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을 느끼는 방식
여행은 짝사랑이다. 여행객은 휴일을 맞아 찾은 도시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어렵게 낸 휴가인 만큼, 오고 싶어서 온 곳인 만큼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을 받는 나라에서는 손님들을 그만큼 좋아할 이유가-경제적인 이득 말고는-딱히 없다. 감정적인 관계를 맺는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달갑지 않을 여지가 있다. 로컬의 문화를 모르는 외부인이 무언가를 망가뜨릴 수도 있으니까. 관광객이 많은 도시일수록 그렇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칸쿤은 여행객이 몰리는 도시다. 그래서 장사치가 많다. 유명한 곳에 다다르면 장사꾼들이 입구부터 진을 치고 있다. 매우 체계적이어서 그들이 짜 놓은 각본대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되는 느낌이다. 마야 유적지인 치첸이샤에 갔을 때도 그랬다. 그늘을 찾기 힘들 때쯤 모자를 파는 마차들이 나타났고, 길을 헤맬 때쯤 가이드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며, 목이 마를 때쯤 음료를 파는 행상이 보였고, 허기가 질 때쯤 식당이 보였다. 마지막에는 기념품 상점이 늘어져 있었다. 가격 흥정 또한 노련해서 항상 돈을 더 내버리고 마는 기분이었다. 거스름돈도 잘 주지 않는다.(팁이라고 생각하고 가져간다) 여행객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방법은 다 꿰뚫고 있는 듯했다.
칸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역시 짝사랑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잠시 이 곳을 찾은 관광객에 그쳤다. 칸쿤은 수많은 외부인을 겪은 만큼 여행자를 다루는 단단한 틀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칸쿤을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지만 나는 사실 수많은 관찰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한 달 동안 칸쿤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동네 식당, 바다, 유적지. 나는 열심히 지갑을 열었다. 여담이지만 일상을 크게 벗어나면 중요했던 것-이를테면 돈 같은 것들-이 중요하지 않게 되더라.
헌데 이상했다. 장사꾼들의 논리에 휘둘리다보면 그들을 싫어하게 되는게 정상 아닌가. 그저 관광을 즐길뿐 그 곳의 사람들에겐 좋은 기억이 없는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그런데 갈수록 사람들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계산된 차가움이 아니라.
그들은 언제나 웃어주었다. 가게 종업원들은 느렸지만 친절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췄을 때, 근처에 있던 멕시코인이 기어코 기름을 구해다 줬다. 배 멀미에 힘들어하고 있을때, 가이드가 괜찮을거라 말하며 물을 건네줬다. 길을 물을때면 말이 안 통해도 우리의 노력만큼 그들도 노력했다. 크고 작은 상황에서 진심 어린 도움을 받았다.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네들의 여행을 우리가 도와주겠다'라고 말하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돈 받았으니까 최소한의 것만 하고 끝이 아니라, 여행객들의 목적과 마음에 공감하는 듯했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입장임에도 맞서지 않았다. 생업에 노련하고 철저했지만, 돈벌이에 매몰되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퉁명스러움이나 해외에서 흔히 겪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도 없었다.
느낌이 바뀌었다. '장사치'라는 단어는 의도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을 때 '아 뭐, 그렇기는 한데...' 정도의 것이 됐다. 시간이 갈수록 멕시코 사람들이 좋아졌다. 장사꾼이라고 머리로 느껴지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참 사랑스러웠다.
장사치가 많으면 여행은 쉽게 방해받지만, 나의 여행은 방해받지 않았다. 겪으면 겪을수록 호흡을 맞춰가는 기분이 들었다. 방문자는 진심 어린 도움을 받고, 그들은 그 대가와 더불어 고마운 마음을 받아가는 것. 그것이 칸쿤을 느끼는 방식인 것 같았다. 짝사랑이 아니라 연애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찾지 못할 것 같았던 유대감이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방법으로 느껴졌다.
여행은 그저 짝사랑에 그친다는 생각도, 여행객은 관찰자에 그친다는 생각도 편협했다. 어느 도시든 그들의 방식으로 사람을 사귀고 인연을 만든다. 다양한만큼 멋진 일이다.
식당에서 눈이 예쁜 소녀를 만났다. 대부분이 관광객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 칸쿤인 만큼 이 아이도 이방인에게 즐거움을 남기는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이 소녀와 내 아이가 만나 내가 칸쿤의 종업원, 가이드, 택시 기사와 나눴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는 웃긴 상상을 했다. 내 아이는 짝사랑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제 소식을 전합니다
실망일 수도, 우스울 수도, 걱정일 수도, 관심 밖일 수도 있는 소식을 전합니다. 세계일주 팀에서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제 역할은 팀의 여정을 담은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써낼 수록 팀의 색과 제 글의 색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색깔 모두 '기질' 같은 것이어서 노력에도 쉽게 변하지 않았고, 프로젝트 기간 내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결론에, 상호 합의 하에 닿았습니다. 다른 트러블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서로 아쉬워했고, 마지막까지 화기애애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물론 호기롭게 시작한 만큼 합류가 확정되기 전에 이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내가 좀 더 유연했다면, 하는 아쉬움도 크게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 있을 수많은 엇갈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훗날 자양분이 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까지 제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주시고 멋진 경험을 가져다 준 형, 동생들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짐을 더해버린 것 같아 미안합니다.
시작의 계획과는 많이 다르지만, 바로 귀국하기보다 혼자서라도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세상은 만날수록 멋져서 이왕 시작한 김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많이 미뤄왔는데, 이제는 부지런하게 멀어진 이야기부터 쓰려고 합니다. 지금은 파리에 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