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에서 배운, '나'로 살기 위한 용기
33번째 생일은 제주도에서 보냈다.
퇴근하고 한밤중에 날아가 공항 근처에서 하루 묵고 이튿날 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5월 말의 제주 날씨는 생각보다 덥지 않아 가볍게 여행하기에 딱 좋았다.
아침으로는 택시기사님이 추천해주신 도민 맛집에서 고기 국수를 먹었고, 3년만에 좋아하는 소금빵 가게에도 들렀다.
좋아하는 노래(주로 90년대 히트곡을 듣는다)를 들으며 뻥 뚫린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점심은 제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서귀포의 한 스시 오마카세에서 먹었다.
함께 식사한 손님들 중에는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가 왔다간 곳이라고 하여 외국인 팬도 있었고, 서울에서 여행왔다는 모녀도 있었다.
유쾌한 쉐프님과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스시, 그리고 창 너머로 보이는 제주의 푸른 풍경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쉐프님은 손님들 한명 한명에게 대화를 건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셨고, 그 덕분에 옆에 앉은 모녀분들과도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따님은 내 또래 같았는데 퇴사하고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온 것이라고 했다. 유학까지 다녀온 딸이 잘 다니던 좋은 회사를 퇴사해서 속상했다는 어머님 얘기를 들으니 나까지 속상해지는 느낌이었다(원래 과몰입 미쳤음).
반복된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일을 냈다는 어머님의 웃음섞인 말에 셰프님도 "따님이 어머님 말씀을 잘 안들으셨네요~" 라고 맞장구쳤다.
지독한 안정추구형 인간인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엄마가 괜히 말렸겠나, 엄마 말 좀 잘듣지.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그러자 이어지는 어머님의 한마디.
어른인데 부모 말 잘 들으면 안되지. 자기 인생인데.
이럴수가.
딸의 인생을 완전히 독립된 세계로 존중해주는 문장이었다.
나는 착하지는 않았지만 책임감은 강했고, 비교적 순종적인 딸이었다.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부모님의 의견을 따랐고,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늘 애썼다.
내 선택으로 부모님이 웃으실 때 그것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여겼다. 자연스럽게 나는 나를 맨 마지막에 두는 법을 너무 일찍 배웠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이 문장은 어떤 자녀에게는 생각과 취향을 앞세우기 어렵게 만드는 말일지도 모른다. 가장 안전하고 착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파격적이고 재미있는 일은 영영 시도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어른인데 부모 말 잘 들으면 안되지. 자기 인생인데.'
내 마음의 방향으로 살아가도 충분히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이 한 마디가 생일에 받은 여러 축하의 마음들 사이로 깊게 파고 든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포기했던 선택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때, 실체없는 부담감과 압박감에 짓눌려 가지 못했던 그 길들이 참 아쉽다.
33살 늦은 봄, 제주도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