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명 중 3만등, 삐빅- 꼴등입니다.

오키나와 마라톤을 완주하며 (2)

by 눈눈

-1편에 이어서


사진만 봐도 어느 지점이었는지 생생하다.

33km 쯤 지났을까. 주로에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기 시작했고, 한 스탭이 메가폰으로 방송을 하며 남은 주자들을 주로의 왼쪽으로 난 샛길로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그쪽으로 향했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리 만무했던 나는 파파고로 그 옆에 있던 입간판을 찍어보았다.


실제로 찍었던 화면


화장실.. 됐고 / 휴게소 지금은 못가고 / 리타이어 버스..가 뭘까?


다리는 커녕 뇌 회전도 안되던 나는 리타이어 버스를 "은퇴자들을 위한 버스"로 해석했고, 급기야 노인들을 태우는 버스라고 생각해 쌩 지나치게 된다.


그렇게 10m를 더 달렸을 때 쯤, 친구가 보이스톡을 걸어왔다. 그녀는 25km 이후에 마지막 도파민을 불태우며 멀어져갔는데, 졸지에 호송버스를 타게 되었단다.

싫다고 외쳤지만 주최측에서는 시간내 완주가 어려워보이는 참가자들을 모두 호송버스로 태웠다고 했다.


친구가 버스에 탔다는 소리를 듣자 마자 나도 이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까 그 "리타이어 버스"가 호송버스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주로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버스 구다사이!!!!"를 외쳤다.


"버스 구다사이!!!!!!!!!!!!"


애석하게도 그 거리에서 '버스 구다사이'를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체 일본어로 버스가 뭐길래 아무도 못 알아 들은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어쨌든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완주를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 버스를 못탄 덕분이긴 하다.




33km 쯤에서 크루 응원단이 기다려준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그때부터는 정말 급격하게 에너지를 잃었다. 타인의 에너지를 받아서라도 뛰고 싶었는데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모든 의지를 상실한채 걷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10km 마다 하나씩 먹겠다고 주머니에 에너지젤도 4개나 구겨 넣었는데, 하프 쯤부터는 아무것도 삼킬 자신이 없어서 그냥 가지고만 있었고, 언젠가부터 그 존재를 아예 잊었다.


설상가상으로 탈이 났는지 배가 엄청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뛰고 갑자기 많은 양의 급수를 한 탓이었는지, 미리 해결했어야 할 일이 뒤늦게 큰 쓰나미로 몰려오는데 화장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내 페이스를 계속 잃어야 했다.




37km가 지났으려나, 온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주로에는 이제 진짜 아무도 없었고, 도로 통제가 풀려 차들도 다니기 시작하던 때에 옆에 응원도구를 정리하던 주민분께 물을 요청했다. (일본어를 몰라 손으로 물마시는 제스쳐를 취했다.)

물이 없다고 하면서 짜먹는 곤약젤리 같은 걸 주셨는데, 에너지젤인 줄 알고 대량으로 짜먹었다가 삼키지 못하고 길가에 다 뿜어버렸다.

그리고 진짜 미친사람처럼 물을 찾아 다녔는데, 다행히 얼마 안가서 학생들이 시원한 물을 주었고 그자리에서 500ml를 원샷하고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을 마시고 고개를 드니 바로 앞에 크루 응원단이 보였다.

사실 주로가 없어져서 주자들도 거의 없었는데, 내가 계속 들어오지 않자 크루원들이 끝까지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을 보니 칭얼대고 싶어졌다. 내 다리 상태와 내가 왜 늦었는지에 대해서 쏟아내고 싶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고 그냥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나도 나를 못 믿고 있는데 나보다 더 나를 믿어주는 크루원들. 37km 지점부터 피니시까지 5km 넘게 같이 뛰어주며 계속 나를 뛰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스미마셍을 외치며 닫혀버린 주로를 확보해주었고, 내가 너무 힘들어서 쉬면 쉬는 대로 함께 걸어주었다.


거의 모든 주자들이 지나갔고, 나와 비슷한 페이스의 주자들은 호송버스(aka 컷팅버스)에 태워졌기 때문에 나 혼자만 달리고 있었던 주로.

이만하면 충분하다, 고생했으니 그만 멈춰도 된다고 해주면 좋겠는데 그만 뛰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만큼 힘들었다.




이렇게 뒤에서 마라톤의 끝을 알리는 차량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걷다가도 이내 다시 뛰어야 했다.

쳐져서 따라잡히는 순간 나는 FINISH 코앞에서 버스에 태워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보니 그냥 따라잡힌거나 다름 없는데 저 차량들도 마지막까지 걷지 않고 뛰려는 나를 태우지 않고 기다려줬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마지막 5km를 뛰니 결코 가지 못할 것 같았던 FINISH 지점에 다다랐다.

이 때 이 곳에서 받았던 오로지 나만을 향한 낯선 일본어 응원들, 박수갈채, 함성소리가 생생하다. 나는 빠르게 잘 달리지도 못하고, 자세가 완벽하지도 않은 그냥 열심히 달리는 사람일 뿐인데, 쏟아지는 격려와 응원이 눈물나게 황홀하고 황송했다.

이 기억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완주의 기억을 미화하고 다시 또 주로 위에 서는 거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나는 풀코스를 완주했다.


진짜로 꼴등


다들 완주 후 기쁘고 즐거웠다는데 나는 복잡했고 눈물이 났다.

포기하지 않고 해낸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절대 한 순간도 흐려지지 않을 주로 위의 시간들, 나를 응원해줬던 사람들, 스스로와 나눴던 대화들,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한 생각들, ... 이 모든 것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데 모여 나를 울렸다.


마라톤이 끝난 후에 바로 앉지말고 계속 걸으라는데 그때부터는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됐다.

이미 내 다리는 다리의 기능을 못하는데 어떻게 걸어요?


걸어야했다.


FINISH 지점을 빠져나와 완주 메달을 받고, 완주증을 출력하여 처음에 집결했던 오노야마 공원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얼렸다 녹인 차가운 요구르트 5병을 원샷하고, 잠깐 널부러져 있다가 걸어서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로 돌아가는 20분은 마라톤을 뛴 5시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걷다 멈췄다 하다가 결국 길가에 드러누웠다.




풀코스 완주하면 다 이러냐구요?

아니요.

준비 없이 뛰면 이렇게 됩니다.



다시는 달리기를 하지 않겠노라 (맹세가 아닌) 다짐을 하며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오키나와에 그린 완주지도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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