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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Aug 01. 2022

엄마, 나 결혼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아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서른 살 비혼 여자입니다.

  이번 달에 친구가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 왔다. 보통 친구도 아니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14년 지기 '찐' 친구다. 혼자 살되 근처에 친한 친구와 함께 사는 삶은 나의 미래를 그린 여러 개의 설계도 중에 가장 현실로 옮기고 싶은 것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삼십 대의 초입에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친구의 이사 소식을 엄마에게 전했을  엄마의 첫마디는, "큰일 났네."였다.  이어지는 말은 "이제 아주 결혼은    이로구만." 요즘 시대에 결혼은 선택이라며 열려있는 어른의 흉내를 내던 엄마였다. 하지만 딸이 본격적으로 비혼 길을 걸으려 한다는 것을 직감한 위기감이 드러난 반응이었다. 때가 되면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삶이 아직 우리 엄마에겐 정도(正道)인가 보다. 정도를 벗어난 삶은 의아한 시선과 불필요한 설명이 따르기 마련이니, 엄마의 염려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더불어, 엄마의 반응 속엔 믿을  있는 친구와 가까이 사는 삶이 보통은 결혼으로 채우는 다양한 결핍을 충족할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서로를 돌봐주고 챙기는 안전한 관계망이 생기는 거니까.

  친구와 곁에서 지낸 보름 남짓 동안 나는 한동안 들끓었던 연애에 대한 의지가 싹 - 사라졌다. 저녁에 같이 동네 산책을 하고, 적적하지 않은 식사시간을 보내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함께 보는 상대는 꼭 연인일 필요는 없었다. 나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였다. 시내로 함께 외출을 하려다가 쨍한 날씨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던 지난 화요일의 오후는 행복으로 충만했다. 앞으로도 종종 날씨 좋은 주말엔 아무 계획 없이 훌쩍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함께하니 두 배 이상으로 행복해지는 경험의 축적이 앞으로 얼마나 더 이루어질지 기대된다.

  친구를 이웃으로 둔 요즘의 일상으로 인해, 나에겐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향수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 90년대생인 나의 어린 시절에만 해도 옆집, 아랫집, 윗집과 활발하게 왕래하며 지냈다. 이웃사촌들과의 훈훈한 기억들은 저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도 없고, 열쇠도 없어 현관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나를 스스럼없이 본인 집으로 데리고 와 아이스크림을 물려주시던 옆집 아주머니, 양이 많은 과일이나 반찬을 들고 이웃집에 배달 가던 기억들.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요즘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풍경이 내 일상에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1인 가구에 넘치는 양의 과일이 생길 때면 서로의 집으로 나누러 간다. 며칠 전에 나는 복숭아를 나눴다면 친구는 조만간 집에서 보낸 참외를 나눠주기로 했다. 저녁 밥상을 차리다 된장국을 많이 끓이면 밥상에 밥 한 그릇만 더 얹어 함께 식사를 한다. 친구의 위장 건강이 나아지면 금요일 밤에 함께 치맥을 즐기며 한 주를 회포를 풀기도 하겠지. 더 나아가, 이런 삶을 꿈꾸는 1인 가구들이 여럿 모여 함께 사는 마을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면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은 삶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을 거란 상상도 해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친구의 집을 한 번 쳐다본다. 불이 켜진 집을 보며 친구의 안부를 확인한다. 나의 불 켜진 창으로 내 안부를 확인하는 이도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서로를 돌봐주는 안전한 관계가 곁에 있음으로 내 삶은 혼자이지만 외롭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그러니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말어. 나 충분히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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