보니, 차라리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미리 계획하고 하루 동안 이뤄보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로 걸어가서 새로운 풍경을 보기'

'내일 일어나자마자 하루종일 과자를 먹으며 로맨틱 코미디 보기'

'읽고 싶었던 책 오늘 읽어보기’ 


등 거창하지 않고 아주 간단하게 이룰 수 있으면서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전날 저녁이나 매일 아침 적어 두고 하나씩 이루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날 무렵, 나는 어느새 한 달 뒤의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1년 후의 목표를, 더 멀리 인생의 목표까지 적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졌고, 좋아하는 게 많아졌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적고 정확히 3개월 뒤, 행복의 순간이 두려워 우울을 자처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일이라는 글자가 두려워 매일 밤을 술로 잊던 내가 내일이 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소위 행복한 만큼 불행하고, 불행한 만큼 행복하다는 ‘행복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행복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부단히 행복을 좇아보는 시간을 통해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행복 질량 보존의 법칙’은 우울한 시간만큼 행복의 시간 또한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의 우울한 시간을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기다리며 감내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행복한 시간을 미래에 다가올 불행의 시간으로 초조해하거나 운명인 양 감수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행복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우울의 질량만큼 행복한 기억의 질량, 행복한 목표의 질량으로 스스로 채워가며 일상을 보존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불안과 우울 위로 행복을 덮어가며 하루를 버텨낼 힘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로부터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일들을 지금 5개 나열해보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는 곧바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글을 엮는 동안 주변인들에게 직접 물어보았고, 대부분 추상적인 한두 가지를 말했을 뿐 자신의 구체적인 행복의 요소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 질문을 통해 흥미로웠던 건, 공통적인 답변으로 ‘여행’이 꼽힌 것이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하는 코로나 시기가 굉장히 불행했다던가, 여행 갈 시간과 돈이 없어 속상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는 점이었다. 


여행은 지금 이 순간만을 산다. 여행에서는 일상에서보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먹고 싶은 것 등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매일 여행을 떠나는 방법이란 내가 매순간 나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면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소한 기쁨의 순간을 일상 여기저기에서 찾아내 자주 온 몸으로 느끼면서,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자는 신조를 최대한 매일매일 이루려 노력한다. 이 사소하지만 강력한 깨달음 덕분에 나는 매일 행복하다.


어제를 잘 마무리 지어야 오늘을 지탱할 힘이 생기고, 내일을 맞이할 희망이 생긴다. 

만약 우울이나 불행, 불안의 질량이 더 높은 하루를 보냈다면, 오늘이 가기 전에 행복을 억지로라도 채워 나가보는 것이 어떨까? 힘듦을 상쇄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행복을 손에 많이 쥐고 있을수록 희망을 잃지 않을 단단한 삶의 기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적는 나의 취향들은 모두 나를 살려낸 일들이다. 

나의 시행착오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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