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조금만 더 여행할게요

홀로 남아, 파리까지

by 정두부


혼자서 조금만 더 여행하다 들어갈게요.


하차가 결정되고 나서 감사하게도 한국행 비행기 표까지 지원해주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혼자서 더 여행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뉴욕에서 3일을 보낸 뒤 아이슬란드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공항 앞에서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혼자가 됐다. 벤치에 앉아 너무 많이 챙겨 온 짐을 멍하니 쳐다봤다. 정말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나는 10시간 뒤 파리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파리행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표값이 가장 싼 목적지가 파리였다. 티켓은 4일 전 아바나에서 구입했고 숙소는 어제 예약했다. 두 가지를 준비하는 데 20분도 채 안 걸렸던 것 같다. 결정은 어려웠지만,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하나도 -야속할 정도로- 어렵지 않았다.


공항에 앉아 한겨울 날씨의 아이슬란드를 구경했다. 불과 나흘 전까지만 해도 푹푹 찌는 쿠바에 있었기 때문에 숨 쉴 때마다 나오는 입김이 낯설었다. 두꺼운 패딩을 입은 여행객들이 분주히 공항을 오갔다. 모든게 비현실적이었다.

혼자이다 보니 불편한 게 많았다. 어딜 가더라도 캐리어와 백팩과 쌕을 다 들고 가야 했다.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데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쏘리, 쏘리를 연발했다. 짐 때문에 눈치가 보여 얼굴과 손만 대충 씻고 서둘러 화장실을 나와야 했다.

10시간을 더 공항에서 보내야 했기에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책을 편지 30분쯤 지났을까, 문득 파리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법을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매번 택시나 우버를 이용했었지만 이제부터는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 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나았다. 게다가 밤늦게 도착할 예정이기에 미리 알아두지 않으면 곤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핸드폰을 켜고 파리 공항의 셔틀버스를 검색했다.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인터넷도 느렸던 탓에 꽤 긴 시간 낑낑댔다.


그때 갑자기, 아니 그제서야 내가 겪은 실패의 크기가 실감 났다. 나는 겨우 며칠 전 스스로 제일 잘 한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직장까지 관두고 떠나온 곳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 이루어 온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게 기대를 걸었을 사람들을 볼 낯이 없었다. 민망했다.

당장이라도 한국에 돌아가서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혼자 남아서 여행한다는 건 그냥 객기가 아닐까. 이 시기에, 모아 왔던 돈 까먹으면서 여행을 한다는 건 철없는 짓 아닐까. 우리는 흔히 여행은 분명히 '무언가'를 남긴다고 여겨 용기 있게 떠나는 자들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나도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같은 제목을 단 콘텐츠를 잘도 만들어내곤 했지만, 아이슬란드 공항에서의 나는 그 '무언가'가 도대체 뭔지 실감할 수 없었다. 돌이켜봐도 내가 했던 대부분의 여행들은 현실에 돌아오면 그냥 아련한 추억에 머물렀을 뿐 실질적으로 내게 도움을 준 건 딱히 없었다.

게다가 나는 당장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몰라서 쩔쩔매고 있었다. 그 이후의 계획도 전무했다. 뭘 어쩌겠다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도 알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파리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찾고 공항 벤치에 앉은 채 캐리어에 팔을 두르고 엎드렸다. 앞으로의 계획, 나의 미래에 대해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한 채, 꾸역꾸역 10시간을 보낸 뒤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올라타자마자 졸음이 물 밀듯이 쏟아져 비행 내내 잤다. 중간중간 통로를 오가던 사람과 부딪혀서 잠깐 눈을 뜬 기억밖에 없었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0시였다. 셔틀버스를 타고 Gare de Lyon역에 내렸다. 심카드를 사지 않아 구글맵을 킬 수 없어 미리 캡처해 둔 지도를 보고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길을 잃었다. 분명 이쪽이 맞는 것 같았는데... 설상가상 핸드폰 배터리까지 나가버렸다.

30인치 캐리어와 10kg가 넘는 백팩을 인 채 피곤에 절은 몸으로 길까지 잃은 내게 파리의 밤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골목은 어두침침했고 여기저기서 지린내가 풍겨왔다. 술 취한 노숙자들이 지나가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애써 무시하며 걸었다.

느껴본 적 없던 기분이 몰려왔다. 무서움. 막막함이 무서움으로 변했다. 걷는 중에도 계속해서 앞으로의 여행에서 내가 해야 할 것.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을 떠올리려 했지만 생각은 조금도 깊어지지 않고 막혀버렸다. 세상이 나를 겨누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내 실패를 비웃는 것 같았고, 바로 귀국하지 않고 객기를 부리고 있는 내게 어디 한번 해보던지, 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어느새 조용해진 파리의 밤거리를 드르륵드르륵 캐리어 바퀴 소리를 내며 걷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한 시간은 헤매다가 겨우 숙소를 찾았다. 체크인을 하고 방 안에 짐을 대충 내팽개친 채 침대에 누웠다. 바로 충전기를 핸드폰에 연결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줄 내 가족, 친구들이 절실했다. 하지만 한국은 새벽이었다. 혹시 몰라 남긴 카톡에는 누구도 답장하지 않았다. 30시간이 넘도록 씻지 못했지만 샤워하러 갈 힘도 없었다. 그저 누운 채 어떡하지, 어떡하지, 되내이다가 눈을 감았다. 어느 누구도 파리에 도착한 첫 날의 밤을 이렇게 보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헛웃음이 났다. 혼자 다시 시작한 여행의 첫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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