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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Sep 06. 2020

말더듬이의 글쓰기란

여전히 말을 더듬는다. 옛날처럼 심하진 않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특정 발음을 할 때나 긴장이 심한 상황엔 꼭 말더듬이 튀어나온다. 늘 말을 할 때마다 남들보다 한 템포 정도의 수고는 더 들여야 했다. 심호흡을 한다거나(공기를 크게 머금고 말을 시작하면 안 더듬을 수 있다)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를 찾는다거나(특정 발음이 잘 안 나올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카센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음에도 입 밖으로 내기 힘들 것 같아 찰나의 순간에 다른 단어를 떠올려 바꿔 말한다. 차 정비소로 같은 부자연스러운 말로).


뭔가를 이해하는 데 남들보다 오래 걸리는 것도 긴 시간 날 괴롭혀 온 말 더듬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말을 하기 어렵다는 건 소통이 어렵다는 거고 이는 곧 지적 대화가 부족하다는 뜻 아니겠나. 지적 대화가 부족한 채 어른이 된 사람은 같은 말을 들어도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난 그렇게 살아온 인간이고. 다만 출처모를 끈기와 인내는 있다. 몇 번 읽고 듣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고 경험해본 뒤에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느린 과정을 지겹거나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쉽게 포기하진 않는 거다. 돌고 돌아 해낸 이해는 몸에 밴다. 휘발되지 않는 온전한 내 지식이 된다.


이런 특성을 가진 인간이 글쓰기에 매료된 건 당연한 일 아닐까 한다. 글을 쓰려면 말하려는 것에 대해 완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얼추 아는 것 같아도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문장 간, 이야기 간의 구멍이 보이기 마련이고 글은 그 구멍을 메꿈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쓰기 시작하면서야 마주하는 구멍들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면서 느릿느릿 이해해나간다. 근데 글은 그래도 된다. 급히 써내야 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시행착오를 몇 번을 겪던 결과물만 좋으면 된다. 느린 내가 생각을 말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매개체 중 최적인 셈이다.(말 더듬을 숨기기 위한 수많은 노력도 들이지 않아도 되고)


내가 쓰는 글의 9할은 남의 이야기다. 인터뷰를 통해 들은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쓴다. 남의 이야기의 빈틈을 메꾸는 데만 시간을 쓴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 감정은 어떤 이유와 과정에서 나오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뭐든 오래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데 나 자신을 돌아본 지 오래된 거다. 이제 내 -말더듬이의- 이야기를 지금보다 훨씬 자주 글로 옮겨보려고 한다. 길거리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은 진리는 사람은 누구나 대단한 스토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천지차이다. 당연히 나도 예외는 아니다. 말을 더듬기에 한층 더 특별한 것도 솔직히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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