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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Sep 04. 2020

힙지로와 개인주의

을지로에 가기로 했다. 최근 가구를 재배치하면서 소품을 사고 싶어졌는데 을지로에 괜찮은 가게가 있댔다. 평일 낮에 서울을 거니는 건 그 자체로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다.


을지로에는 힙한 상점들이 많다. 각자의 컨셉으로 지은 개성 뚜렷한 식당 주점 소품샵이 많다. 오래된 동네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가게들이다. 묘하게 어우러져 세련된 아우라를 낸다. 날씨 좋은 날에 거닐기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감탄사가 나올만큼 예쁜 상점들이 몇걸음마다 있었다. 어느 하나 기존 틀에 껴맞춘 곳이 없었다. 간판이 아예 없는 곳도 있고 본적 없는 컨셉을 갖춘 곳들도 심심찮게 눈에 걸렸다. 참 취향과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또 그걸 잘 표현해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다.


몇몇 가게들은 좀 불친절했다. 간판이 없거나 너무 새로워 들어가서도 뭘 해야하는 지 알 수 없는 분위기. 그런데도 전무한 가이드. 마치 여기엔 우리 감성 이해하는 사람들만 왔으면 좋겠다는 듯한 주인장의 태도. 공격적인 말투로 써진 안내문도 있었다. <서적이 색깔별로 진열돼있으니 기분 좋으시죠? 남들도 똑같아요. 그러니 제발 책 진열을 맘대로 바꾸지 말아 주세요> 묘하게 무례하다. 꼭 그렇게 말 안 해도 괜찮을 텐데.


힙지로의 묘하게 어우러진 세련된 아우라에는 개인주의의 발현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을 맘껏 표출해도 되는 시대. 식당에도 옷가게에도 서점에도 나만의 색깔을 녹여도 되는 시대. 아니 잘 녹일수록 잘 팔리는 시대.


새로운 것과 아름다운 것 신박한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나는 이런 트렌드가 좋다. 새로운 생각을 찾는데도 도움을 준다. 일상의 파도를 타다보면 뭐든 단조롭게 생각해버리게 되는데 그러지 않게 도와준다. 다만 개인주의가 무례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는 점이 아주 조금 걱정스럽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고 헤아리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한데 무례를 마주하면 에너지가 깎여버린다. 무례는 무례를 낳으니 더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 사람들이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으면 좋겠다. 안그래도 무례가 너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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