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츠 영상 속 마른 체형의 배우가 말한다.
"저는 엉덩이가 가벼워요. 집에서도 계속 움직이면서 뭘 해야 해요. 그래서 이렇게 빼빼 말랐나 봐요."
오,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 나와 정반대 유형의 인간이다. 나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다. 방바닥에 질펀한 엉덩이를 붙이고 드러눕는 게 취미, 의지에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 있는 게 특기다. 그래서 평생에 빼빼 말라본 적은 없다. 이번 생에 마른 몸은 허락되지 않은 대신, 한 번 의자에 앉으면 좀체 일어서질 않는 내 무거운 엉덩이는 나를 전교 1등으로, 임용 수석으로 만들어주었다.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암기하고 또 암기해야 하는 대한민국 제도권 교육에는 꼭 맞는 엉덩이였다. 과거의 영광들은 이미 잊힌 지 오래이고, 요즘은 내 무거운 엉덩이가 영 쓸모없게 느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단체에서 음악회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1회' 행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만들어야 한다. 맨땅에다 무대를 만들어 세우며 공연할 환경을 조성해야하기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힘을 써야 한다. 돌과 나무 등 각종 자재들을 옮기고, 또 옮기고. 페인트칠을 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었다 올렸다, 쓰레기 정리를 위해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내 생에 가장 노동집약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육체노동을 할 때는 벌떡벌떡 일어날 수 있는 가벼운 엉덩이를 가진 사람들의 바지런함이 도움이 된다.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의욕적인 그들을 따라가기가 벅차다는 것이 나의 고충이다. '왜 이리 몰아붙여. 조금만 쉬었다가 하지.' 마음속에 뾰족함이 올라오기도 했다. 내가 내 체력에 맞게 잠시 앉아 쉬고 있어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지만 엉덩이 무게만큼이나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의무감의 무게도 무거운 나인지라 맘 편히 쉬지도 못하고 이내 억지로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려 가벼운 엉덩이들을 따라갔다. 무거운 엉덩이와 형편없는 내 체력이 원망스러웠다.
나의 무거운 엉덩이는 어디서 기인한 걸까. 먼저, 태어나 길러진 선천적 요인과 가정환경적 요인을 살펴본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의 영유아시절은 땅에 발이 닿을 새가 없었다고 한다. 기다리다 태어난 첫 손녀가 귀했던 할머니는 항상 나를 둥가둥가 안고 업고 다니셨다고 한다. 내 엉덩이 무게 증량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부지런하고 손이 빠른 엄마는 집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집안일을 했지만 그 많은 집안일에서 내 몫으로 떼어주는 것은 없었다. 찾아서 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엄마 미안.) 여전히도 집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쉬어라, 누워 자라'이다. 딸내미 손에 물을 묻히기 싫었던 엄마의 사랑은 내 엉덩이 무게를 더했다. 어릴 적 내가 받은 사교육은 글짓기, 컴퓨터, 미술, 피아노, 미술, 영어처럼 주로 앉아서 배우는 정적인 활동이었다. 몸을 쓰고 단련할 기회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둔하고 뻣뻣해서 체육수업을 꺼리고 아이돌 춤을 곧잘 따라 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진심 어린 감탄과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선생님이 되었다. 거기에 게으른 한량인 아빠의 DNA도 나의 반쪽을 이루고 있으니 선천적으로 느긋함과 게으름이 몸에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력히 부정하고 싶지만.
이제 어엿한 성인이니 가정환경이 형성한 내 모습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여전히 내 엉덩이가 무거운 것은 나의 생활 습관 때문이다. 꾸준한 운동과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식습관, 양질의 수면, 충분한 수분 섭취. 장수의 비결이자 다이어트의 기본 원칙인 건강 수칙들은 뻔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나마 하던 수영도 그만두고, 먹으면 나른해지고 나른하니 누워버리기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닙니까?) 사람은 지. 덕. 체를 골고루 갖춰야 한다는데 '체'는 쏙 빠진 채 인품의 상징인 푸근한 살집만 덕. 지. 덕. 지. 붙고 있다. 이제 날씨가 추워지면 온수매트 속에 누워 움츠리고 싶어 질 텐데 엉덩이 무게를 여기서 더 늘릴 수는 없다. 한 번 일어날 거 두 번 일어나기. 몸을 움직여야 할 땐 미루지 않고 바로 하기, 내일부터 당장 새 삶을 사는 것까진 안되더라도 불편함을 느끼고 있으니 작은 변화라도 줘보자.
가벼운, 아니 탄탄한 엉덩이를 가지게 될 날을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