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진심을 다하는 어린이를 본받자

서른 셋, 생일 이야기

by 키파

매년 나의 생일을 누구보다 열렬히 축하해주는 사람들은 우리반 아이들이다. 어린이들은 생일에 진심이다.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기 몇 달 전부터


“턴생님, 제 생일 9월 22일이다요.”


이르디 이른 공지를 한다. 생일파티에 초대할 친구들, 생일선물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하며 완벽한 생일을 위한 계획을 세우곤 한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생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일에도 진심이어서 이제는 생일에 큰 감흥이 없는 삼십대 선생님의 생일을 나보다 더 열심히 챙긴다.


출근길, 올해도 교실 불이 꺼져있다. 문 앞에서 와글와글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눈 감고 들어오세요!!" 매년 이렇게 생일에 진심인 어린이들의 담임이 되는 건 나이가 든다고 해서 생일을 그저 그런 날로 보내지 말고 정성을 다해 이 날을 축하하라는 뜻이라 여기고 있다.


교실에 들어가니 티슈 위에 소중히 들고 있는 젤리하나

(무려 치석 제거 젤리다. 선생님.. 뭐 입냄새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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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문방구에서 2개 1500원이라는 걸 강조하는 걸 보면 아마 아이들에겐 하나에 750원짜리 젤리가 값진 모양이다. 무려 반을 떼어서 나에게 준 마음이 귀하다. 알사탕 하나, (아마 가방에 오래 묵혀둔) 막대 사탕 하나를 쥔 손이 내 손바닥 위를 오간다. 귀엽고 고운 마음들이 손 위에 자꾸만 쌓인다.

요즘 트랄라레로 트랄랄라 류의 캐릭터 (브레인롯) 카드가 우리반 아이들에게 유행이다. 반짝이는 카드는 소위 말하는 '레어템'인 모양이다.


“이거 진짜 좋은건데 주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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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쌓이는 마음. 자기 카드 뭉치를 턱하니 내어주면서 귀여운 거 골라가라는 아이. 고양이 머리에 금붕어 꼬리를 가진 카드와 블루베리 모양의 곰돌이 카드 중에 고민하고 있으니


"그냥 둘 다 가지세요." 하고 휙 가버린다.

(멋있다.. 너)


"꼭 집에 가서 읽어보세요." 하며 건넨 꼬깃한 쪽지는 못 참고 퇴근 전에 열어보았다. 꼭 집에 가서 읽어야 할만큼의 비밀스러운 내용은 없었다. 그래도, 우리반 선생님이 되주셔서 참 좋다는 삐뚤한 글씨는 나만의 기분 좋은 비밀로 남겨두련다.


33년 전, 오늘 나에게 세상 빛을 보게한 신은 내가 생일에 어디가서 미역국도 못 얻어먹을까봐 걱정이었는지 오늘 급식 메뉴에 미역국이 있다. 이랬던 적이 처음이 아니라서 올해도 감사히 한 그릇 다 비웠다.


어린이들의 생일에 대한 열정을 본받아 실천해본다.


그래도 생일이니까,

아무도 없는 집으로 바로 퇴근하기보다는 나에게 맛난 음식을 먹이고 달콤한 케이크도 하나 사려고 좋아하는 동네에 들렀다. 이 동네는 화요일에 휴무인 식당이 많다는 걸 미처 몰랐다. 열려 있는 식당 하나에 들어갔다. 소스로 무려 트러플 오일을 주지만 국을 떠먹을 숟가락은 주지 않는. 어쩐지 숟가락을 요구하는 것이 식사 매너를 모르는 사람같아 보이게 만드는 근엄하고 격식있는 일식 “돈카츠” 집에서 식사를 했다. 한입 맥주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생일이니까,

생전 안하는 짓도 하나 해본다. 혼자 포토부스에 들어가 나의 서른 세 번째 생일을 기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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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생일이니까,

케이크는 한 조각 먹어야하지 않을까? 하며 카페에 앉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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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생일이니까

일기는 하나 쓰고 싶었다.


어느새 누구보다 자신의 생일에 진심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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