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Money, Fame, 결국 사랑
실은 같이 가잔 말 한마디 때문에 산 것이나 다름 없다.
다들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아니 그 전에, 세상에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나요?
언제 죽고 싶나요?
일이 너무 힘들 때? 수많은 관계들이 부질 없을 때? 내 의지 밖의 많은 상황이 나를 괴롭게 할 때?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나도 폭력적일 때? 내가 밥 한끼 먹는 시간에도 온갖 전쟁과 가난과 폭력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을 때? 사람은 사람을 끝없이 괴롭게
한다는 지극한 현실을 자꾸만 사례로 체감했을 때? 별안간 나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을 때?
혹은 누군가의 부재이거나-
현재의 삶에 애착하는 무언가가 없어졌을 때?
나는 내 삶을 사랑할 수 없는 순간의 대부분, 내 삶에서 애착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냥 공허하잖아요, 애착할 수 없는 대상에는 내 자신도 포함이었고요, 내가 지금까지 선택해온 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은 미래, 그밖에 나를 둘러싼 일상과 관계, 상황, 그 모든 것을 애착할 수 없게 되면, 그 뒤에는 사실 굳이 살아야 되나 싶기도요.
그럼 이제 반대의 이야기-
언제 생에 대한 사랑을 느끼나요?
내가 하는 일이 즐거울 때, 서로 친절히 대하는 사람이 많을 때, 지금 듣는 노래와 오늘 날씨가 잘 어울릴 때, 날 아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들의 삶이 지금에 대한 만족으로 충만할 때, 아니면 마음이 저릴 정도로 아픈데도 나한테 뭔갈 나누려 할 때,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작은 초콜릿 하나라도 더 나누고 싶을 때, 그러다 문득 내 걸 털어놓을 수 있을 때-
사랑을 물리에 빗댄다면 ‘중력’ 같은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나를 이 세상에 발 붙이게 붙들어놓는 무게 같은 것. 애착이 우릴 무겁게 만들죠. 나는 그게 없어졌을 때 한없이 가벼워서 세상에 발 붙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사랑 때문에 아팠던 사람이라도 구태여 남겨진 사랑을 비워낼수록 공허해진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왜냐면 그게 내 무게거든요. 남들보다 나은 돈과 명예도 붙들지 못하는 내 삶, 내 삶을 붙들어 줄 무게요.
돈과 명예는 상대적인 거잖아요- ‘돈을 잘 번다’의 기준은 ‘남들보다 잘 번다’이고, ‘명예롭다’의 기준은 통상적인 사람들이 갖추지 못한 덕목이나 지식을 ‘나만 갖췄다’입니다.
그 반면, 사랑은 절대적인 것 같아요- 내가 누군가를 ‘아낀다’, ‘사랑한다’라는 걸 정의하는 데에 내 마음 외 다른 기준이 필요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비교 없이 그 자체로 충만해질 기회를 주는 건 사랑 뿐이지 않을까요? 사랑의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연인, 가족, 친구, 세상, 세대, 그 무엇에 대해서든, 폭력 속에서도 마음 가는 대로 자라나는 그런 사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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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반대로 돌아가더라도 나랑 같이 똑바로 걸어가자는 한마디가 있었다면, 많은 게 달랐을까요?
나는 그 한마디로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사랑의 성패를 떠나, 그냥 그 순간 그 포옹은 내 세월을 연장시켰거든요. 그렇게 연장해 준 내 세월에 비해, 조금 더 살아볼만 하겠다 힘을 냈던 순간에 비해서요,
당신이 삶에 대한 회한으로 엎어졌을 때, 사는 게 힘들다며 무너졌을 때, 내가 말을 아낌으로 인해 많은 게 달라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평생 후회할 것 같고, 후회하는만큼 자라려고 노력하겠죠. 지금보다 더 자라고 나면 사랑하는만큼 오롯이 위로할 수 있을지도요. 이런 시간은 다시 되돌리지 못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그저 사랑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