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 : 오디오를 채워야하는 병

나는 왜 정적을 못견디는 사람이 되었나?

by 눈눈


저 앞으로 점심 혼자 먹겠습니다.


입사 후 3년 쯤, 점심을 혼자 먹기로 결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는 혼자 밥먹는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사무실에 혼자 남으면 같이 먹을 사람이 없는 안타까운 비주류라고 여기며 종종 자기 점심모임에 끼워주겠다는 동료들도 있었다.


아무리 혼자가 편하다는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자, 급기야 "저는 회사에서 쓰는 밥값이 제일 아깝습니다!"라고 외치는 정도에 이르렀다.



막내야 오디오 채워라


원래의 나는 혼자보다 여럿이 같이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쪽이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자체가 즐거웠고 어색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나는 무리에 속해 있을 때 오히려 불편했다.


첫 회사에서는 팀장님 때문에 의무적으로 팀점을 해야했다. 식사자리 내내 팀장님은 팀원들을 둘러보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고, 질문에도 고개만 끄덕이며 팀원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선배들은 식당으로 가는 길에 나에게 "니가 막내니까 말 좀 많이해"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니까 난 막내로서 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재롱을 부려야 했다. 그때부터 생존을 위한 인간 토크박스가 되었다.


그렇게 훈련된 나는 누구와 있든 잠깐의 공백도 불편해졌고, 심지어 내가 그 빈칸을 “잘”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밥을 먹으면서도 머리 한 켠에서는 끊임없이 대화 주제를 고민했다.


미션 같은 대화 후에는 어김없이 후회와 자책이 뒷따랐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아지는 법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가 한 말들을 복기하며 부적절한 표현이 있진 않았을지, 의도와 다른 표현이 오해를 만들지는 않았을지 걱정했다.

걱정 뿐이겠는가? 걱정 뒤에는 또 다른 고민이 찾아왔다. 나에 대한 정보를 어디까지 뿌렸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적인 영역까지는 제물로 삼고 싶지 않았던 소심한 토크박스에게는 숙명 같은 시간이었다.


나에게 점심시간은 메뉴 조율부터 식사 중의 대화까지 무엇하나 고민하지 않을 것이 없는 업무의 연장선이었다.


그래서 난 혼자 점심을 먹기로 했다.



눈눈아 억지로 말 안해도 돼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러 나갔던 자리에서였다. 여러가지 주제로 한 차례씩 웃고 나니 이전의 데시벨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정적이 찾아왔다. 그럴 때를 대비해 몇가지 주제를 생각해갔고, 그 덕분인지 테이블은 적당한 온도와 텐션을 끊김없이 유지했다.

할만큼 했다고 자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친구가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냈다고 말하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근데 눈눈아, 꼭 억지로 말 안해도 돼”


오디오가 빌 때 마다 안절부절하며 대화주제를 찾아내는 내 모습이 꼭 인터뷰어 같았다고 했다. 우리 사이에까지 사회생활 하냐며 장난으로 마무리했지만, 그 말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따스한 위로로 남아있다. 어색한 자리에서 정적을 견디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바쁘게 얘깃거리를 찾는 나에게 스스로 말한다. 꼭 내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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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팀의 막내에서 리더가 되었지만, 가끔 팀점을 해야할 때면 나는 여전히 말을 제일 많이 한다. 팔짱끼고 관전하는 리더보다는 다소 뚝딱대더라도 오디오를 채워주는 리더가 낫지 않냐는 나만의 뚝심으로. 그리고 나와 비슷한 성향의 후배가 남몰래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