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에 몸을 던지다.
내 첫 길거리 인터뷰 상대는 한 부부였다. 두 분 다 개발자였는데,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함께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물음에는 곧 집을 처분하고 세계일주를 간다고 답했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이다.
당시 나는 취업 준비생이었다. 취직만 하면 모든 고민이 풀릴 거라 믿었던 순진한 나이였다. 그래서 부부의 말이 참 낯설었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도 모자라 세계일주라니, 용기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길거리 인터뷰가 능숙해졌을 무렵, 나는 취직에 성공했다. 첫 직장은 좋았다.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훌륭한 사수를 만났다. 많이 부족했지만 좋은 사람들 덕분에 적응도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주인의식도 가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입사 후 1년이 지난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뛰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 감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이기적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하지만 업무가 완전히 손에 익고, 어느 정도 이룬 것이 많아지고 나서부터 설렘이 사라졌다. 나는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남은 인생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이 그저 돈벌이에 그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설렘의 부재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즐겁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기계적으로 돈을 버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었다.
설렘이 사라진 이유는 내 성향과 회사의 성격 간의 차이에 있었다. 나는 앞서가는 이야기를 잘하지 못했다. 앞날을 예측하는 인사이트를 담은 콘텐츠나 잘못된 인식을 짚어주는 글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나간 사건과 감정에 대해 사람을 중심으로 말하기를 좋아했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회사 일을 잡고 있다 보니 나 자신의 진정성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위험한 신호였다. 즐거워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내 분야에 깊어져야 주관도 확고히 할 수 있고, 능력의 확장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 생각이 들고나서 오랜 시간 힘들었다. 주어진 업무와 새로운 도전 사이에 고민과 갈등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떠나야겠다는 마음은 먹었지만,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고 싶던 회사가 알고 보니 기대와 다른 적도 있었고, 역량이 부족해 합류하지 못하게 됐던 일도 있었다.
그렇게 방황하던 7월의 첫 날, 세계 일주 노마드 프로젝트팀의 작가 구인 공고를 봤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작가를 구한다고 했다. 글, 사람의 이야기, 세계일주, 가슴이 뛰었다. 공고를 보자마자 뛰쳐나가 집 앞 카페에서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지원서를 써냈다. 너무 할 말이 명확하고, 정말 가고 싶어서 글이 술술 써졌다.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써내기까지의 시간은 짧았지만 행복한 생각만 한 건 아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무게가 달랐다. 만약 합격한다면 정이 들었고 안정을 찾았고 대우도 나쁘지 않았던 첫 직장을 진짜로 그만둬야 했다. 당분간 수입은 끊길 것이다. 반 년동안 경력에 공백이 생길 것이다. 물론 잘 해내면 내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잘 못해낸다면 다녀와서 자리를 못 잡고 헤맬 수도 있다. 밖에선 계속 취업이 어렵다고 난리다.
그러나 모든 걱정을 뒤엎을만한 확신이 있었다. 뛰는 가슴이었다. 세계 곳곳을 보며 쉽게 하지 못할 경험을 하며,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다니, 무얼 남길지 모르더라도, 그 결과가 어찌 됐든 부딪혀야 할 기회였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합격했다.
이 정도로 설렜던 순간은 딱 한 번 있었다. Humans of Seoul에 지원했을 때다. 생각해보면 두 프로젝트는 모두 불확실성을 지녔었다. 끝이 어떻게 될지, 어떤 영향을 줄지 전혀 보이지 않는 캄캄함. HoS에 지원할 때도 취준생으로서 스펙을 쌓고 인턴을 알아봐야 할 시기였지만, 가슴에 들어찬 갑갑함을 뒤엎고 싶었고, 뛰는 가슴을 따랐었다. 그리고 HoS에는 이제 내 정체성이 있다. 이번에도 같았다. 권태와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가슴을 따르는 것이었다.
첫 길거리 인터뷰에서 만난 부부의 확신에 찬 눈빛도 이런 생각에서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뒤늦게 생각했다. 꼭 세계일주여서가 아니라, 직장에서 계속 겪어왔을 답답함을 풀어줄 설렘을 드디어 만났다는 기쁨이 묻어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그 순간 현실적인 문제야 어찌됐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제 내일, 멕시코로 떠난다. 다시 한번 불확실성에 몸을 던진다. 세계가 줄 무게와 충격을 내가 담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합류가 결정된 후 하루도 빠짐없이 여행의 끝의 나를 상상하며 잠들었지만, 전혀 하나도 모르겠다. 가서 뭘 할 거고 뭘 남겨올 거냐는 친구들의 물음에도 명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걷는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확고한 방향성은 항상 생각도 못했던 기회와 연결을 가져다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