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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Aug 22. 2021

할 필요 없는 걱정

여느 주말처럼 지원을 만났다. 우리는 언제 만나도 서로 좋아 죽는다. 가끔 퉁명스러워지거나 피곤이 티날 때도 있지만 그저 텐션이 떨어지는 것일 뿐, 상대에 대한 마음이 시들해졌다거나 처음같지 않다거나 익숙함에 소중함을 잊었다거나...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서로를 천생연분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통하는 부분을  찾을 때마다 감탄한다.


영화를 보고 부암동에서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다 서로 최근에  꿈에 대해 나눴다. 요즘 나는 매일같이 악몽을 꾸는 중이다. 내용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힘들고 힘들어하다 잠을 깨고 꿈이 꿈이었다는  알고 안심한 기억밖에 없다. 지원이  말을 듣더니 자기도 어제 악몽을 꿨다고 했다. 내용은  들었지만 어쩜 악몽을 꾸는 타이밍도 이리 같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다 주문했던 메뉴가 나왔다. 이야기는 끊겼고 우리는 밥을 먹었다.


한참 지나 석파정을 지날 때쯤 지원이 잊고있던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까 말했던 내가 꾼 악몽, 이런 거야. 두부가 나를 똑바로 보고 '난 널 좋아해'라고 했어. 그리고 뒤돌아서 가는거야. 내가 등에 대고 '왜 사랑한다고 안 해주냐'라고 막 외치는데도 안 듣고 그냥 갔어."


좋아한다는 말도 좋은 이야기인데 그게 왜 악몽일까? 지원은 그 얘길 하면서 악몽에는 평소에 은연 중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그 두려움에 아무런 근거가 없어도 말이다. 이해가 갔다. 너무 좋은 만큼 그걸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막연한 모양으로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곤 한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더할 나위 없도록 지원을 사랑할 것이지만, 불안은 실체와 관계없이 커지기도 한다는 걸 살피지 못했던 것 같다.


할 필요 없는 걱정이라고 단호히 말하고 서촌을 걸었다. 우리는 늘 깊은 대화를 나눴지만 오늘은 왜인지 영혼적으로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분명 오늘 지원이 밝힌 불안은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마음이었을 것 같다. 나는 그 마음이 어딘가 예쁘게 느껴졌고 지금껏 먹어온 마음보다 더 아껴주고 보살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노을이 끝내주게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2021.08.22


석파정에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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