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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Sep 04. 2020

그러나 여행은 나같은 사람도 잠시 멈출 수 있게 한다

이번 주 내내 휴가였다. 2020년 들어 처음 낸 휴가다. 왜 9월이나 돼서 첫 휴가를 갔냐면

1. 원래 휴가를 좀 거창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2. 장마다 코로나다 뭐다 해서 떠날 마음이 잘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간을 보면 벌을 받는 건지... 코로나도 날씨도 갈수록 심해졌다. 휴가를 떠난 9월 첫 주는 둘 다 최악이었다. 코로나 전염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현됐다. 바비보다 강한 마이삭이 북상한다고 했다.


또 한번 미뤄야하는 이유가 산더미였으나 나는 더 미룰 수가 없었다. 2020년이 4개월 밖에 안남았는데 휴가가 13.75일이 남아있었다. 지금 안쓰면 소진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을 게 뻔했다. 휴가도 가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겐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내가 추구하는 모습은 절대 아니다. 아니고 싶다. 손해보는 기분으로 올해를 마치긴 싫었다.


혼자 남해를 여행하면서 계속 되내었던 건 당장 할 필요 없는 걱정을 하지 말고 눈치도 보지 말자는 거였다. 늘 남 시선을 신경쓰느라 피곤한 삶을 사는 나다. 눈치를 보다보면 나답지 않은 모습이 나온다. 삐끗하게 되고 헛발질을 하게 된다. 그런 스스로를 보다보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지난 구개월은 내가 나를 갉아먹으면서도 그걸 알지 못했다. 이로인해 파생되는 나의 미운 모습을 끝없이 마주해야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남해는 관광지도 한산해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는 순간이 많았다. 순간마다 남을 신경쓰게 됐다. 업무 메신저를 확인하고 싶었고 누군가 내 뒷얘기를 하고 있진 않나 누가 내 여행에 관심을 가져주나 궁금해했다. 평소라면 급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하는 여행은 나같은 사람도 잠시 멈출 수 있게 만든다.


의도를 갖고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들을 멈췄다. 메신저를 지우고 인스타에는 2시간에 한번만 들어가고(...) 카톡 알림도 꺼놓고. 조금 다른 풍경이 보였다. 그 풍경은 새로운 게 아니었다. 언제나 곁에 있었으나 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를 존중하거나 혹은 아무런 신경도 안 쓰는 모습들이었다. 이상하게 일상에 매여있으면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언제나 내 행동과 생각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하나하나를 의식하게 된다. 알아주지 못하는 모습에 화도 내게 된다. 나답지 않은 행동과 말이 튀어나온다. 삐걱이거나 헛발질 하게 된다.


출발 전 했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남해는 아름다웠다. 하늘은 경이로웠고 남해 특유의 바다 -작은 섬이 많고 해안선이 단조롭지 않은- 를 만끽할 수 있었다. 우아한 생각이 잘 정리된 책을 반나절만에 다 읽었고 좋은 공기 마시며 운동도 했다. 돌아가더라도 이런 기분으로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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